마론파 [한] ∼派 [영] Maronites

시리아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전설에 의하면 요한 크리소스토모(J. Chrysostomus)의 친구인 시리아의 은수자 성 마론(St. Maron, ?~443년)의 제자가 스승의 사후 오론티스(Orontes)에 세운 수도원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7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는 곤란하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년)에서 그리스도 단의론적 이단으로 낙인찍혔으나, 후에 십자군 관계로 12세기에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이 파는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티나에 현존하고, 그 밖에 키프로스섬, 알렉산드리아, 미국에서도 볼 수 있는 시리아어의 오래된 전례(典禮)를 사용하며, 총대주교 및 8명의 주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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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트전례 [한] ∼典禮 [영] liturgy of Maronite

마로니트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 형태로, 성 야고보의 전례가 로마 전례화된 것. 마로니트란 시리아의 은수자인 성 마론(St. Maron, ?~443)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며, 레바논에 살면서 대부분 아라비아어를 사용하는 시리아인의 집단과 교회를 가리키나, 이들이 시리아, 팔레스티나, 키프로스, 이집트, 미국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교황청과 유대를 갖고 구성하는 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12세기 말엽 총대주교좌인 안티오키아에서는 성 야고보의 전례를 시리아어로 번역하여 다양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로니트 전례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전례의 발전은 크게 두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7-13세기)는 성찬의 전례 앞부분을 약간 발전시킨 것 외에는 안티오키아의 전례 전승을 따르고 있었으나, 후기(십자군의 도착에서 18세기 전례의 조문화가 완료될 때까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의와 제구의 라틴 전례화가 이루어지고 로마 전례식 성찬식이 도입되며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로니트 전례에는 안티오키아의 특징과 형태가 존속하고 있다. 공동기도를 드릴 때 아라비아어를 사용함을 원칙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언어 사용은 지역 대주교의 결정에 따르고 있는 것도 그 특징의 하나이다. 오늘날 마로니트 전례에 있어서 성사 예식은 서부 시리아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데 견진성사는 시리아 전례 형태로 주교가 집전하고 영성체는 양형(兩形)으로 하지 않고 제병의 형상만으로 영한다. 전례로서는 미사경본, 성무일과 기도서, 예식서, 장례 예절서 등이 있다. 마로니트 교회의 중심 제단은 동쪽을 향하고 교회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여 열리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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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스카 [원] Maresca, Franciscus

Maresca, Franciscus(1806-1855). 나폴리 성가정회 소속 중국 선교사. 주교. 중국 강남(江南) 교구장. 1840년 중국에 입국하여 상해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1847년 성신강림 축일에 강남 교구장 베지(de Bezi) 주교의 보좌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이 해 베지 주교가 로마를 방문하고 교구장직을 사임함에 따라 강남 교구장직을 이어 받았다. 1847년 조선 입국을 위해 상해에 머무르고 있는 최양업(崔良業) 부제와 메스트르(Maistre) 신부를 적극 지원, 조선 전교를 도왔고, 1849년 4월 15일 최양업 신부의 사제서품식을 주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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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샬 [원] Marechal, Joseph

Marechal, Joseph(1878-1944). 벨기에의 예수회 철학자. 샤를르와(Charleroi) 출신으로 1895년 예수회에 입회, 1905년 루뱅(Louvain)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획득, 1908년에 서품되었다. 루뱅의 예수회에서 실험 심리학, 생물학 및 철학을 강의하였다. 주저(主著)는 5권의 ≪형이상학의 출발점≫(Le Point de depart de la metaphysique)으로 토미즘적인 사실주의를 옹호하고 있는데, 첫 3권은 동시에 출판되었다(1922-1923, 3판 1944년). 1, 2권에선 현대 철학의 불연속성이란 오캄(William of Ockham) 아래에 토미즘적인 종합이 실패하였기 때문임을 제시하였고, 3권에서는 칸트에 대하여 탁월하게 재평가하였으며 5권은

비판 철학 관점에서의 토미즘 연구이다. 4권은 사후 출판(1947년)되었다. 주도적인 사상은, 인간 지성이 정적인 힘으로 간주된다면 칸트에 대한 이의 제기는 대답되어질 수 없지만, 만약 그 작용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생각했듯이 역동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칸트의 문제들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A. Marc), 드 피낭스(J. de Finance), 이세(G. Isaye), 라너(K. Rahner), 로츠(J.B. Lotz), 코레트(E. Coreth), 로너간(B.F. Lonergan) 등의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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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발 [원] Maraval

① 요셉∼(Joseph M., 1860~?).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명 서약슬(徐若瑟). 요한 마라발의 형.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1884년에 내한, 1885년 원주(原州) 부흥골에 신학교가 세워지자 이 신학교의 책임을 맡는 한편 본당신부를 겸임하고, 그곳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돌보았다. 2년 후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됨에 따라 용산에서 교수생활을 계속하였다. 1890년 원산본당신부로 있을 때 원산으로 휴양온 동생신부와 사별하였다. 1893년부터 제물포 본당 4대 주임신부로서 10년 동안 재직하였고 그 후 귀국, 1904년에 파리 외방전교회를 떠났다.

② 요한∼(Jean-Baptiste M., 1866~1890).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명 서약한(徐若翰). 프랑스 알비(Albi) 교구의 카스트르(Castres)에서 태어나 소신학교를 거쳐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간 그는, 1889년 9월 21일 사제서품을 받고, 같은 길을 걸어 온 형이 5년 전부터 가 있는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1890년 2월 2일에 한국에 도착한 그는 감기에 걸린 데다가 먼 여행길로 인해 피로가 겹쳐 증세가 악화되었으므로, 때마침 병석에 누워 있던 블랑(Blanc) 주교의 간병조차 할 수 없었다. 휴일에는 형이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용산신학교를 찾아가 형의 간호를 받아 병을 이기려 했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얼마 뒤 원산(元山)으로 전근된 형을 따라가 요양했으나 끝내 회복을 보지 못하고 그곳에서 그해 10월 24일 한국에 들어온 지 8개월만에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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