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와 [원] Libois, Napoleon

Libois, Napoleon(1805-1872).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극동지역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장. 프랑스에서 출생. 1832년 선교사로 중국에 입국하여 마카오의 극동지역 경리부 부경리로 활동하였다. 1837년 마카오에 유학온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 3명의 조선 신학생에게 교회음악을 가르쳤고, 1842년 르그레즈와(Legregeois) 신부의 후임으로 극동지역 경리부장이 되어 극동지역에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을 지원하였다. 1842년부터 1846년까지 김대건 신부로부터 김대건 신부의 입국과 조선교회의 상황을 알리는 15통의 편지를 받고 이를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고하는 한편, 조선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을 돕고, 조선 전교를 적극 지원하였다. 1847년 극동지역 경리부를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옮기고 각 포교지의 경리부 신설에 노력하여 1857년 싱가포르, 1864년 상해(上海)에 경리부를 신설하였다. 1866년 프랑스로 귀국하여 그 후 사망할 때까지 교황청 포교지 경리부장으로 재직하였다.

[참고문헌] 李元淳 · 許寅 編著, 金大建의 편지, 정음사, 1975 /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下, 분도출판사, 1980 / 林忠信 · 崔奭祐 譯註, 崔良業神父書翰集, 韓國敎會史硏究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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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리오교황사건 [한] ∼敎皇事件 [영] Case of Pope Liberius

아리우스파 논쟁이 초대교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을 당시 교황 리베리오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 즉 교황 리베리오는 아타나시오를 배척하는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거부하였는데, 이에 따라 교황은 아리우스파였던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로부터 미움을 받아 355년 추방당하였다. 2년 후인 357년 교황 리베리오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아리우스파의 신앙선언에 서명했다고 전해져 교황의 무류성과 관련된 토론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문서가 위조문서라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한 때 교회를 위태롭게 한 논란은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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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원] Ribera, Jose

Ribera, Jose(1588-1657). 스페인의 화가, 동판화가. 나폴리파의 지도자의 한 사람. 스페인 발렌시아주(州) 하티바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죽었다. 발렌시아에서 그림공부를 한 뒤 이탈리아로 가서 북부 이탈리아를 여행, 로마에서 수년간 체재한 다음 1616년경 나폴리에 정착하였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 시민들과 스페인 본국의 후원자들로부터 풍성한 지원을 받으며 작업하였다. 대체로 이젤화(畵)를 많이 그렸으며, 때로는 그룹을 이룬 인물화를 그렸지만, 그의 본령은 단독인물화였다. 그것은 어두운 배경 앞에 집주관선(集注光線)을 받은 입체적인 인물상이었다. 베로네제(Paolo Veronese)의 영향이 뚜렷한 1630년대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은 단색적(單色的) 경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인물은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의 인물화처럼 품위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무염시태>, <십자가에서 내리심>, <양치기들의 기도>, <피에타>, <막달레나>, <루클레티아>, <성모승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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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델 [원] Ridel, Felix Clair

Ridel, Felix Clair(1830-1884).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재위 : 1869-1884). 주교. 한국명 이복명(李福明). 1830년 7월 7일 프랑스 낭트(Nantes) 교구에서 태어난 그는 1857년 12월에 사제품을 받고 잠시 교구사제로 일하였다. 1859년 이방인에게 전교할 뜻을 품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60년 7월 27일에 한국을 향해 조국을 떠났다. 1861년 3월 31일에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베르뇌(Berneus, 張敬一) 주교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 보좌주교를 만나고 곧 충청도 공주(公州)의 진밧 지방을 맡아 전교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병인년(丙寅年)에 일어난 대박해로 두 주교와 5명의 동료신부를 잃게 되었으나 리델 신부는 다행히도 피신하여 체포를 면할 수가 있었다. 이에 살아남은 페롱(Feron, 權) 신부, 칼레(Calais, 姜) 신부와 의논하여, 박해로 주교와 여러 성직자를 잃은 조선 교회의 사정을 알리고 새로이 성직자를 청하고자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중국으로 탈출키로 하였다. 연장자인 리델 신부가 그 임무를 맡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1866년 7월 7일 중국 치푸(芝罘)에 도착해서 프랑스 함대사령관 로즈(Roze)를 만나 구원을 요청하였다. 리델 신부의 요청에 따라 칼레 신부와 페롱 신부를 구출코자 로즈제독은 3척의 군함을 이끌고 9월 20일 인천 앞바다에 이르니 이것을 병인양요(丙寅洋擾)라 일컫는다. 이 때 칼레와 페롱 두 신부는 군함이 왔음을 알고 탈출한 길을 찾고자 했으나 군함을 만나지 못하고 따로 청국으로 피신함으로써, 이제 조선땅에는 한 명의 신부도 없게 되었다. 그 뒤 리델 신부는 다시금 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새로이 조선교구에 배속된 여러 신부들과 함께 일본 · 만주 등 여러 곳을 찾아갔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1869년 6월 25일 조선교구의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로 임명된 리델 주교는 1870년 초에 로마로 가 그곳에서 6월 5일 주교 성성식을 갖는 동시에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1871년 7월에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조선 입국 시도를 잠시 중단하고 한불자전의 완성과 교리문답책을 편찬하는데 전심하였다. 1876년 4월에 블랑(Blanc, 白圭三) 신부와 드게트(Deguette) 신부를 데리고 조선 입국을 위해 다시금 배를 타고 조선을 향해 떠났다. 5월 8일 서해안에 닿은 주교는 조선 교우들의 요청에 따라 신교의 자유를 얻도록 하는 일에 전심하기 위해 상해로 되돌아가기로 하고 두 신부만을 상륙시켰다. 이로써 조선 교회는 10년 만에 다시 목자를 갖게 되었는데, 중국에 돌아온 리델 주교는 일본 · 만주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조선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트고자 애쓰던 때에 새로 두세(Doucet), 로베르(Robert), 뮈텔(Mutel), 코스트(Coste)의 네 신부를 새로 배속받아 그중 두세, 로베르 두 신부와 함께 중국배를 타고 조선으로 건너와 9월 23일 황해도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선을 떠난 지 11년 주교로 임명된 지 8년만에 서울에 들어온 주교는 감시의 눈을 피해가면서 전교에 전심하였다. 그해 10월, 이러한 교회 형편을 알리기 위해 한 교우에게 편지를 주어 만주로 가서 코스트나 뮈텔 신부에게 이를 전하도록 하였던 바, 불행히도 잡히게 되어 주교의 입국사실이 탄로되었다. 이 때문에 1878년 1월 28일 그는 잡히는 몸이 되어 5개월 동안 옥중에 갇혔으나 북경 주재 프랑스 공사의 교섭으로, 중국정부의 주선에 의해 6월 5일 옥에서 풀려나, 7월 12일 만주로 추방되었다. 그간 코스트 신부에게 맡겼던 ≪한불자전≫과 ≪한어문전≫이 완성되어 일본 나가사끼(長崎)로 건너가 이를 인쇄에 붙이니, 1880년말과 1881년 봄에 걸쳐 두 책이 다 나오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중풍의 치료를 위해 홍콩으로 건너갔으나 별 효과가 없었으므로 블랑 신부를 보좌주교로 선정하고 그해 11월에 고향인 반느(Bannes)로 돌아가 1884년 6월 20일 54세로 선종하였다.

[참고문헌] Arthur Piacentini, Mgr Ridel, Lyon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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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리오 [원] Liguori, Alfonsus Maria de [관련] 알퐁소 리구오리

⇒ 알퐁소 리구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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