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 [원] Rouault, Georges

Rouault, Georges(1871~1958). 프랑스 현대의 대표적 종교화가. 마티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국립 미술학교를 나오고 신인상인 로마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1893년에 최초의 대작 <연자매 돌리는 삼손>, 1894년에 <어린 그리스도와 박사들>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부터 성서와 신화를 제재(題材)로 한 그의 독자적인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정신 · 건강 · 경제면에서 어려움이 계속되어 가톨릭의 색채가 짙어졌다. 1903년경부터 모로가 국가에 기증한 아틀리에에 만들어진 모로 미술관의 관장이 되었다. 종래의 그의 작품은 이때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격렬하고 동적인 선과 짙은 청색을 주조로 한 수채화를 주로 그렸다. 주제로 창부 · 어릿광대 등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1913년부터는 판화제작에 몰두하여 그 성과로 명작 <미세레레>(1917-1927)의 연작(連作)을 그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자적인 것으로 그의 예술이 확립되고, 또 20세기의 유일한 종교화가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그는 어느 작품에 있어서나 독자적인 신빙성은 순수한 적 · 황 · 녹색을 주로 하는 중후한 마티에르와 자유롭고 힘찬 선의 울림 속에서 일종의 엄숙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이 점점 순수한 회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20세기에 있어서 루오는 끝까지 인간애의 정신을 관철시켰다. 대표작으로는 <재판>, <교외(郊外)의 그리스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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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가 [원] Luanga, Carolus

Luanga, Carolus(1860?~1886). 성인. 순교자. 축일은 6월 3일. 우간다의 부두(Buddu)군에서 태어나 나무공고(Namugongo)에서 순교하였다. 루앙가는 마울루궁구(Mawulugungu) 추장의 궁정에서 처음으로 가톨릭의 믿음을 두 사람의 동족 신자에게서 배웠다. 아직 예비신자일 때인 1884년 우간다 중심지인 부간다(Buganda) 왕국 궁정에서 젊은 시동(侍童)이자 가령(家令)인 무카사(Joseph Mukasa)를 보좌하였다.

이보다 앞서 1879년 아프리카 선교회 선교사 피에르 블랑 등은 부간다 국왕 므테사(Mtesa)의 궁정에 선교 기반을 만들어 처음에는 좋은 포교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아랍인 세력이 우세해짐에 따라 1882년 11월 선교사들은 부득이 철수하였다. 므테사가 죽은 후 그 후계자인 어린 왕 무왕가(Muanga)가 선교사들을 다시 불러, 그들은 1885년 7월에 부간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후 이 19세의 왕은 정치적 음모에 놀아나 공공연히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 그중에서도 궁정내의 신자인 정신(廷臣)과 시동들을 가혹하게 박해하였다. 이리하여 1885년 11월 무카사가 순교하던 날 밤에 루앙가는 세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여러 달 동안 선교사들과의 연락이 불가능한 가운데 루앙가는 무앙가의 마수로부터 시동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가르치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며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886년 5월 신도들에 대한 처형이 다시 시작되자 루앙가는 시동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한 후에 모두 체포되었다. 나무공고까지 연행되어 가는 도중에 루앙가는 특히 가혹한 취급을 당하였다. 1885년 11월부터 1887년 1월 사이에 흑인 천주교도 22명이 처형 순교했으며, 그 중에는 루앙가를 포함한 14명의 시동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루앙가 등 10명은 1886년 6월 3일 몸을 갈대 짚으로 감싸여 산채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다른 21명과 함께 루앙가는 1920년 6월에 시복(諡福)되고,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이보다 앞서 교황 비오 11세는 루앙가를 적도 아프리카의 청소년 및 가톨릭 액션의 보호자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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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라] Lucia [영] Lucy

성녀. 동정(童貞) 순교자. 축일은 12월 13일. 304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박해 때 시칠리아의 시라쿠사(Siracusa)에서 순교. 거절당한 구혼자에 의해 고발되어 육체적 능욕과 불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지만, 결국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5세기의 한 그리스어 비문(碑文)은 시라쿠사에서 루시아에 대한 공경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후에 젤라시오 전례와 그레고리오 전례 속에 소개되었고 예로니모(Jerome)의 ≪순교록≫에도 기록되었다. 6-7세기에 루시아의 공경은 로마, 밀라노, 라벤나로 전파,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는 성 아가토(St. Agatho)와 함께 미사에 소개한 듯이 보인다. 눈의 수호성녀로서 접시에 두 눈을 담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종종 묘사되었고, 또는 순교자의 종려잎, 등불(혹은 책) 등을 들고 있거나 목에 칼이 꽂힌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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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로 [원] Rousselot, Pierre

Rousselot, Pierre(1878-1915). 프랑스의 철학자, 신학자, 그리스도교 호교가. 낭트(Nantes) 태생. 1895년 예수회에 입회, 수련자로서 영국 캔터베리에 파견, 1905년 신학대학을 마치고, 1908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09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 가톨릭대학원에서 교리신학을 가르쳤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본국에 소환되어 전선에 출정, 1915년 4월 레제파르즈(Les Eparges)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짧은 생애였으나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설(神學說) 부흥을 위해 끼친 영향은 컸다. 주요 저서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성주의≫(L’Intellectualisme de saint Thomas, Paris 1908), ≪Pour l’Histoire du probleme de l’amour au moyen age≫ (1908) 등이 있다. 그리스도교 변증자로서도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여 신앙행위에 대한 종래의 교육방법과 정확한 판단에 관해 상세히 살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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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원] Rubens, Peter Paul

Rubens, Peter Paul(1577~1640).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 어려서 예수회 수사에게 많은 감화를 받았다. 23세 때 이탈리아로 유학 가서 8년 동안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대표적 바로크 화가인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룬 다음 명성을 얻었다. 그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의 대벽화 <마리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은 바로크 회화의 집대성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그의 작품은 밝게 타오르는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에 넘치고 감각적이며 사상성이 풍부하다.

특히 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과감하고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작업장을 세워 상당수의 보좌들과 도제들을 고용하였는데, 그가 얻은 세계적인 명성은 이들의 도움이 컸다. 그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스트 학자로 고대 예술품 수집에 노력하였으며, 외교관으로 프랑스 · 스페인 · 영국에 부임하여 각지에서 작품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화가로서 절정에 이르러 작품에 시적(詩的) 분위기를 살리고 숙달된 유화의 기법은 최고봉을 이루었다. 그의 유명한 종교화로는 <3인의 성왕(聖王)의 예배>, <최후의 심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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