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ult, Jean Louis(1860-1902). 파리 외방전교회원,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명 노약망(盧若望). 프랑스 에농(Henon)에서 출생. 가난 속에서도 어려서부터 라틴어를 배웠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사제품을 받고 즉시 고국을 떠나 1887년 2월 1일에 제물포(濟物浦, 지금은 仁川)에 상륙하였다. 서울에 들어온 그는 그해 7월에, 당시에 가장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황해도 지방을 맡게 되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교인들을 모아 구월산(九月山) 기슭에 4개의 교우촌을 만들어 새롭고 희망에 찬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사업을 더욱 확대하려 하였으나, 1888년 가을에 어려운 병을 얻어, 이를 치료하기 위해 홍콩에 건너가게 됨으로써 한 때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돌아온 그는 이번엔 평안도 지방의 전교를 맡았다. 그는 이 고장에서 전교사업 뿐만이 아니라, 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맹퇴치 운동과 교육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893년에는 원산에 배치되었으나 임지로 가는 도중 병이 재발, 서울로 되돌아와 병 치료를 하다가, 그해 8월 1일 부산(釜山)으로 전임되기까지 약 7년간, 헌신적인 그의 노력으로 용산신학교는 놀랄 만큼 발전하였다. 부산에 내려온 그는 오래 일할 수가 없었다. 부산지방에 발생한 콜레라가 그의 생명마저 앗아갔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원] Rembrandt, Harmensz van Rijn
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 17세기 네덜란드의 가장 창조적이며 영향력 있는 화가. 라이덴에서 출생하여 라틴어 학교를 거쳐 라이덴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라스트만(Peter Lastmann, 1583-1633)에게 사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역사, 신화, 초상, 풍경 등 당시의 회화 주제 전반에 걸쳐져 있으며, 특히 제3의 주제로서 성서의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에선 성서를 내면적으로 조명하여 신(神)에 대한 각 인물들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밖에도 그는 항상 새롭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초기에는 수세기 동안 내려온, 이상적으로 채색되어진 그리스도의 모습(긴 고수머리, 드리워진 수염, 영광에 휩싸인 얼굴)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1648)에서는 새로운 그리스도의 상(像)을 정립시켰다(짧게 다발진 머리카락, 둥글게 다듬어진 수염, 여윈 얼굴). 즉 그는 유대 랍비들을 모델로 그리스도를 내면적으로 그려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빛의 효과를 최대한도로 이용하였는데, 특히 동판화 에서는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얼굴표정과 몸짓을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그는 신교도였지만 교회음악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어 왔던 깊은 종교적 감동을, 독특한 수법을 사용한 자신의 종교화를 통해 가능케 했으며 가톨릭계(系)의 루벤스(Pieter Paul Rubens, 1577~1640)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주요 작품으로는 , , , , , , , 등 회화와 , 등 동판화가 있다.
레퀴엠 [라] Requiem [영] Requiem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최근에까지 가톨릭 위령(慰靈)미사에 공통적이었던 라틴어 입당송(入堂頌)의 첫마디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에서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 개정된 위령미사의 내용을 싣고 있는 1970년의 가톨릭 미사 전서(典書)는 위령(慰靈)의 날(11월 2일)에 대한 3가지 미사와 장례미사와 다른 기도문 하나와 주년위령미사에 대한 각각 3가지씩의 미사와 두 개의 다른 기도문(이들 중 하나는 부활시기에 나머지 둘은 그 외의 시기를 위한 것이다), 다섯 개의 보통 위령미사와 죽은 이를 위한 여러 가지 기도문이 있다.
이전의 레퀴엠의 특징적인 사항들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며 보통 검은 색이었던 제의(祭衣)는 그 나라 주교의 결정에 따라 지금은 자유로이 선택될 수 있다. 또한 흰 초를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은 폐지되었다. 위령미사 중 장례미사는 의무적 대축일과 대림 사순 부활절의 주일이 아니면 어느 날에나 다 드릴 수 있고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첫 미사, 장례가 있는 제1주년 기일미사는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모든 평일에 있더라도 이런 위령미사를 드릴 수 있다. 보통 위령미사는 정말 죽은 이를 위해 드린다면 신심미사를 허락하는 날에만 드릴 수 있다. 현대 가톨릭 교회는 11월을 위령의 달로 정해 어느 때보다 많은 연미사를 드리고 있다.
레지오 마리에 [라] Legio Mariae [영] Legion of Mary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하나로 회원은 적어도 일주일에 2시간 사목활동을 도와 봉사한다. 이 단체는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시에서 20대의 젊은 여성 15명이 빈민원의 환자 방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데서 시작되었다. 레지오 마리에의 모체가 되었던 이 모임의 명칭이 ‘자비의 모후’이었던 관계로 이 조직은 처음 ‘자비의 모후회’로 불려졌으나 1925년 11월 간부회의에서 옛 로마군대를 본뜬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이 단체의 조직명칭도 자립지부(自立支部)를 프레시디움(praesidium), 두 개 이상 지부로 된 지방본부(地方本部)를 쿠리아(curia), 전국본부(全國本部)를 세나투스(senatus), 더블린에 있는 세계본부를 콘칠리움(concilium)이라고 부르는 등 로마군대 용어를 쓰고 있다.
레지오 마리에는 그 후 아일랜드 내에서 점차 조직이 확대되어 1928년부터는 해외로 뻗어 나갔다. 현재 이 단체는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레지오 마리에가 진출한 것은 1953년 5월의 일로서 광주교구장 헨리(Henry) 주교 지도 아래 목포시 산정동 본당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 경동본당에 ‘죄인의 의탁’ 프레시디움이 각각 처음 탄생하였다. 이후 이 운동은 전국 각 본당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나갔다. 서울에는 1955년 8월,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이 설립됨으로써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초대 지도신부는 이경재(李庚宰, 알렉산데르) 신부였고, 단장은 신태민(申泰旼, 토마스) 형제였다. 이어 1957년 1월 29일에는 서울에 생겨난 기존 프레시디움을 모아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쿠리아가 설립되고(지도신부 : 정원진신부, 단장 : 이해남), 1959년 3월 15일에는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쿠리아가 설립되어 점차 조직을 굳혀 나갔다. 당시 프레시디움은 모두 11개에 달했고 행동단원이 128명, 협조단원이 658명이었다. 이리하여 1960년 3월 30일에는 서울 세나투스의 전신인 서울 무염시태 코미시움이 설립되었고 1974년 9월 25일 레지아로 승격을 거쳐 1979년 12월 23일 마침내 서울 대교구에서 국가 단위 평의회인 세나투스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에 운동이 정착, 발전되기까지에는 많은 논란과 문제점도 적지 않았는데 이의 해결에는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와 헨리 대주교의 적극적인 지도 격려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노 대주교는 매월 코미시움 월례회의에 참석하여 직접 훈화도 하고 레지오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나투스 발족 당시의 조직현황을 보면 5개 코미시움, 45개 쿠리아, 705개 프레시디움, 1만 598명의 행동단원, 1만 7,478명의 협조단원이었고 전국 총 222개 본당 중 187개 본당에 레지오가 설립되었다. 서울 대교구만도 1개 코미시움, 25개 쿠리아, 426개 프레시디움, 6,077명의 행동단원이 있고 협조단원은 1만 1,787명, 100개 본당 중 97개 본당이 조직을 완료하였다. 그 후 1980년 10월에는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여 청주, 대전이 서울로 흡수됨에 따라 세나투스로 승격된 서울 대교구 레지오 마리에는 7개 교구를 관할하게 되고 세포조직이라 할 수 있는 프레시디움은 계속 확장되어 갔다.
그 동안 주요 행사로는 1980년 11월 22일의 제1차 민족복음화대회와 1981년 5월 5일에 열린 제2차 민족복음화대회를 들 수가 있는데 1차 대회는 레지오 서울 도입 25주년을 겸해 서울에서, 2차 대회는 레지오 마리에 창설 60주년과 수원 레지아 승격을 기념해 수원에서 각각 열려 단원을 모두가 민족복음화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1차에는 1,500여 단원이, 2차에는 3만 5,000여 단원들이 모인 대회에서 서울 세나투스 총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참다운 민족의 복음화는 신자수와 성당수의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한국 레지오 마리에는 전국적으로 행동단원 4만 3,303명, 협조단원 5만 1,738명, 계 9만 5,041명의 단원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만도 5만 7,955명(행동단원 2만 4,574명, 협조단원 3만 3,381명)의 단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에는 아시아 협의체 설립문제, 각국과의 교류 협력문제, 해외교포 사목 협력방안 등도 앞으로의 과제로서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편, 서울대교구 교구總覽, 가톨릭出版社, 1984.
레위니옹 [원] Reunion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 마다가스카르섬 동쪽 해상에 있는 섬. 면적은 2,511㎢, 인구는 약 52만명(1982년 추계)이다. 1817년 빈첸시오회 관할의 지목구로 설정되었다. 1982년 현재 레위니옹 섬에는 1개의 교구가 있으며, 총 인구의 91%인 약 46만 8,000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