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노시스 [라] cognoscentia [영] gnosis [그] gnosis

그노시스는 그리스 단어이며 라틴어로는 cognoscentia. 우리말로는 인식(認識), 앎, 지식 등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 종교적 및 복합적 의미 때문에 우리는 보통 영지(靈知)라 일컫고 있다. 그노시스는 구원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믿음과 대등되는 개념으로 나타나며, 믿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참되 인식이 구원을 가져오며 믿음보다 높은 차원의 단계라는 주장이 있다.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 많은 논쟁과 이론(異論)이 생기게 되었고, 또 온갖 가정과 추리가 속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노시스는 그 단어가 지닌 복합적 의미 때문에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 교인 저술가들은 하느님 및 그리스도 그리고 천상적 신비에 관한 인식이나 깨달음을 그노시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반면 이단학파에서는 영지사상에 대한 밀교적 인식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노스티시즘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그리스도교 교인 저자들은 이 이단사상에 개의치 않고 그 나름대로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하느님께 대한 참된 인식 즉 그노시스를 발전시키며 설명해 왔다.

1. 그리스도교적 영지 ① 신약성서에 나타난 영지 : 이것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어떠한 문제이든 인식과 동떨어진 주제나 설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약성서의 그 어느 구절에도 ‘이것은 영지적 설명의 인용이다’ 아니면 ‘이것은 명백히 반영지적 설명이다’하며 단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노시스와 관련된 암시적 표현 또는 설명을 우리는 물론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 11장 25-27절의 말씀은 유다 영지 사상에 대한 배경을 암시하기도 한다. 바울로의 서간 중 특히 고린토 서간에 나타난 지식을 자랑하는 무리를 꾸짖는 내용 등도 이를 암시하기는 하나 역시 결정적 자료는 되지 못한다. 1디모 6,20에 언급된 ‘거짓된 지식’에 대한 경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유다 5-19, 2베드 2,1-22, 묵시 2장에 나오는 말씀도 모두 직접 간접으로 유다의 영지주의를 질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의 경우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 복음에는 ‘안다’라는 동사의 표현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노시스라는 명사의 표현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뿐 아니라 영지주의적 인용의 암시도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반면 요한은 그의 서간에서 거짓 예언자들을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마 영지주의자들을 지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② 바울로와 요한에 나타난 영지 : 물론 이들 두 사도도 혼합종교 및 영지주의에서 많은 암시와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 기원이야 어떻든 이들은 그리스도교적 영지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하느님과 계시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 구약에 그 기초를 두고 있지만 영지주의자들이 주창한 자아인식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아는’ 이 사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과 영지주의자들을 구별하는 기준인 것이다. 따라서 바울로는 인간의 구원 또는 완성의 단계에 있어서 그 절정을 사랑에 두고 있든 것이다(1고린 13장).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한 17장 3절의 하느님을 아는 것이 곧 사랑이며 이것이 곧 영생이다. 그리고 영생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분과의 일치를 가져온다. 요한의 이러한 나열방식은 헬레니즘을 연상시키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믿음을 강조하며 특히 하느님 아들의 강생(降生)을 초점으로 하고 있다.

③ 초대 교부들의 입장 : 사도교부나 그리스교부들이 언급한 ‘영지’도 분명히 신약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중심으로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와 오리제네스(Origenes)는 거짓 영지주의를 반대하면서 성서와 유다 전통 및 그리스 철학에 기초를 둔 참된 영지를 강조 · 주장하고 있다. 철학사상의 긍정적 측면을 평가한 이 교부들은 영지 또는 인식이 지닌 풍요한 의미 때문에 신앙의 높은 단계를 설명할 때 탁월한 지식 또는 신비적 인식의 가치를 하느님께 향하는 지복직관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성서에 기초를 둔 인식이 곧 믿음이며 완성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2. 영지주의(gnosticism) : 사실 영지주의 사상은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이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데르 대왕의 개선 이후 꽃피기 시작했던 헬레니즘의 문화에 따라 동방사상은 서로 뒤섞이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에 기원을 둔 영지주의 사상은 이제 동방종교의 이원론(二元論)을 흡수하여 하느님과 세상, 영과 육, 선과 악 등을 대결된 입장에서 고찰하면서 그 기원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또한 독특한 구원론과 불사론(不死論)을 펼치고 있다. 영지주의는 종교 및 철학의 복합체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알맞은 표현이다. 사실 신(新) 플라톤 사상에서는 신(神)과 인간의 중개사상을, 신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자연 신비사상을, 그리고 신 스토아 학파에서는 개인의 가치와 윤리성의 의미 등을 발췌하여 그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영지주의에 대하나 설명은 그 내용과 계보가 다양하여 종합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① 기원 : 이레네오(Irenaeus),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 히폴리토(Hippolytus) 등 교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초기교회를 어지럽혔던 영지주의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교부들은 영지주의를 이단사상으로 다루어서 논하고 있다. 사실 영지주의는 이교철학과 그리스의 신화 그리고 동방의 종교사상 및 점성학 등의 내용이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이며 교부들은 사도행전 8장에는 영지주의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술사 시몬을 그 창시자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또한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대부분 이 내용을 그대로 수긍하고 있다. 하르나크(A. Harnack)와 같은 이는 영지주의를 극단적으로 헬레니즘화한 그리스도교 교인의 사상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사실 거기에는 적어도 긍정적이며 심오한 의미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뚜렷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반면에 나센파와 히폴리토가 언급한 바룩서(書)에 나타난 가르침 등은 말만 그리스도교적일뿐 피상적이며 공허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전에 이미 유다 영지주의 사상이 존재했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일종의 대중종교 운동으로 혼합종교형태(Syncretismus)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종교의 온갖 요소가 복합된 체계이다.

② 대표적 인물 발렌티노(Valentinus) : 발렌티노에 의하면 우주를 뛰어넘은 저편 하늘에 가장 높으신 성부(聖父) 즉 Bythos(自生的 單子, 永遠)와 그 곁에는 영원한 침묵(Sige, silentium) 즉 그분의 생각(Ennoia)이 존재한다. 이 Bythos와 Sige에세 세 쌍의 Aeon이 유출(流出)된다. 즉, Nous(理性) – Aletheia(眞理), Logos(말씀) – Zoe(生命), Anthropos(人間) – Ecclesia(敎會), 그래서 도합 8개를 이룬다. 그리고 Logos와 Zoe가 다섯 쌍의 Aeon을 배출하여 10개를 이루며, Anthropos와 Ecclesia가 여섯 쌍을 낳아 도합 12개의 Aeon을 더해 주고 있다. 그래서 모두 30개의 Aeon이 Pleroma, 즉 완전한 신성(神性), 우주를 이루며 이 중 Nous만이 성부를 알고 또한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30개의 Aeon 중 가장 낮은 것은 Sophia인데 이 지혜는 성부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에 결국 나쁜 생각(Enthymesis)을 배타하게 되었고 따라서 Sophia는 Pleroma의 수직꾼으로 임명된 십자가(Horos 또는 Stauros)를 제외한 모든 사물에 스며들게 되나 끝내 성부는 이해할 수 없는 분임을 깨닫는다. 이에 Sophia는 그 원욕을 끊어버리고 Pleroma에 계속 남아 머무를 수 있는 허락을 얻게 된다. Nous와 Aletheia는 한편 성부의 명을 받아 그리스도와 성령의 짝을 배출시켜 성부와의 관계가 무엇이고 그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리하여 하느님 세계(Pleroma)의 완성자인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맞게 된다. 그러나 Sophia의 자녀인 나쁜 생각(Enthymesis)은 하느님 세계에서 쫓겨나 하급의 Sophia 즉 Achamoth가 된다. Sophia는 빈 허공을 방황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으로 정신(Psyche)을 낳게 되는데 그 동안 고통과 고뇌를 통해 또한 물질을 배태한다. 이에 그리스도는 Sophia를 가엾게 여겨 십자가에 내려옴으로써 Sophia에게 새로운 무엇, 곧 무형적(無形的) 요소를 박아 준다. 이 결과 Sophia는 또한 영적 요소(substantia spiritualis, pneumaticum)을 배태한다. 따라서 이제 이 세상에는 세 요소, 즉 물질, 정신,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 우선 Sophia는 성부의 모상과 같은 정신을 기초로 하여 창조주(Creator) 곧 Demiurgus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한 분이다. 그리고 이어 이 지상에 인간을 창조하여 자신의 고유한 특성인 ‘정신’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그동안 Achamoth는 하느님 몰래 몇몇 사람에게만 영적 요소(Pneuma)를 박아 준다. 이 영적 요소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내적인 힘이며 원동력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을 통하여 물질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니 곧 육체적(corporalis), 정신적(animalis), 영적(spiritulais) 인간이다. 육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지극히 어렵지만, 그래도 영지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서 구원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환상, 신비, 때로는 성서의 인용으로 뒤범벅이 된 기이한 이론과 착상이 바로 영지주의의 특징인 것이다.

③ 종합 : ㉮ 영지주의 체계는 모두 이원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즉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의 이어질 수 없는 심연의 관계에서 신과 우주를 고찰한다. ㉯ 이 세상, 물질계는 제 2급의 신, 즉 Demiurgus가 그 창조주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질은 무질서에 의한 싸움과 타락 등으로 새겨난 결과로서 바로 악인 것이다. ㉰ 인간은 대부분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영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구원과 해방의 원동력이며 하늘로 이끌어 주는 길잡이이다. ㉱ 각 차원의 세계(Aeon)를 연결시키는 매개 곧 중개사상이 깔려 있다. 이 중개자를 통하여 차차 상급의 세계로 도달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 사상은 이와 같이 허구 및 공상적 우주관 그리고 신화 및 성서의 내용을 혼합시킨 체계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그 나름대로 인간의 죽음, 고통, 죄 등 큰 수수께끼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방편으로 그들은 깨달음 곧 자아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기원, 현재, 미래 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바로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이다. 선잠에서 깨고 물질과 육체에서의 해방이 영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④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의 비판 : 영지주의에 담겨 있는 많은 설명과 내용은 확실히 모든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 교인들에게도 매력을 주는 부분이 있다. 교회 역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도 또한 우리에게 성부를 계시하신 분이다. 바로 이 때문에 초기교회에서 영지주의는 오랫동안 교회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眞僞)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나 테오필루스(Thoephilus) 등은 ‘그리스도 교인은 바로 참된 지식, 즉 영지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이를 입증해준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인의 정통적 입장에서의 여지와 이단사상의 거짓 영지주의를 칼로 베듯 뚜렷이 구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영지사상이 개인의 영성과 교회의 보다 깊은 자기 이해를 위해 그리고 복음적 가르침과 학문과의 조화를 이루는데 도움을 준 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리스도 교인의 입장에서 영지주의 사상이 이단으로 탈선하게 되는 것은 이레네오 등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연유된다. 이 때문에 영지주의는 본의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 요소인 예수의 강생 그 자체와 의미를 부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성(人性)을 취한 구원의 방법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咸世雄)

[참고문헌] R. Bultmann, Bible Key Words, v. 1-5, New York 1951 / F. Notscher, Zur theologischen Terminologie der Qumran-Texte, Bonn 1956 / C.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Cambridge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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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한] 歸化 [라] conversio [영] conversion [관련] 개종

일반적으로 개종(改宗)을 뜻하는 옛말. ⇒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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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영] demon [한] 鬼神 [라] daemon

귀신이란 원시신앙이나 종교의 대상의 하나인 범신론적인 존재를 말하며,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고 하는 혼령 또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내려 주는 정령(精靈)을 가리키는 것이 동양의 일반적인 관념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악마’ 또는 ‘악령'(惡靈)으로 번역되는 ‘demon’이라는 말이 일반 술어상으로 ‘귀신’에 해당되며, 그 어원은 라틴어 ‘daemon’ 즉 ‘악령’에서, 그리스어 ‘daimon’ 즉 ‘신’, ‘천재’, ‘영혼’ 등을 뜻하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본디 ‘demon’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 개재하는 영적인 존재였으나 점차 유해한 의미를 지니게 되어, 악의에 가득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뜻하게 되었다. 구약성서 중에서의 ‘악령’은 신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 허락을 받아 비로소 인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되었었다(판관 9:23, 1열왕 22:19-22). 신약성서에서 ‘악령’ 또는 ‘악마’로 번역되는 ‘demon’은 인간에게 파고 들어와 귀신들리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마태 11,18), ‘이방의 신들'(사도 17:18)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중국, 한국에서 쓰이는 ‘귀신’이라는 어휘에는 각각 특수한 의미가 있다. 중국의 경우, ‘귀'(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며, 제(祭)를 받지 못하면, 사람의 주변에 방황하며, 화를 일으킨다고 믿어 왔다. 동북방을 ‘귀문'(鬼門)이라고 하여 귀신의 화가 이 방향에서 들어오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좋다는 관습을 낳았다. 한국의 민간신앙에 있어서의 ‘귀신’의 발생을 보면 ① 사람의 몸에는 혼(魂) · 백(魄) · 귀의 셋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오르고, 백은 땅에 들어가고, 귀는 그 중간에서 떠돌아다닌다. 귀는 산 사람으로부터 충분히 제를 받으면 원이 풀려서 자연히 없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산 사람에게 지핀다. ‘인귀'(人鬼)의 발생이 바로 이것이다. ② 귀의 거처하는 곳인 금수나 목석 등 그 자체가 하나의 귀가 된다. 무당들의 신기(神器)는 대체로 귀의 힘을 지녀 병자에게 접촉시키면 병을 없애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③ 기(氣)의 응집에 의해서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이 경우 중국의 귀신론과 깊이 관련되며, 동양철학적인 관념 즉 “천지간에 있는 만물이 모두 생기(生氣)에서 나왔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기가 응집한 것이 정(精)이고, 정의 작용이 바로 영(靈)이다. 정은 체(體)이고, 영은 용(用)이라고 보며, 정이 되어서도 작용하지 않는다면 ‘신명'(神明), ‘귀’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후사가 없는 사람의 귀는 제사를 받지 못하므로 ‘원귀'(怨鬼)가 되고, ‘기’의 사고방식에서 사람 이외에 산, 강, 나무, 돌 등 모든 것에 ‘귀’가 숨어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귀신은 원체(原體)로부터 떨어진 변생체(變生體)이고, 자기보다 강한 힘에 진압되나 바람을 일으키며, 닫힌 문을 열고 장애없이 어디에든 나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귀신은 자신의 뜻을 채우지 못하면 심술을 부리고,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백주에 대접을 받지 못한 집 또는 원한이 있는 집에 돌을 던지거나, 난데없는 불을 지르기도 한다고 해석되었다. 특히 농촌이나 산촌의 밤길은 귀신들의 출몰로 위험하며 행인을 까무러치게 한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귀신은 그 자체 성격 때문에, 쫓기고 살해되는 존재이다. 영리하지 못하므로 인간의 재간에 농락당한다고 이해되었다. 예를 들면, 문첩(門帖), 부적(符籍) 등에 쫓기고, 용사나 무당의 칼에 위협받는 존재이다. 박달나무 · 복숭아나무의 방망이에 매를 맞는 존재이며, 일반대중의 양귀(禳鬼)방법 즉 귀신 쫓는 방식에 의하여 그 난동이 진압되는데, 특히 굿거리는 귀신을 쫓고 신령님의 도움을 얻는다는 점에 중점이 두어진 양귀의례(禳鬼儀禮)로서 한국의 민간신앙을 형성함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禮記 <祭儀篇> / 李瀷, 星湖僿設 / 成俔, 용濟叢話, 卷3, 4 <志佑> / 權鼈, 海東雜錄 <家鬼條> / 增補文獻備考, 卷63 / 東國輿地勝覽 / A. Kohut, Uber die judische Angelologie und Damonologie, Leipzig 1866 / J. Smit, De daemoniacis in historia evangelica, Roma 1913 / H. Obendiek, Satanismus und Damonie, 1928 / M. Gruenthaner, The Demonology of the O.T., Cath-BiblQuart 6, 1944 / E. Langton, La demonologie : Etude de la doctrine juive et chretienne, Paris 1951 / 孫晋泰, 韓國民族說話의 硏究 / 張秉吉, 韓國의 固有宗敎와 大衆宗敎, 새교육, 20권 5호(통권 163호), 서울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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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한] 權喜

권희(179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바라. 성인 이광헌(李光獻)의 처. 성녀 이 아가다의 모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역시 외교인이던 이광헌과 결혼했으나 1817년 경 남편과 함께 입교한 후로는 열심히 수계했고, 박해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의 직무를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를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케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혹독한 형벌을 당했는데 12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모든 유혹과 형벌을 견뎌냈고 이러한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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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한] 權限 [라] facultates [영] faculties

주교들이 성청과 교구 사제들이 지역 재치권자로부터 각각 부여받은 재치권 행사의 권능. 이는 고해성사의 사죄권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즉 고해신부가 고해성사를 합법적이며 유효하게 집전하기 위해서는 서품을 통하여 받은 신품권뿐 아니라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사목 행정상의 ‘권한’을 아울러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다(교회법 제966, 969조 참조). 권한은 고해성사와 기타 모든 성사의 집전을 위해서 뿐 아니라, 널리 신품권과 교도권과 협의의 사목권의 합법적 행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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