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경 [한] 九時經 [라] nona [관련] 성무일도

오후 3시경에 바치는 성무일도를 말한다. 이 시각은 전례적인 시간으로 제9시에 해당한다. 이 시각에 기도 드리는 것은 사도 행전 3장 1절의 성서말씀과, 이 시각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을 근거로 한다. 내용적으로 구시경은, 하루의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때에 저녁을 앞두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얻게 된 ‘생명의 빛’을 간원한다. 찬미가와 세 가지 시편, 성경소구, 응송, 본기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된 성무일도에서 가대 의무가 없을 때 소시경 즉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중에서 그 날의 제시각에 더 적합한 하나를 선택하여 바치게 되어 있다(전례헌장 89항 e). (⇒) 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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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한] 救贖 [라] redemptio [영] redemption [관련] 구원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제하여 은총속에 하느님과 재(再)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구원행위. 글자 뜻 그대로는 자유롭게 하거나 되사는 것을 말한다. 구속은 죄악으로부터의 구제라는 측면과 하느님과의 재일치라는 측면을 갖는데, 그리스교부들은 후자를, 라틴교부들은 전자를 강조하였고, 아우구스티노와 그뒤의 스콜라신학은 원죄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인간은 악마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을 거역함으로써 하느님과 더불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인간 본연의 은총의 지위를 잃고 죄악의 노예 신세가 되어 영원한 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에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대신 보속함으로써 인간을 죄악과 그 벌에서 구제하고 인간 본연의 은총의 지위를 회복하여 하느님과 재일치시켰다.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가 결렬되는 것이요, 하느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한편 인간이 자행하는 것이요, 인간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속이 죄악에서 구제 되는 것이라 할때 구속은 이미 성취된 것일 뿐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안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거스릴 뿐이고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속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행위로 나타나고, 하느님과의 재일치의 주체 또한 인간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구속은 하느님의 행위로 부각되고, 재일치의 주역은 하느님이시다. 구속은 하느님이 주도하신 사업이요, 그리스도가 이 사업의 중재자로서 강생, 수난, 죽음, 부활로 성취한 업적이다. 한 때 구속의 ‘필연성’이 널리 논의된 적이 있으나, 하느님은 전혀 자유로운 사랑과 자비의 발로로 구속을 하셨으며, 구속은 인간에게 공짜로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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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한] 救世主 [라] Salvator [영] Saviour

인류를 죄악과 파멸의 상태에서 구원하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개념이 생성된 것은 구약시대의 출애급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이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야훼 하느님이야말로 인류가 상속받아 왔던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과 억압의 쇠사슬에서 해방시킬 구세주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그 뒤 왕조시대를 지나고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그들의 지배하에서 신음하게 된다. 여기서 구세주의 상(像)은 점차 뚜렷하게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즉 구세주란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이민족의 압제와 수탈로부터 해방시키는 메시아인 것이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인류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며, 그것은 다윗의 아들, 즉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심을 의미한다.

예수의 탄생과 활동과 죽음, 부활은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역사에 참여하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무작위로 인류를 구원하지는 않는다. 의로운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의인(義人)들에게 구세주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다. 이렇게 하여 구세주는 인류를 해방시키고 구원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의로운 자를 세우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통하여 악한 자를 벌할 심판자로서 부각된다. 구세주는 인류의 현세적인 해방자인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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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사 [한] 救世史 [영] Salvation history [독] Heilsgeschichte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므로 성서의 역사관은 구세사라고 불려진다. 이는 성서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편하다. 성서를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곧 종교사요 구세사였고 그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며 구세주의 내림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 구세사의 개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출애급의 경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까닭이 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확신했었다. 그들의 개인적 국가적 흥망성쇄가 야훼께 충성을 다하느냐 않느냐에 달렸음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구세사가 절정에 이르면 조상들과 맺은 옛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대치되어 완성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믿음을 가졌다. 신약시대에 예수는 구약의 예언과 구원의 희망을 완성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알았고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왕국이 자신의 활약으로 도래해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구세사는 세상 종말에 부활과 심판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도래해 있으나(히브 1:2) 아직 미래에 완성될 여지가 남아 있다(already but not yet)고 이해했던 것이다(사도 3:21). 이를 신학적 용어로 기현화종말론(旣現化終末論, realized eschatology)이라고 한다.

교의신학적인 관점에서 구세사는 성서 주석의 기준이 되고 신학적인 명제로 얘된다. 성서 주석의 기준이 되고 신학적인 명제로 이해된다. 성서주석의 기준으로서 구세사는 하느님이 성서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점진적으로 해 왔으므로, 주석자는 성서적 신앙이 유기적인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시대를 구분하라, 그러면 성서 내용이 조화될 것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신학적인 명제로서의 구세사는 ‘구세’와 ‘역사’라는 두 개념이 합쳐진 말이다. ‘구세’ 또는 구원은 인간을 소극적으로 악의 지배에서 해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재결합시키는 하느님의 행위를 말하고, ‘역사’는 인간사의 실재 과정 뿐아니라 그 기록을 의미한다. 구세사라 할 때 구세는 역사적인 것이고 그 역사는 구세적인 것임을 뜻한다.

구원의 역사성은 3가지 명제를 포함한다. ① 창조된 인간의 반역행위 때부터 구원행위는 새로운 창조행위로 인간역사에 나타났다는 점, ②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인간 역사의 전개 안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점, ③ 한때 행해진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쳐 실현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구세사의 과정에 참여한다. 예수는 죄와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구원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속됨으로써 현재에 사는 온 인류는 과거의 구원사건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

[참고문헌] J. Baillie, The Idea of Revelation in Recent Thought, New York 1956 / O. Cullmann, Christ and Time, tr. F. V. Filson, rev. ed., Philadelphia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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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한] 救世軍 [영] Salvation Army

19세기에 영국의 윌리엄 부드(William Booth)가 창설한 국제 규모의 교단이다. 그리스도 복음 전파, 신앙공동체 형성, 빈곤과 악의 타파를 통한 사회 개혁을 지향한다. 교리는 감리교의 영향을 많이 받긴 하였으나 특정한 교파의 교리를 초월하여 있으며, 성서를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조직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군대식을 채택하고 있다.

웨즐리 감리교회를 거쳐 개혁 감리교회의 목사였던 부드는 순회전도를 둘러싼 교단과의 마찰로 1861년 감리교회를 떠나 한 때 런던 동부의 화이트 채플(White Chapel)에 세워진 천막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는 이 곳에서 수많은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빈민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화적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빈곤과 죄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 빈민가의 모든 문제는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 부드는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빈민가 전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이리하여 후에 구세군 운동이 된 빈민가 전도는 런던 중부의 최하류 계층민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뒤 10여년이 지난 1875년 소위 ‘기독교전도회'(the Christian Mission)이라고 불리게 된 그의 전도회는 32개의 지회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드는 교회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이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보다 강력한 전도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복음전파에 있어서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그 호소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고안된 조직이 군대식이었다. 1878년 기독교전도회는 군대 조직으로 개편되었고 2년 뒤에는 명칭도 ‘구세군’으로 변경되었다. 1880년부터 구세군은 해외로 진출하여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구세군은 행정상 영국 런던에 만국본영(萬國本營, International Headquarters)을 두고 있다. 또한 1950년 영적 군대로서의 구세군 병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국사관대학(The Salvation Army International Training University)을 세웠다.

빈민구제와 매춘, 음주 등의 사회악 근절을 위해 출발한 구제군이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은 1908년의 일이다. 창설자인 부드 대장에 의해 파견된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rd) 정령(正領)은 서울 평동에다 구세군대한본영(救世軍大韓本營, The Salvation Army Territorial Headquarters in Korea)을 설치하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폐쇄된 해주 · 개성지방본영 및 서울, 충서, 충청, 경북, 경남, 전라 등 6개 지방 본영 아래 8만 6,000여명의 신자들이 있다. 매월 <구세공보>를 발행하며, 월 2회 <뉴스레터>도 발간한다. 산하기관으로는 구세군사관학교, 기술학교, 신학원, 통신대학, 어린이집, 육아시설, 부녀시설, 양로시설 등 24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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