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동방의 주교들에 의해 소집되었고, 그들만이 참가하여 제5차(533년), 제6차(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다루다가 결정을 보지 못했던 사항들을 다루었다. 이 회의는 성사(聖事)로 집행된 결혼이 합법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교황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방교회가 재혼을 허용하는 것은 이 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가 트룰로스 교회회의라고 불리는 까닭은 회의가 개최된 곳이 그리스어로 트룰로스(Trullos)라고 불리는 ‘둥근 천정’이 있는 황제의 궁전이었기 때문이다.
트라피스트회 [한] ∼會 [라] Ordo Cisterceinsium Reformatorum [영] Trappists [관련] 시토회
1098년 프랑스의 시토(Citeaux)에 세워진 수도회, 즉 시토회 중 ‘엄률(嚴律) 시토회’의 주요 수도회. 1892년 시토수도원이 모원(母院)으로 회복될 때까지 라 트라프(La Trappe)가 엄률 시토회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1664년 랑세(A.J. Le B. de Rance)에 의해 개혁의 물결이 일게 되었으며 이 때 ‘트라피스트’란 이름이 생겨났다. 이는 이전의 시토회의 성격을 보유하면서 더욱 엄격성을 추가한 회였다. 트라피스트의 생활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으로 요약된다. 현재 85개 수도원에 3,100명의 회원이 있다. (⇒) 시토회
튀빙겐학파 [한] ∼學派 [영] Tubingen School [독] Tubingen Schule
18∼19세기의 독일의 튀빙겐대학 교수들에 의해 형성된 학파로 가톨릭적인 구(舊)튀빙겐학파와 프로테스탄트적인 신(新)튀빙겐학파로 구분된다. 스토르(G.C. Storr, ?∼1805)에 의해 창시되어 쿤(J. Kuhn)과 그 제자들의 의해 계승된 구 튀빙겐학파는 역사적 방법과 사변적 방법을 유기적으로 통합시켜 신학의 독특한 방법론을 개발하였고, 근대의 사상사조를 반영한 근대철학을 신학에 도입하였다. 또한 유리주의(唯理主義)와 경건주의(敬虔主義)의 영향을 받고 신학적인 자기 성찰을 통하여 헌대 독일 신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한편 19세기에 이르르면 헤겔의 영향을 받은 바우르(F.C. von Baur)에 의해 신 튀빙겐학파가 형성된다. 바우르는 헤겔철학의 방법론을 신학의 모든 분야에 적용하여 신학에서 역사적 방법론을 개발하였다. 이 방법론은 젤러(E. Zeller), 시베글러(A. Schwegler), 볼크마르(Volkmar)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투리비오 [라] Turibius, Alfonsus de Mongrovejo
Turibius, Alfonsus de Mongrovejo(1938∼1606). 성인. 축일은 3월 23일. 남아메리카 리마(Lima, 현 페루의 수도)의 대주교. 그는 스페인보호권의 전제정치적 남용과 수많은 면속권 및 특권에 대한 투쟁 등 교회와 포교사업의 조직, 그리고 학교 · 자선시설 · 성당 · 수도원 · 신학교 설립, 서부남아메리카 최초의 인쇄소 설립 등 종교 생활의 향상과 인디언의 문명 · 문화보호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679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시복(諡福), 1726년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성 대(大) 게르트루디스와 나란히 페루의 보호성인이다.
퇴강본당 [한] 退江本堂
1922년 경북 상주군 사벌면 퇴강리(慶北 尙州郡 沙伐面 退江里)에 창설되어 1969년 폐쇄된 본당. 주보는 성모승천. 퇴강은 1890년대말 상주군 일대를 관할하는 공소로 설정되어 1922년 대구교구 소속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이종필(李鍾弼, 마티아)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31년까지 사목하면서 1923년 사제관을, 1924년 성당을 건축하여 본당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36년 상주본당(현재의 서문동본당)을 분할, 독립시켰고, 일제말기에는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본당발전은 주춤거리게 되었다. 더욱이 1940년 3대 주임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가 전임된 후, 후임 신부가 부임하지 못해 상주본당의 공소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을 재출발하게 되었고, 1952년 왜관대리구의 설정과 함께 대구교구에서 왜관대리구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69년 안동교구의 설정과 함께 다시 왜관대리구에서 안동교구로 편입되었으나 곧 본당은 폐쇄되고 함창 본당의 공소로만 남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7년의 교세는 신자수 1,213명, 공소 4개소였다. 역대 주임신부의 명단과 재임기간은 다음과 같다. 1대 이종필(1922∼1931년), 2대 이성인(李聖仁, 1931∼1934년), 3대 정수길(1935∼1940년), 4대 김준필(1945∼1948년), 5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1954∼1956년), 6대 최영호(崔榮浩, 비안네, 1956∼1965년), 7대 박태산(朴泰山, 요아킴, 1966∼196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