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 [원] Schall von Bell, Johannes Adam

Schall von Bell, Johannes Adam(1591-1666). 예수회 소속 중국선교사. 중국명 탕약망(湯若望), 자(字)는 도미(道美). 독일 쾰른(Koln)에서 출생, 여기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608년 로마에 유학, 제르마니쿰(Germanicum)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611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618년 사제서품을 받고 중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622년 중국에 입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서 3년간 전교했고, 1630년 명(明) 의종(毅宗)의 명으로 ≪숭정역서≫ (崇禎曆書) 편찬에 참여, 1634년 그 완성을 보았다. 1644년 청(淸)에 의해 북경이 함락된 후, 청 순치제(順治帝)의 신임을 얻어 흠천감정(欽天監正)이 되었고 이 때 청에 볼모로 잡혀 왔던 조선의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친교를 맺어 서구과학에 대한 지식과 천주교 교리를 담론하고 귀국하는 소현세자에게 천문역산서 · 서학서 · 여지구 등과 천주상을 주어 조선이 최초로 서구문명과 접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646년 ≪대청시헌력≫(大淸時憲曆)을 편찬, 이 공로로 태상사경(太常寺卿)이 되었고 1650년 교리연구 · 학문연구와 전교를 위해 북경에 천주당 남당(南堂)을 지었으며 이듬해 통의대부(通儀大夫)가 되었다. 1664년 오명환(吳明-) · 양광선(陽光先) 등의 모함으로 한때 투옥되기도 했으나 순치제 어머니의 노력으로 석방되었고 그 후 1666년 북경에서 사망, 북경 부성문(阜城門) 밖 묘지에 안장되었다. 리치와 함께 중국 천주교회 발전에 크게 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進呈書像≫, ≪主制군微≫(緯主, 1629), ≪主敎綠起≫(北京 1643), ≪眞福訓詮≫, ≪渾天義說≫, ≪西洋測日曆≫, ≪學曆小辯≫, ≪民曆補註解惑≫, ≪新曆曉惑≫, ≪奏硫≫, ≪新法曆引≫, ≪曆法西傳≫, ≪西洋新法曆書≫, ≪崇一堂日記隨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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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브리앙 [원] Chateaubriand, Francois Rene Vicomte de

Chateaubriand, Francois Rene Vicomte de(1768-1848). 프랑스의 소설가. 정치가로서도 알려졌고 특히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자로서 ≪그리스도교의 진수(眞髓≫(La genie du Christianisme), ≪아탈라≫(Atala), ≪르네≫(Rene) 등의 작품을 남겼다. 문장은 화려하고 상상력에 넘쳐 있으며 웅대한 묘사력과 아울러 낭만주의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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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스탕 [원] Chastan, Jacques Honore

Chastan, Jacques Honore(1803-1839). 모방(Maubant) 신부에 이어 서양인 선교사로서 두 번째로 입국하여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순교한 성인. 축일은 9월 20일. 한국 이름은 정아각백(鄭牙各伯). 샤스탕 신부는 1803년 10월 7일에 프랑스의 마르쿠(Marcoux)에서 태어나 1826년 디뉴(Digne) 대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신부가 되었다. 이듬해 1월 13일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같은 해 4월 22일 우선 마카오로 보내졌다. 마카오에 상륙하자 그는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여 수락되었다. 그는 페낭(Penang)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거기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주교가 조선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조선 입국을 위해 떠나게 되자, 샤스탕 신부는 자기도 평소에 원했던 조선으로 함께 동행하기를 주교에게 청하였다. 그의 청은 받아들여져, 1833년 5월에 조선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 후 3년간을 중국대륙과 몽고 · 만주를 거쳐 조선 국경까지 갔으나 그를 인도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는 입국의 기회를 기다리면서 2년간 산동(山東) 교우들을 돌보았다. 그동안 함께 조선 입국을 시도하던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주 땅에서 잃었고, 동료 신부인 모방신부가 1836년 1월에 먼저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으므로, 그의 통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1836년 12월 28일 모방 신부의 기별을 받고 변문으로 간 샤스탕 신부는, 유방제(劉方濟) 신부와 마카오로 유학가는 김대건(金大建) 등 세 소년의 신학생을 전송하던 조선 교우들을 만나, 함께 무사히 국경을 넘어 1837년 1월 15일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 머무르면서 조선말을 배우는 한편 성사를 집행하다가 부활축일을 양근(楊根)에 가 있던 모방신부에게로 가서 함께 보낸 다음, 손을 나누어 각도의 교우들을 찾아보는 길에 올랐다. 상제옷을 입고 험한 산길을 헤매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소금에 절인 야채 따위로 공복을 채워야 했으며, 밤새도록 고해를 듣고 미사를 드린 다음, 그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마을로 길을 떠나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1837년 7월 중순에 지방에서 전교 중이던 모방 신부가 병을 얻어 중태에 빠져 서울로 이송되자, 샤스탕 신부는 곧 그에게로 달려가 병자성사를 주었다. 다행히도 모방 신부는 간병으로 건강이 회복되었으므로, 샤스탕 신부는 남쪽지방으로 다시 내려가 전교에 힘썼다. 그 무렵 제 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그 해 12월말에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서울로 도착하니, 샤스탕 신부는 1938년 5월에야 서울로 올라와 주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로써 조선교구는 교회 창설 52년만에, 그리고 교구 설정 7년만에 비로소 주교와 선교사를 함께 모시게 되어 명실공히 모든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주교와 샤스탕, 모방 두 신부는 함께 서울의 교우들을 돌보다가 샤스탕 신부는 다시 남쪽지방으로 내려가 전교에 힘썼다. 한편 그는 회장 한 사람을 부산(釜山)에 내려 보내, 류우꾸(琉球)지방의 전교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주교를 비롯한 세 서양인 성직자가 조선에 들어와 있다는 소문이 차차 퍼지게 되자 관헌에서는 당쟁의 여파까지 곁들여, 천주교의 탄압을 강화하여 1839년 기해년(己亥年) 봄에 많은 교인들을 잡아 피를 흘리게 했고, 외국인 선교사를 잡으려는 관헌의 추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이에 수원(水原) 남쪽 서해안의 외딴 곳에 피신한 주교는 점점 심해지는 박해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전교 중이던 샤스탕 신부와 모방 신부를 불러 이에 대처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주교는 이 자리에서 혼자만이 남고 두 신부는 청국으로 피신할 것을 종용했으나, 두 신부는 끝까지 함께 남기를 결심하여 다시금 각각 맡은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주교는 배교자 김순성(金順成)의 간계로 그의 거처가 알려져 1839년 8월 10일 스스로 나아가 잡히는 몸이 되었다.

주교가 잡히기 전에 쓴 자수를 권하는 편지를 받은 샤스탕 신부는 곧 모방 신부에게 달려가 함께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교우들과 외방전교회에 보내는 고별편지를 쓴 다음 9월 6일 홍주(洪州)로 나아가 관헌에 자수하였다. 서울로 압송된 두 사람은 주교와 함께 포도청에 수용되어 고문을 받다가, 9월 21일에 군문효수(軍門梟首)라는 극형으로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그 때 샤스탕 신부의 나이는 37세로 조선 입국이래 2년 9개월만의 일이었다.

그의 시체는 다른 두 성직자의 시체와 함께 교우들의 손으로 신촌 노고산에 묻혔다가 1843년에 시흥(始興) 삼성산(三聖山)으로 옮겨 묻었으나, 1901년 11월 2일에는 명동 대성당 지하실에 모시게 되었다. 그의 거룩한 순교정신은 1925년 7월 5일, 로마 교황청에서 장엄한 시복식이 거행됨으로써 기해박해의 순교자 및 병오년의 순교자 78명과 함께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복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참고문헌] Ch. Dallet,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 / Launay, Martyrs Fancais et Coreens 1838-1846, Paris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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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 [영] shamanism [독] Schamanismus [프] shamanisme

중앙아시아 또는 시베리아의 원주민 여러 부족사이의 원시종교였는데, 이것이 극동지방으로 옮겨와 무녀교(巫女敎) 또는 무교(巫敎)로 통용되었다. 이 종교현상은 모권적(母權的) 태음신화적(太陰神話的)인 문화권에서 일어난 심령 신앙 및 예배의 일종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샤먼’ 이란 말은 시베리아의 퉁구스(Tungus)족의 언어인 ‘saman'(薩滿)과 인도범어의 ‘사문'(沙門)의 원어인 ‘sramana'(산스크리트어) 나 ‘samana'(팔리어)와 동일계열의 어원으로 생각한다는 설, 페르시아어 ‘shemen'(우상)에서 전환된 말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이 샤먼이라는 용어는, 19세기이래, 민족학자, 여행가들에 의하여 극북(極北) 또는 북아시아의 무술사(巫術師) 곧 종교적인 직능자 일반에게 적용해온 용어로서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 뒤 더 나아가서 종교학 · 민족학 · 인류학 등에 있어서 세계각지의 이와 유사한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서 널리 쓰여져 왔다.

샤머니즘은, 자연 현상이나 인간사를 신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무술사 즉, 무당을 통하여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지 성취되며, 선악 두 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샤머니즘의 분포를 보면, 전형적 제도적인 형태는 극북 · 동북 · 중앙 아시아지역,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족들, 인도의 아삼 및 중동부지역 여러 민족에게 퍼져 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주로 시베리아, 중국, 만주, 한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 오세아니아에는 조직적인 형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걸쳐서는 영매(靈媒)현상이 눈에 띈다.

샤머니즘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관계하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인 성격을 띤다는데 있다. 즉 열광상태에서 채택하는 접촉 · 교통의 방식으로서 탈혼(脫魂, ecstasy, soulloss)이나 빙의(憑依, possession)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것을 뒷받침해 준다. 이밖에 샤먼의 역할상에서 영혼, 정령(精靈), 타계(他界) 관념 등이 큰 뜻을 지닌다. 샤머니즘 성립의 기초에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은 형체가 있는 것들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정령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샤먼이 가야 할 장소로서의 세계 또는 타계(즉 천상, 지상, 지하)의 관념이 수반하고 있다.

샤먼은 무술을 행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이 무술사는 비교적 신경이 예민하고 우울하면서도 몽상적인 성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병(巫病)현상을 초래하기 일쑤이며, 그것이 흔히 세습적이기는 했지만 이에 합당한 성격의 소유자가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세습적인 것은 아니었다. 샤먼이 되는 데는 엄격한 수행과 훈련을 거쳐야만 했고 특히 정령과의 교통경험을 가져야만 한다. 샤먼은 신화적인 표상에 입각한 의복을 입고서 북을 울리며 열광상태로 심령과 교통한다.

선신(善神)에게 제사하고 악령을 추방하며, 황홀경에서 탈혼기술을 구사하여 죽은 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거나 불러오거나 하고, 점을 쳐 길흉을 예언하고, 주의(呪醫, medicine man)로서 병마를 몰아내며, 신령의 의지를 직접 전달하는 탁선자(託宣者, oracle)의 능력을 발휘한다. 일설에는 여계(女系) 정치시대의 종교적인 유산이라고 보지만 한국에서도 흔히 무당은 여자인 경우가 많으나, ‘판수’ 라고 하여 남자 무당도 있다. 어쨌든 샤먼의 직분은 인간과 최고자와의 중개를 하는 사제(司祭)와는 다르다. 하지만 문명에 접하지 못한 사회에서 그들이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샤머니즘에 있어서의 무술의 목적이 주로 신령의 힘을 빌어 병마를 추방하고 불행과 재난을 예방하는데 있으므로, 이른바 현재적인 실리 본위의 신앙형태이며, 특히 악령과 교통하는 ‘흑 샤먼’, 선령과 교통하는 ‘백 샤먼’을 구분하는 사례도 있다. 일반적으로 샤머니즘은 세계각지의 문명에 접하지 않은 사회 즉 저(低)문화지대에 성행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위로의 역할을 해온 종교의 현상 · 형태였다.

[참고문헌] Radloff, Der Schamanismus und sein Kultus, 1885 / M. Czaplicka, Aboriginal Siveria, Oxford 1914 / K. Rasmussen, Intellectual Culture of the Iglulik Eskimos, Report of the Fifth Thule Expedition, 1921-1924, VII-1, 1929 / S.M. Shirokogorov, Psychomental Complex of the Tungus, London 1935 / I.M., Lewis, Ecstatic Religion: An Anthropological study of Spirit Possession and Shamanism, Baltimore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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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드 푸코 [원] Charles de Foucauld [관련] 푸코

⇒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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