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교위원회 [한] 社會主敎委員會 [영] Commission for Social Affairs [관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산하 상설 주교위원회 가운데 하나. 그전까지 분과위원회제로 운영되었으나 1981년 10월 14일 주교회의의 결의에 따라 주교위원회로 개편되었다. 구성은 6명의 주교와 총무신부 1명으로 이뤄져 있고, 필요에 따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문위원을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사회복지, 정의, 평화, 매스컴,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제반문제를 연구·심의하며 인성회, 나사업가연합회, 정의평화위원회, 매스컴위원회 등의 단체들을 지도 · 감독한다.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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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 [한] 社會正義 [영] social justice

가톨릭 교회는 그 본질상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던지고 썩어 가는 양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마태 25:31-40)이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이유이다. 따라서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사목헌장 1).

그러나 과거의 교회는 성속이원론(成俗二元論)이 지배하여 세상이나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만이 완전사회이며 선(善)을 독점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豫言職)은 망각되고 인간의 자유, 인간의 권리, 인간의 해방 등에 대해서 외면하였으며, 때때로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를 단죄(斷罪)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체제와 공존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수행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의 빈곤에 대해서 오직 침묵을 지킴으로써 교회는 약한 자의 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레오 13세가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1891)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요한 23세의 말대로 이 회칙은 ‘경제사회 대헌장’이었다. 그 후 비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 1931)는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재천명하고 인간의 평등성에 의하여 계급간의 관계가 균형잡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와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정의를 뚜렷하게 재정립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는 볼 수 있는 단체요 영적 공동체로서 전인류와 함께 길을 걸으며 세계와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사목헌장 40)고 천명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사목헌장 41).

바오로 6세에 이르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에서 세계인류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서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레룸 노바룸 반포 80주년(1971년)을 맞이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교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모든 회칙들은 교회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역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해야 하며 사회의 양심이 됨으로써 이 지상에서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사회문제는 바로 인간윤리의 문제이며 인간윤리의 문제는 바로 교회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의 교회는 많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의 누룩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황청 정의 평화위원회와 각국의 정의 평화위원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가톨릭 교회가 지향하는 정의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품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행복한 생활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공정히 분배받아야 하며, 각자의 정당한 포부가 이루어지고 진리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인종 · 종교 · 연령 · 언어 · 계급 · 성의 차별 없이 인격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어떠한 체제의 객체(客體)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압제적 제도, 불의에 가득찬 사회를 정력적으로 비판하여 그 시정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보고 침묵만을 지키면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저지른 자와 공범자(共犯者)로 취급당하게 된다. 부정과 불의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권력 · 부의 특권화다. 따라서 교회는 권력을 장악한 자와 부를 누리는 자가 권력과 부의 노예화에서 해방되도록 각성시켜야 하며, 이 세상에서 야기되는 압박과 착취의 상황을 진보와 희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상황들을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하는 복음화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인류 구원은 영신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적 구원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인간의 구원이 요구한다면 불의를 규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교회와 인권 57).

교회의 사회참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권의 문제다. 인간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은 성서와 모든 교회문헌의 핵심사상이다. 특히 가난한 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의무다. 그러기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교회는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권옹호의 고무자였다는 점에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며 성직의 책임이다. 또 인권이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인권의 수호자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인간의 기본권, 영혼의 구원에 필요할 때 교회는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사목헌장 76).

물론 교회가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사랑·봉사·희생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교세의 양적 증가에 힘쓰는 한편 사랑의 사도로서의 영성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교회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가 요구된다. 평신도야말로 복음의 증거자로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권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도 의식화시켜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인권존중이 선결되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교회의 사회운동은 자연법과 복음의 한계 내에서 보편성과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폭력은 그리스도교인적인 것도 아니요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폭력과 피동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어떠한 특정한 사회체제를 주장하거나 배격해서도 안 된다. 결국 교회는 정의와 공동선에 일치하는 체제는 그것을 찬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격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은 교회의 많은 사명 중의 하나이지 전부는 아니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 이후 사회정의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노동청년회와 농민회가 조직되어 노동자의 권익과 농민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조직되어 부정과 불의 및 인권의 침해에 대해서 항의해 왔다. 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때 성명서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정의의 원리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사협조만이 승공(勝共)의 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평등하다. 노동자는 결사의 자유와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바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이 한국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하여 그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후 1975년 2월 28일 주교단은 지학순(池學淳) 주교사건을 계기로 메시지를 발표하여 부정부패 · 사회부조리 · 인권유린에 대한 교회의 예언직 수행을 재천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도 1977년 3월 28일의 성명서를 통해서 교회는 인권과 관련하여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는 것, 김지하(金芝河)를 석방할 것, 성직자에 대한 연금과 감시 연행을 중지할 것 등을 정부당국에 요구하였다. 1978년 7월 11일 및 7월 25일에도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정의의 구현, 민주정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동년 8월과 9월에는 오원춘(吳元春) 사건을 계기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1974년 11월 6일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1975년 3월 21일에는 동아일보사건에 즈음하여 언론의 자유를 선언하고 한일외교정상화에 대한 태도를 밝혔으며 구속된 양심범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 후 1977년 4월 18일에도 시국선언을 발표하여 정치권력의 본질은 공동선의 추구에 있다는 것,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할 것, 3.1구국선언은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상으로 가톨릭 교회가 사회정의, 인권,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를 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많은 종파가 있고 무종교자도 있다. 따라서 그들 중에서 하느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식하고 같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의구현과 인권수호가 가톨릭 교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할 때 불의를 자행한 사람과의 대화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가진 자도 구원해야 하는 보편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과 일치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함으로써만이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예언직과 활동은 언제나 교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결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계층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대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 정의 (韓庸熙)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교회와 인권, 분도출판사, 1975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현대 가톨릭사상, 서광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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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론 [한] 社會理論 [영] social theory

사회이론이란 사회에 관한 이론이다. 사회란 일정한 시공(時空)을 점유한 인적 결합체이다. 일정한 인적 결합체이긴 하지만 다만 우연적인 결합체를 사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군집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가 그것으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일정한 기능을 어느 정도 항구적으로 수행하여야 하고, 그 기능이 수행되기 위한 규범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회는 생성하여 발전하며 변동한다. 그러므로 사회이론이란 사회의 생성 · 발전 · 변동에 관한 이론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사회현상에 관한 체계적 연구는 소크라테스 후기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행해졌다. 사회의 윤리와 사회에 관한 일반적 이론이 이집트의 학자들의 작품과 함무라비 법전, 인도의 성전, 중국의 유교 경전, 히브리아 성서 등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초기의 시도는 어떤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였고, 사회의 일반 이론이라기보다는 철학이나 윤리학, 정치학 등의 학문의 한 분야로서 행하여진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공화국≫(Republic)속에서 사회의 이론체계의 윤곽을 제시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Nichomachean ethics)에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탐구하고, 인간은 사회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밝혔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큐리아학파가 이 방면에 대한 연구를 더욱 진전시켰고, 폴리비우스(Polybius)와 같은 역사가도 사회에 관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성 아우구스티노와 여러 교부들은 고전적 학문을 원용하여 사회를 인간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의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관을 수용하여 정의라든가 정치적 합법성과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즉 이때까지도 사회에 관한 이론은 윤리학 · 정치학 등과 구별되지 않고 있었다.

14세기에 회교도 사학자 이븐 칼둔(Ibn Khaldun)은 아랍민족에 대한 연구에서 역사 발전의 계속성을 강조하였고, 그의 연구는 17세기의 콩도르세(M. Condorcet), 비코(B.B. Bico), 고드윈(Francis Godwin) 등에 전승되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여 정치학이 윤리학과 결별하면서 역사는 신학과 분리되었다. 이러한 발전과 보조를 같이하여 인간과 사회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물론 사회개혁운동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중세가 붕괴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도주의가 새로운 사회운동의 양상을 띠고 등장하였다. 이 방면의 연구로서 모어(Thomas More), 생 시몽(Saint Simon)등이 있다. 사회현상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전통적 접근방법은 근대 초기에 큰 변혁을 겪었다. 그것에는 베이컨(Frencis Bacon)의 귀납법의 도입과 뉴턴(Isac Newton)의 물리학 이론 등이 큰 작용을 하였다.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모든 시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절대질서(absolute social order)의 관념을 배척하고, 특정시대, 특정국민에게는 그에 알맞은 사회질서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합리주의와 민족주의, 자본주의가 발흥하면서 오스틴(John Oustin), 티보(Anton Thibaut), 사비니(F.K. von Sabigny)에 의하여 법률학 연구가 크게 활기를 띠고, 스미드(Adam Smith), 리카도(David Ricardo), 밀(J.S. Mill)등에 의하여 근대 경제학이 발흥하였다.

사회에 관한 이론이 독립과학으로서 연구된 것은 1839년 콩트(Auguste Comte)에 의해서다. 그는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른바 실증주의(positivism)를 창시하였다. 당초에 그는 사회현상에 관한 이 새로운 학문을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이라고 명명하려고 하였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현상에 관한 학문을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등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지식이 3단계 –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또는 과학적 단계 – 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생 시몽의 제자로서 사회발전과 사회정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사회학의 연구방법으로서 관찰 · 실험 · 비교 등의 방법을 도입하였으나 그 중에서 특히 비교연구법을 중시하였다.

산업혁명이후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고 국제적 교류가 빈번하여 짐에 따라서 대중사회에서의 인간의 역할과 기능, 인간의 소외, 도시화, 공해문제, 범죄문제, 조직사회에서의 개인의 역할 등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행하여지고, 사회학은 특히 심리학 등의 도움을 받아 많은 훌륭한 이론적 업적을 쌓았으며, 이렇게 정치(精緻)한 사회학 이론은 역(逆)으로 정치학, 법률학, 범죄학 등에 공헌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괄목할 만한 업적들은 뒤르켐(E. Durkheim)등의 기능주의(機能主義), 스펜서(H. Spencer)등의 신화론적 사회학, 마르크스(Karl Marx)의 변증법적 유물론, 베버(M. Weber)등의 관념주의 사회학, 파슨즈(Theophilus Parsons) 등의 구조기능주의 등의 접근방법이 있다.

[참고문헌] E.F. Borgatta and H.J. Meyer, Sociological theory, New York 1961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金璟東, 現代의 社會學, 博英社,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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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위원회 [한] 社會事業委員會 [라] Pontificium Consilium de humana et Christiana progressio

Pontificium Consilium ≪Cor Unum≫ de humana et Christiana progressione fovenda. 교황청위원회 소속으로 사회발전을 위해 상부상조하여 개발을 촉진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 교황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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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 [한] 社會事業 [영] social service

가톨릭 교회는 단순한 전례의 공동체나 신앙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이(마태 5:13-16) 되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 안의 어두운 곳을 찾아서 어두움을 없애고 광명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너무도 어두운 곳이 많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든 사람, 육체는 건강하나 정신이 병든 자, 정신은 건강하나 육체가 병든 자 등이 있다.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그들의 희망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교회의 생명이다. 물론 교회의 본질은 모든 인류를 보편적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히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구원하러 왔다. 그리고 그는 눈먼 소경과 나병환자를 고쳤다. 특히 그리스도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도록(마태 25:31-40)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국 가톨릭 교회는 200년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회사업을 전개하였으며 현대에 와서 고통받는 이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 교회가 버림받고 소외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현세적인 구원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과거의 교회는 현세적인 구원보다 내세의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적인 고통을 내세에서의 영생을 위한 준비와 보속으로 생각하였다. 신앙은 오늘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인류를 창조할 때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고통없이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으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우주만물을 지배하여 잘 살기를 바랐다. 따라서 교회는 사후의 문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현세 안에서 고통받고 버림받은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교회의 기능이 사회사업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적 사업 중에는 교육사업, 의료사업, 문화사업, 사회사업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교육사업, 의료사업, 문화사업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항목에서 기술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사회사업에 한정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사회사업은 그 비중에 있어서 크고 작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아무런 기준없이 한국 가톨릭 교회와 관계 있는 사회사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 구미근로여성복지관 : 1973년 경북 구미시 송정동에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구미공단 근로여성들의 인격도야 및 생활향상을 위해 기능교육 · 취미교육 · 출강교육 · 교양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설립단체는 왜관 성 베네딕토 대수도원이다. △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 :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고 1969년(여자)과 1974년(남자)에 설립되었다. 주된 활동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따라 모든 회원이 소득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며, 포클라레운동을 하는 남녀회원이 중심이 되고 있다. △ 덕산신생원 :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사회복지법인으로서 1952년에 설립된 후 요보호 아동을 수용하여 보호하고 원생을 초중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졸업 후에는 기술을 습득시키고 있다. △ 마산 가톨릭여성회관 : 1976년 경남 마산시에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정기 프로그램으로 학습반 · 취미반이 있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젊은이 교실 · 사임당교실 · 성교육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기숙사 :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고 1979년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설립하였다. 주된 사업은 불우청소년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치며 그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함으로써 의식개발 · 교육 · 협동 · 우정 · 자립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 쌘뽈원 : 충남 논산군 논산읍에 있으며 1973년에 정식으로 사회복지법인이 되었다. 노인복지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성인불구자의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 65세 이상의 여자 노인 33명을 보살피고 있다. △ 서강대학교 부설 산업문제연구소 :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내에 있으며 1966년에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는 근로자의 활동을 지원하고 노동문제에 대한 기업인의 이해를 촉구시키고 노사간의 긴밀한 협조로 공동선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 동안 주로 교육사업과 조사연구사업을 했으며 논문집이 10집까지 발간되었다. △ 성심원 : 서울 대교구가 불우아동 및 부상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1946년 서울 강남구 잠원동에 설립하였다. 현재 수용인원은 58명이고 파티마 성모수녀회에서 담당 운영하고 있다. △ 성인복지원 : 1976년 전북 옥구군 옥구읍에 설립되었다. 거룩한 말씀의 회에서 설립한 이 단체는 부양가족이 없고 경제적으로 자활이 불가능한 60세 이상의 여자노인을 수용하여 여생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 본부는 서울 명동에 있으며 마음의 가난함을 생활화하는 단체로 1961년에 설립되었다. 전국본부 밑에 교구이사회가 있고 그 밑에 각 본당협의회가 있는데,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원은 1,500명에 이른다. 주된 사업은 환자, 가난한 자, 걸인을 돌보고 노쇠자에게 삶의 수단을 제공하며 불우청소년을 선도하는 일이다. △ 소화영아재활원 : 부산 남구 남천동에서 1946년 소아보육원으로 출발하였다. 주된 사업은 지체부자유영아의 재활사업이며 부산교구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남자 127명, 여자 67명을 수용하고 있다. △ 엠마우스집 : 1981년 설립된 것으로 성인 정신지체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육과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 요한 보스코 기술교육원 :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으며 1969년에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불우아동을 수용하여 직업보도교육과 기술교육(가구제작, 목공예, 배관)을 실시하고 있는데 설립단체는 성 빈센트 청소년 복지회다. △ 전진상 교육관(가톨릭 여학생관) : 1957년 현 국제가톨릭형제회의 도움으로 서울 명동에 기숙사를 건축하여 지방에서 온 여대생들을 수용하면서 활동은 시작되었다. 그 후 JOC, JEC, 가톨릭학생회, 가톨릭스카웃, 가톨릭부인회 등과 상호 협조하여 의식화교육, 가치관 교육, 자기계발, 성교육 등 교육관 자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내용은 월요강좌, 삶 · 사랑 · 성과 너, 노자(老子) 연구, 기적을 이루는 사랑, 심성 개발훈련, 성서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여학생관은 비신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진영성모의원별관 :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 있으며 1975년에 설립하였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불우한 결핵환자를 고쳐주는 것이 주된 사업이며 하(河) 마리아가 설립하였고 ‘도움회’ 회원들이 후원하고 있다. △ 춘광대구요양원 : 대구시 남구 송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극빈폐결핵 환자 요양원으로 1966년 서정길(徐正吉) 대주교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현재 87명의 환자가 수용되어 있고 앞으로 더욱 시설을 확충하여 보다 많은 환자를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 한국 SOS 어린이 마을 : 대구 동구 검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에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국제 SOS 어린이 마을, 즉 헤르만 그마이너 재단의 기본이념에 입각하여 요보호아동을 가정적 분위기 속에서 양육하고 퇴소 후에 독립생계를 유지토록 자립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현재 대구 이외에도 서울과 순천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협동교육연구원 :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으며 1962년 서울 대교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협동정신을 기르고 각종 협동조합운동을 일으켜 모든 사람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교육내용은 정신교육 · 이론교육 · 생활교육 · 실습교육이며, 지금까지 7,700명이 배출되었다. △ 꽃동네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사업 중 특기해야 할 사업은 충북 무극에 있는 꽃동네로 청주교구 오웅진 신부가 혼자서 걸인들을 모아 그들을 보살펴 주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시킨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신부의 높은 뜻에 감동하여 이제는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협조와 성원으로 갈 곳 없는 노인들을 평생 보살펴 주고 있다. 특히 꽃동네의 특징은 구걸할 수만 있으면 퇴거토록 하는 것으로 자생의 능력이 전혀 없는 노인만을 보호하는 곳이다. △ 성모자애원 : 경북 포항시 대잠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성심시녀회가 1935년에 설립하였다. 심신장애자를 재활시키는 곳으로 현재 82명이 수용되어 있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보육원 :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614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4년 와따나베(渡邊末子, 파물라) 수녀에 의해 설립되었다. 6.25 동란 후 기아가 날로 증가하여 이 버림받은 생명들을 입양, 양육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하였고 현재 갓난아기부터 만 5세까지의 아기 78명을 수용하고 있다. △ 갈릴리 어린이집 : 청주시 사창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개원하여 6-7세의 정신 · 지체아들을 받아 교육하고 있다. △ 경기도 안양의 근로자의 집 : 1963년 수원교구에서 설립하여 근로자들의 수용과 교육에 힘쓰고 있다. △ 성 프란치스코의 집 : 경남 진주시 칠암동 78에 위치하고 있고, 1963년 프란치스코회에서 설립하였다. 주된 사업은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는 노숙자들을 수용 · 보호하는 일이다. △ 성모자애원 : 경북 영일군 연일읍 대잠동 270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 남(南) 루도비코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불쌍하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과 지체 불구자를 수용 · 보호하는 일이다. △ 마리아 자매원 :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으며 1975년 착한 목자 수녀회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문제청소년을 교도하고 상담과 숙소를 제공하며 미혼모를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고 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을 이수시킨다. △ 성심양로원 : 경북 선산군 선산읍에 있고 1970년에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불우한 노인을 수용하여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 현재 약 100명이 수용되고 있다. △ 성가양로원 : 1921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 설립되었고 1958년 성가양로원으로 개칭되어 성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주된 사업은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구호하는 일이다. △ 백백합 보육원 : 대구 중구 남산동에 1915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호 육성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수천 명을 수용했으며 설립단체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다. △ 해성 보육원 : 인천 남구 용현 4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4년 프랑스인 수녀가 설립하였으나 현재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경영하고 있다. 주된 사업은 요보호 아동과 지체 부자유아 및 정박아 수용 및 양육, 국내외 입양을 하고 있다.

이상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사업 중 그 일부에 대해서 서술하였으나 이 이외에도 수십 개의 사회사업 단체가 있으며 그들은 보이지 않게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사업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첫째, 교회는 특별히 정부나 일반 사회단체에서 망각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버림받고 소외된 계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남이 하기 어려운 사업을 찾아서 그들에게 빛을 던져주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임무다.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잘 식별해서 그들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사회사업은 양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몇 명을 도와주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시간과 공간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교회의 사회사업은 어떤 기관이나 단체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리스도 교인이라면 누구나 사회사업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자기의 주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 교인의 소명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모든 가톨릭 신자는 사회사업가이며 모든 신자가정은 사회사업 단체인 것이다. 셋째, 교회 당국이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많은 재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성당도 지어야 하고 문화사업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오늘의 현실 안에서 연장시키는 일이다. 특히 도시 교구나 본당에서는 그 지역사회 안에 어두움을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여 그들을 위한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정말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 사회보장 (韓庸熙)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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