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재현시키는 미사. 이는 교회가 신자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계속 지니고 있게 하기를 원하는 신성한 사건, 그리스도의 신비, 성인 등에 대한 전례적인 기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념 미사 중에는 범 교회적으로 드리는 미사가 있고, 교황청의 승인 하에 국가나 지방의 관습에 따라 드리는 미사가 있다.
기념 [한] 紀念 [라] Memoria [영] Memorial
일반적으로 어느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를 의미하나, 특히 교회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나 어느 성인 또는 구세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재현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축일의 하나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전례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된 축일의 구분에 의하면 대축일과 축일 다음의 순위를 차지한다. 기념 중에는 교회 전체에 의하여 봉행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국가나 지방에 국한되는 때도 있다. 기념축일은 의무적인 것(obligatoria, 63개)과 비의무적인 것(ad libitum, 95개)으로 구별된다.
기낭 [원] Guinand, Pierre
Guinand, Pierre(1872~1944).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한국명 진보안(陳普安).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8월 15일 사제서품을 받은 후 이해 10월 14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남 공세리(貢稅里)에서 전교하다가 1897년 충남 공주(公州) 지방으로 임지를 옮겨가 공주에 본당을 창설하고 성당을 건축하는 등 공주지방 전교의 기반을 마련했고, 1899년 용산(龍山) 예수성심신학교 교장으로 전임되어 그 뒤 1939년까지 40년 동안을 신학교의 교장으로서 방인사제 양성에 헌신하였다. 1939년 휴양차 본국 프랑스로 귀국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44년 11월 10일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京鄕雜誌, 제39권 제975호, 1945. 3. 15 / 公州天主敎會沿革, 公州天主敎會, 1936.
기 [한] 氣
동양철학의 기초개념의 하나로서, 만물을 생성, 소멸시키는 물질적인 시원(始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근원의 ‘기’이므로 ‘원기’(元氣)라고도 하는데, 모든 공간에 널리 꽉 차 있는 기체 상태의 것으로 생각되었다. 기에는 음(陰)과 양(陽) 두 종류의 기가 있지만, 근원의 기는 하나라고 보므로, ‘일기’(一氣) 또는 ‘일원기’(一元氣)라고도 지칭한다. 음양의 기를 기초로 하여, 여러 가지 결합방식에 따라 우주 만물을 형성하는 5개의 원기 즉 금(金) · 목(木) · 수(水) · 화(火) ·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기는데 이를 ‘질’(質)이라고 부른다. 음양의 기 및 오행의 질은, 순회하여 움직이며 혼합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얽혀 결합함으로써 만물을 발생시킨다. ‘물’(物)의 종류의 다름은, 음양 · 오행의 조합(組合)의 서로 다름에 따라서, 그리고 동일한 종류중의 개별차는 낱낱의 ‘물’을 구성하는 기질(氣質)의 청탁(淸濁) · 후박(厚薄) · 정조(精粗) 등의 다름에 따라서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이상의 주장이, 중국 송(宋)의 주희(朱熹 = 朱子)에 의하여 완성된 ‘이기철학’(理氣哲學)에 있어서의 ‘기’의 기본적인 성격이다.
중국 선진(先秦)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기를 생명력이나 활동력의 근원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맹자≫(孟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같은 것이 그것이다. 한(漢)시대에 와서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근원으로서의 기를 생각하였는데, ≪회남자≫(淮南子)에선 투명하고 가벼운 기가 상승하여 하늘이 되고, 혼탁하고 무거운 기가 아래에 응집하여 땅이 되었으며, 천지의 정기가 여러 가지로 분화해서 일월, 풍우, 금수, 그 밖의 만물이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이미 전국시대 말기부터 음기, 양기라는 관념이 존재하였으며, 이러한 긴 역사를 갖는 ‘기’의 개념이 송나라 이후, 이기철학의 체계에 명확하게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 들어온 성리학(性理學) 곧 주자학(朱子學)은 조선 중기의 이황(李滉, 호 退溪, 1501~1570)과 특히 이이(李珥, 호 栗谷, 1536~1584)에 이르러서 한국철학으로서의 면모로 발돋움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이황은 주자의 이기(理氣) 이원론을 발전시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여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이 ‘사단’(四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이에 타는[乘] 것이 ‘칠정’(七情)이라고 주장하여, 영남학파(嶺南學派)를 형성하였다. 이에 맞서 이이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근본사상으로 내세워 ‘이통기국’(理通氣局)을 주장하여 ‘이’와 ‘기’는 묘합(妙合)하는 가운데서 ‘이’는 ‘이’요 ‘기’는 ‘기’로서 서로 섞이지 않으므로 1물이 아니며, 또 ‘이’와 ‘기’는 혼융(渾融)하여 간격이 없어서 선후도 이합(離合)도 없으니 2물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단과 칠정에 대하여도 이이는 두 갈래로 보지 않고, ‘사단’을 이미 ‘칠정’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이는 곧 이성과 감정의 작용을 둘로 가르지 않고 감정의 작용 속에는 이성이 내재하여 있음을 파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이이를 종사(宗師)로 하여 형성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입장이었다. 주자의 ‘이기설’(理氣說)에 따르면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는 ‘기’를 떠난 ‘이’가 독존(獨存)하지만, 현상계에서는 ‘기’를 떠난 ‘이’가 없으며, 또한 ‘이’와 ‘기’는 궁극에 가서는 두 물건이고, 선후 문제로 본다면 ‘이’가 앞서고 그 뒤에 ‘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체의식을 가지고 이를 동화 흡수하여 세계성을 띤 한국 철학을 재구성한 이이는, 주자의 ‘이기이물’(理氣二物)설과 ‘이선기후’(理先氣後)설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또한 주자의 경우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 ‘기’를 떠나 독립해 있는 ‘이’와 의식계에서 ‘칠정’을 떠난 ‘사단’은 모두 공허한 관념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여 이이는, 내용 있는 ‘이’ 곧 ‘기’를 탄[乘] ‘이’를 주장하였고, ‘칠정’ 가운데 포함된 ‘사단’을 대담하게 주장하였다. 당시 학계에 만연되어 있던 정주(程朱)의 학설에 대한 완고하고 고루한 유학자들의 사상 태도와는 달리 이이의 근본적인 개혁시도는 성리학을 한국 철학으로서 흡수,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李滉, 朱子書節要; 宋季元明理學通錄; 四端七情分理氣書; 退溪文集 / 李珥, 栗谷全書 / 人物韓國史, III, 博友社, 1965 / 韓國史大事典, 敎育出版公社,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