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선하신 하느님의 속성. 선(bonum)이란 결핍이 없는 것이란 점에서 ‘완전’을 뜻하고 또한 좋은 것이며, 윤리적 과오가 없다는 점에서 ‘거룩한’[聖]을 의미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착한’ 표양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며, 하느님의 선하심은 계시 진리의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자기네를 건져내어(출애 3:7, 18:9) 약속된 땅으로 인도해 주신(신명 8:7-10) 야훼한테서 선하심을 발견하였고 에덴 동산의 아담처럼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즉 야훼를 사랑하고 계약을 준수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축복이나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의로운 자가 고통을 당하고 야훼의 종이 박해받으며 예언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현실(예레 12:1, 15:15-18, 이사 53, 욥 23-24)은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현실을 통하여 야훼의 가난한 자들은 무상한 현세의 영화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하신 야훼한테서 활력과 생명과 선(善)을 서서히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신 것이다(마르 10:18).
전명세 [한] 全明世
전명세(1931∼1971). 조종사, 세례명은 바오로. 함경북도 회령(會寧) 출생. 어려서 가족을 따라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이주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영신중학교(永新中學校)을 다니다가 8.15 광복 후 월남, 덕수상업고등학교(德壽商業高等學校)를 졸업하고 6.25동란이 일어나자 입대,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복무하였다. 1966년 영세, 입교하였으며 1970년 1월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고, 그해 8월 대한항공사에 입사, 다시 조종사로 근무하였다. 1971년 1월 23일 속초(束草)발 서울행 비행기의 기장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던 중, 폭탄을 들고 비행기의 납북을 기도하던 납치범을 덮쳐 비행기와 탑승자들을 구하고 자신은 순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정부로부터 일등보국훈장 통일장이 추서되었다.
전례학 [한] 典禮學 [라] liturgiologia
전례를 교회의 경신(敬神)행위로서가 아니라 학문으로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전례는 첫째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 다음으로는 인간의 구령(救靈)을 위해서이다. 전례학의 대상은 경신덕(敬神德)의 내적 행위가 아니고, 교황에 의해 장소와 시간까지 규정된 외적인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행해진다. 전례학은 이것을 교회적 전거(典據)에 의하여 기술(記述)하고, 그 발생과 발전, 실천적 의미(내용, 본질, 비본질적 행위, 상징 등)를 인식케 함으로써 과학적인 이해를 돕는다. 전례학은 신학의 여러 분과 중에 독립된 하나의 분과로서 범위가 넓고 복잡하기 때문에 분류에 있어서도 아직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포괄적이고 조직적인 연구가 더 요청된다. 전례는 늘 일반적인 것이 되거나, 아니면 특수전례가 된다.
일반전례는 전례의 개념과 정의(定議)를 포괄하며 신학적 원칙, 예배와 신앙생활의 관계, 예배의 역사, 교회의 구성, 전례법, 의식과 의식의 원칙, 성가, 전례정신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일반전례학을 갖가지 전례미사로 되풀이되는 전례적인 일, 예를 들면 말의 형식(기도형식 등)과 전례행사를 다룬다. 전례집전의 장소(성당 등)와 시간(교회력)도 여기에 속한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전례에 적합한 모든 것은 일반전례에 속한다. 한편 특수전례는 교회에서의 예배의 한 부분으로, 예를 들면 미사 · 성무일도 · 성사와 준성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프로테스탄트 전례학과 같이 가톨릭 전례학교정(敎程)도 일반전례학 속에 미사의 이론이 설명되어 있다.
미사의 본질과 목적과 성격, 미사를 올리고 감독하는 교회의 권능은 이미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 것이므로 아무 것도 구애될 것이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종래의 전례용어와 형식 등에서 전통적인 것을 대폭 개혁하여 1963년 12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전례헌장≫(典禮憲章)을 반포하였다. 그 중에서도 각 국민의 독창성을 받아들여, 종래에는 라틴어로 행하던 전례부분에 모국어를 쓰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미사를 올리고 성사를 주는데 있어, 그리고 또 전례의 다른 분야에서 각기 그 나라의 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경우가 많으므로 널리 국어를 쓸 수 있다”(전례헌장 36)고 한 것이다. 그래서 공의회 후 10년도 못되어 로마전례의 교회에서는 모국어의 사용이 보급되고, 라틴어 사용은 예외로 되었다. 전례에는 사제와 더불어 평신도가 적극 참여하는 일이 강조되었다.
그 전에는 전거에 의해 기술된 로마식전례의 공식전례서에 따라 미사는 집전되었다. 여기에 예부성성의 교령(敎令, Decreta authentica, 1898~1927)이 보태지고, ≪전례법규≫도 사용되었다.
전례사(典禮史)의 전거는 옛날에 쓰여진 전례서들이다. 옛날의 여러 오르도(Ordo)와 수도회의 관습서들도 중요한 전거다 된다. ‘오르도’란 예식서라는 뜻이고 전례미사의 여러 부분의 예식(예를 들면 성세 예식, Ordo baptismi)을 가리킨다. 좁은 뜻의 ‘오르도’란 문장으로 표현된 전례의 규정이다. ‘오르도’의 시초는 사도전래(使徒傳來)의 교회규율에서 그리고 더 옛날의 전거는 피포리토스의 사도전승(使徒傳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르도와 리벨루스(Libellus, 작은 책)는 8∼9세기 이래 프랑크왕국에서 많이 사용된 증적(證跡)이 있다. 여기서는 로마식 전례의 도입으로 성사를 보완하는데 이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르도의 일부분에는 성사에 기도가 포함되어 있는 성세식과 서품식, 현당식 같은 중요한 전례형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르도는 대체로 로마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로마 이외의 갈리아, 프랑크왕국의 관습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존 전례양식을 모두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각기의 지방적 요구를 총족시키려는 교황들에서 이런 오르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관습서(Consuetudines)란 각 교회와 특히 옛날 수도회에서 이루어진 관습을 주로 문서화한 것이다. 전례와 수도원생활은 이것으로써 수도회의 회칙에 대응하여 자세히 규정 · 통제되었다.
전례의 연구가 고조(高潮)됨에 따라 20세기 중엽부터 전례의 실천에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분명히 서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7년 전례에 관한 회칙 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과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전례학자들의 모든 노력이 공적인 사목방법을 위해 경주되었음을 밝혔다.
[참고문헌] Eisenhofer, Handbuch der katholischen Liturgik, 1932 / New catholic Encyclopedia by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 D.C. 19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