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 [한] 李文熙

이문희(1935∼ ). 대구(大邱) 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세례명 바오로.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54년 대구 경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에 진학, 1959년 동(同)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사제의 뜻을 품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1962년 리용대학, 1966년 파리 가톨릭대학을 각각 졸업했고 파리 가톨릭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5년 12월 사제서품을 받았다. 1966년 7월 프랑스에서 귀국, 잠시 대구 동촌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이해 12월 청주(淸州) 교구로 파견되어 청주 내덕동본당 보좌신부로 1년간 사목했고 1967년말 대구 대교구로 복귀한 후 교구 가톨릭액숀 지도신부를 지냈으며 1969년 종군신부로 공군에 입대, 국방부 군종실에서 복무하였다. 1972년 대위로 전역하고 대구 대교구청에 근무하던 중 이해 10월 7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11월 30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이어 총대리로 임명되었다.

그 뒤 대구대교구의 총대리로서 교구의 행정을 총괄하는 한편 1979년 교구 전교 추진 5개년 계획을 수립 주도했고, 1983년 200주년 기념 대구 대교구위원회를 결성하여 부총재로 200주년에 대한 대구 대교구의 독자사업을 벌였으며 그 밖에도 대구 대교구의 여러 심신운동을 주도하였다. 현재 대구 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와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 성직주교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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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우 [한] 李文祐

이문우(1809∼1840).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일명 경천. 세례명 요한.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생활을 원했으나 양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어린 두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의 재혼 권유를 뿌리치고 독신으로 생활하였다. 그 후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된 교우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사방에서 희사를 모으고 주교에게 박해상황을 보고하며 회장의 직무를 다하였다. 그러나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는데 이 때 “주님께서 특은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후 이듬해 2월 1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堂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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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근 [한] 李文根

이문근(1917∼1980). 신부. 교회음악가. 세례명은 요한. 1917년 1월 8일 충북 단양(丹陽)에서 부 이수영(마티아)과 모 조순봉(루시아)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4세 때 부모를 따라 경기도 양평으로 이주하였다가 11세 때 다시 인천으로 이주, 그곳에서 박문(博文)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3년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鳥)[소신학교]에 입학, 소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938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42년 2월 일제(日帝)에 의해 신학교가 폐쇄되자 덕원 신학교에서 남은 학업을 마치고 1944년 10월 22일 명동 대성당에서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명동본당 보좌 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뒤 1945년 성신대학(聖神大學)[가톨릭대학의 전신] 교수로 임명되어 종교음악을 강의하는 한편 1948년 최초의 합창성가집 ≪가톨릭성가집≫을 편찬 출판하였으며, 1949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로마 교황청 음악대학원에 유학, 1952년 석사학위, 1955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귀국 환영 오르간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그 뒤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57년 주교회의 가톨릭성가집 발간위원회 대표로 ≪정선 가톨릭성가집≫을 출판했고 1955년부터 서울대 음대, 1963년부터 한양대 음대 등에 출강하기도 하였다. 1964년 8월부터 1967년 4월까지 가톨릭대학 학장을 역임한 후 1980년 8월까지 천호동, 아현동, 명도, 한강, 양재동본당 등의 주임신부를 역임했고 한강본당 주임신부 재직시인 1977년 10월 28일 회갑축하식과 함께 ≪회갑기념작품집≫을 발행하였다. 1980년 8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지도신부로 전임되었으나 부임 1개월만에 병으로 명동성모병원에 입원 중 9월 20일 사망,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 교회음악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또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회갑기념작곡집≫(1977), ≪가톨릭성가집≫(1948), ≪정선 가톨릭성가집≫(가톨릭출판사, 1957)등 작품집과 <복자찬가>, <병인순교복자노래>,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노래>, <민족복음화의 노래>, <사제찬가>, <혼배미사곡>, <창미사곡>, <데레사 노래> 그리고 논문 <교회음악사>(가톨릭靑年, 1956. 4∼1958. 4)를 남겼다.

[참고문헌] 오숙영, 천주교 성가 가사고, 숙명여대 대학원 석사 논문, 1971 / 장안숙, 한국 가톨릭 성가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 계명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1975 / 교회와 역사, 제67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3. 25 / 차인현, 조선교구와 전례음악, 새벽, 1981. 7 / 차인현, 이문근 신부의 생애와 음악, 崔奭佑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한국교회사 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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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우 [한] 李明雨

이명우(1911∼1984). 대구 대교구 부주교. 몬시뇰. 세례명 야고보. 경상북도 상주군 공검면 역곡리(慶尙北道 尙州郡 恭儉面 力谷里)에서 출생. 1935년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해 5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경남 옥포(玉浦)본당에서 8년 동안 사목하고 1943 대구교구장 비서를 거쳐 1945년 6월 왜관(倭館)본당 주임으로 부임, 본당 사목에 헌신하는 한편 왜관 순심(純心)여자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그 후 부산 중앙본당(1948년), 경북 영천본당(1950년), 대구 삼덕동본당(1959년) 등의 주임 신부를 역임하고 1962년 1월 대구 교구 비서실장, 1962년 7월 부주교에 임명되었으며, 1964년 대구지방법원 가사재판 조정위원,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상임위원, 경북도청 자문위원 등에 위촉되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대구 대봉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후 1971년 대구 가톨릭 문회관 관장겸 대구교구 가톨릭 액션협의회 총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대구교구사제단 대의원에 선출되었고 또한 유신헌법에 의한 제1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1978년부터 대구 가톨릭 근로자회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중 1981년 대구교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기수(李基守, 야고버), 전석재(全碩在, 이냐시오) 신부와 함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서임되었다. 1982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투병생활 중에 1984년 9월 1일 대구 가톨릭 병원에서 선종, 대구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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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서 [한] 李∼

이∼(1821∼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재덕.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병인(丙寅)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에 전주(全州) 부근의 교우촌인 성지동에 정착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자 전라도지방에서는 교우촌인 성지동과 대성동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되어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조화서 · 조윤호 부자,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되기 전 중병에 걸려 조화서가 여러 번 피신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뿌리치고 체포되었고, 전주감영에서는 병자인 이명서를 배교시키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제일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내가 몇 번 죽는 한이 있어도 천주를 버릴 수 없습니다” 하고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고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며 순교를 예비했다.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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