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 Jacques Edouard(1861∼1890). 파리 외방전교회원. 한국명 안학고(安學古). 1883년 9월 13일에 파리외방전교에 들어가, 1887년 9월 24일에 신품성사를 받고, 그해 11월에 임지인 한국으로 떠났다. 1888년 1월 15일에 서울에 도착한 그는 곧 수원(水原)지방을 맡아, 이국땅의 풍습과 음식, 그리고 언어를 재빨리 극복하면서 사랑의 복음전파에 전심하였다. 가난한 교우들을 더 많이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는 새 성당을 짓기로 결심하여, 자재와 재정상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끝내 이를 완성시켰다. 1888년과 1889년에는 그의 전교활동 구역이 더욱 넓어졌다. 일본 나가사끼(長崎)에서 열린 성직자회의에 한국대표로 파견된 두세(Doucet) 신부의 구역까지도 맡아야 했고, 거기에다 이웃에서 전교 중이던 파스키에(Pasquier) 신부가 위독해지자 곧 달려가 병간호를 해야만 하였다. 그는 파스키에 신부의 회복을 보고 자기 임지로 돌아왔으나 피로에 지칠대로 지친 데다가 때마침 부활절을 맞아 더욱 성사에 바빴으므로 조금도 쉴 사이가 없었다. 그 때문에서인지 부활절 주일 월요일에 원인 모를 열병으로 눕게 되어 1890년 4월 13일에 선종하였다.
앙골라 [원] Angola
남서 아프리카의 일국. 면적 124만 6700㎢에 인구 745만명(1982년 추계)인 이 나라는 대서양, 자이레 · 잠비아 · 나미비아, 서남 아프리카의 북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5세기 말엽에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 해안을 개척하였으나, 1575년에 영구 정착이 시작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국경선을 정하는 외교교섭이 이루어졌다.
가톨릭 선교활동은 1570년경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나, 노예무역이 성행하여 이들의 선교활동이 많은 장애를 받았다. 1759년 포르투갈은 예수회원들을 몰아내었고, 1834년에는 모든 수도회를 억압하였다. 1866년에 프랑스 성령회(Holy Ghost) 신부들이 도착하여 가톨릭 복구작업이 진작되었다. 포르투갈 정부와 프랑스 선교사들 사이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침베바시아(Cimbebasia) 지목구(知牧區, Prefecture Apostolic)가 1879년 창설되었으며, 이 관할은 앙골라의 남반부와 남서부 아프리카에까지 확장되었다. 1940년에 루안다는 대주교구가 되고, 앙골라의 수도 주교좌가 되었다. 1982년 현재 12개 교구에 가톨릭 신자는 335만 3,000명에 이른다.
압슬 [한] 壓膝
조선시대(朝鮮時代) 형벌(刑罰)의 일종. 수형자(受刑者)를 앉혀 가부좌(跏趺坐)를 틀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은 후, 무릎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압력을 가하거나 무거운 돌을 올려놓는 악형(惡刑)으로 조선 초부터 사용되다가 그 고문방법이 너무 잔인하여 1725년(영조 1년) 폐지되었으나 그 뒤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박해 중 체포된 많은 신학자들을 배교시키기 위해 주뢰질, 치도곤, 육모매질, 학춤, 사모창, 톱질, 용창 등과 함께 이 형벌이 사용되었다.
암흑시대 [한] 暗黑時代 [영] dark age
일부 학자들이 중세(500∼1500년)를 일컬어 지칭한 용어. 이들은 이 시기가 학문과 예술,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진보란 거의 혹은 완전히 찾아볼 수 없는 암흑의 시대라고 하였다. 그러나 전쟁과 투쟁이 있긴 했지만 중세시대는 나름대로의 빛나는 업적과 진보를 달성한 시대였다는 것이 증면되면서 이 표현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암브로시오전례 [한] ∼典禮 [영] Ambrosian liturgy
암브로시오가 처음으로 사용한 전례. 암브로시오가 밀라노의 주교였기 때문에 밀라노 전례라고도 불린다. 암브로시오 전례의 특징은 봉헌의 기도를 하기 전에 빵과 포도주의 봉헌행렬이 있다는 점, 그리고 호칭기도를 부제가 바친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