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원] Schubert, Franz

Schubert, Franz(1797~1828).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빈에서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600곡에 달하는 가곡에 붙인 피아노 반주에 의해서 낭만파 음악의 하머니를 완성하였다. 그는 초기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가곡의 왕’으로도 불린다. 그는 교향곡을 비롯한 기악곡 분야에서도 풍부한 선율과 아름다운 화음에 의하여, 고전적인 단정함과 낭만적인 서정성이 감도는 작품을 창출하였다. 이전의 고전파시대에는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예술부분이 슈베르트에 의하여 아름다운 선율과 색채에 넘치는 화성(和聲)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된 주요한 음악의 한 부문으로 되었다. 1814년의 가곡 ≪실을 잦는 그레르헨≫이 새로운 가곡양식의 제1보가 되었는데, 이것은 변주유절가곡(變奏有節歌曲)의 형식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는 31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 실내악 · 교회음악 · 가곡 등 협주곡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W. 뭘러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1823년, 전20곡), ≪겨울 나그네≫(1927년, 전24곡)와 교향곡으로는 미완성의 B단조의 ≪교향곡 제8번≫(1823), C장조의 ≪교향곡 제9번≫(1828, 종래에는 제7번 또는 제10번이라고도 하였음) 등이 있고, 미사곡과 그 밖의 전례음악에도 명작이 많다. ≪아베마리아≫와 합창곡에도 아름다운 종교적 서정성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독일 미사곡≫은 가톨릭 교회의 가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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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정이

순교지(殉敎趾). ‘숩머리’라고도 불리는 숲정이는 숲이 우거져 조선시대 때부터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순이(李順伊, 누갈다)와 그의 가족 일부가 순교하면서 숲정이는 순교자의 피로 얼룩져 온 영광의 땅이 되었다. 당시 이순이와 함께 순교한 이로는 신희(申喜, 이순이의 시어머니),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및 이순이의 시숙모 등이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정하상(丁夏祥)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신부 영입운동을 벌였던 신태보(申太甫, 베드로)가 경상도 상주 잣골에 은둔 중 전주 포교에 의해 1827년 4월 22일 체포, 13년의 옥고를 치른 후 다른 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순교한 조화서(베드로), 조윤호(요셉, 조화서의 아들),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운서(베드로) 등은 성인의 품에 올랐다. 1935년 교우들은 숲정이에 비석을 세워 순교자의 넋을 기렸고, 1960년에는 미래의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을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교육하기 위해 해성학교를 세웠다. 숲정이는 전북 전주시 진북동 해성중고교 안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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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역서 [한] 崇禎曆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1629년 명(明) 의종(毅宗)의 서양역법 번역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역법개정 계획에 따라 당시 예부시랑(禮部侍郞) 서광계(徐光啓)를 책임자로 중국인 학자 이지조(李之藻)와 당시 명나라에서 전교에 종사하던 예수회 선교사 롱고바르디(Longbardi, 중국명 龍華民) · 테렌츠(Terrenz, 중국명 鄧玉함) · 로(Rho, 중국명 羅雅谷) · 샬(Schall, 중국명 湯若望) 등이 참가하여 전후 5차에 걸쳐 완성된 역산서로, 1631년 1월 1차로 9종(種) 24권(卷)이, 1631년 9월 2차로 7종 20권이, 1632년 4월 3차로 7종 30권이 간행되었고, 1633년 서광계가 사망하자 이천경(李天經)이 편찬 책임을 이어받아 1634년 7월 4차로 14종 29권이, 1634년 12월 5차로 10종 32권이 간행됨으로써 그 완성을 보았다. 그 후 몇 차례 ≪숭정역서≫ 전권의 보간본(補刊本)이 간행되었고, 청대(淸代)에 들어와서 샬에 의해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라는 제목으로 재편집되어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7세기에 전해졌는데 많은 실학자(實學者)들에게 읽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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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학교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대오면 사창리에 있던 초등교육기관으로 1908년 사창리공소의 교우들이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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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신학교 [한] 崇信學校

베네딕토 수도원이 1911년 설립한 일종의 사범학교. 당시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던 지금의 가톨릭대학 신학부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에카르트(Eckardt, 玉) 신부가 취임하였고 2대 교장에는 로머(Romer, 盧) 신부가 취임하였다. 학제는 2년제로 종교학, 윤리학, 교육학, 한국어, 한문, 일본어, 세계사, 지리, 수학, 박물학, 음악, 도화, 체육, 등 과목을 4명의 강사(한국인 2명, 수사신부 2명)가 담당하였다. 15~28세의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1911년 9월에 23명, 1912년에 26명, 1913년에 17명을 선발하여 교육시켰다. 1913년 9월 일제의 탄압으로 제1회 졸업생만을 배출하고 2년만에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芬道會의 初期修道生活과 敎育事業, 史學硏究, 36, 韓國史學會,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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