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

순교지(殉敎趾). ‘숩머리’라고도 불리는 숲정이는 숲이 우거져 조선시대 때부터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순이(李順伊, 누갈다)와 그의 가족 일부가 순교하면서 숲정이는 순교자의 피로 얼룩져 온 영광의 땅이 되었다. 당시 이순이와 함께 순교한 이로는 신희(申喜, 이순이의 시어머니),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및 이순이의 시숙모 등이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정하상(丁夏祥)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신부 영입운동을 벌였던 신태보(申太甫, 베드로)가 경상도 상주 잣골에 은둔 중 전주 포교에 의해 1827년 4월 22일 체포, 13년의 옥고를 치른 후 다른 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순교한 조화서(베드로), 조윤호(요셉, 조화서의 아들),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운서(베드로) 등은 성인의 품에 올랐다. 1935년 교우들은 숲정이에 비석을 세워 순교자의 넋을 기렸고, 1960년에는 미래의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을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교육하기 위해 해성학교를 세웠다. 숲정이는 전북 전주시 진북동 해성중고교 안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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