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총람 [한] ∼敎區總覽

1984년 서울 대교구에서 발행한 서울교구의 총람. 원 제목은 ≪서울대교구 교구총람≫이지만 보통 ≪서울교구총람≫이라고 한다. 1981년 서울교구에서 구성된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총람의 편찬을 기념사업의 하나로 확정, 이해 3월부터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편찬을 시작하여 이듬해 7월 원고들을 완성했고, 이를 1984년 가톨릭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2권으로 되어 있고 체제는 양장본 4 · 6배판이며, 면수는 1권이 1,190면, 2권이 1,141면 총 2,331면이다. 내용은 1권이 ≪서울교구총람≫의 본문이 되고, 2권은 부록이다.

제1권은 총 6편(編) 29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편은 ‘서울대교구’ 편으로 서울교구사, 교구현황, 교구청, 경성구 천주교 유지재단 등의 약사(略史)와 현황이 서술되어 있으며, 제2편은 ‘서울대교구’ 산하 ‘본당’ 편으로 현재의 본당, 침묵의 본당, 타교구로 편입된 본당 등에 대한 약사와 현황이 서술되어 있고, 제3편은 ‘신심운동 · 평신도사도직단체’ 편으로 교구산하의 신심운동단체와 평신도사도직단체 등에 대한 약사와 현황이 서술되어 있다. 이어 제4편 ‘일반기관 및 단체’ 편에는 교육기관, 연구기관, 박물관, 언론출판기관,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교육관, 피정의 집, 신용협동조합, 각종 후원회 등에 대한 약사와 현황이, 제5편 ‘수도회’ 편에는 남 · 녀수도회와 선교단체, 기타수도회 등에 대한 약사와 현황이, 마지막 제6편에는 참고기관 및 ‘단체’ 편에는 교황청기관, 주교회의 기구, 전국기구 등의 약사와 현황이 각각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제2권의 부록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종 명단과 통계표가 주된 내용이다. 부록의 제1장에는 교회창설기의 신도, 103위 순교복자, 역대 교구장, 선교사, 수도자, 한국인신부, 평신도 등 360여명의 약전(略傳)이 실려 있고, 제2장에는 교세통계표를 비롯한 각종 통계표가, 제3장에는 남 · 녀수도회와 선교단체의 회원명단이, 제4장에는 교국사연표가, 제5종에는 서울교구 성직자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서울교구총람≫ 은 한국교회사상 초유의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1980년 대구교구에서 ≪교구총람≫을 간행한 바 있으나, 이는 현황을 위주로 한 연감(年鑑)형식임에 비해 완전한 형식을 갖추어 편찬된 ≪서울교구총람≫은 실제적으로 한국교회 최초의 총람으로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1980년대 초반 서울교구의 전모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서울교구 현대사의 재조명과 한국교회 현대사를 밝히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부록에 수록된 각종 통계자료들은 과학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하여 서울교구의 기본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며 아울러 이를 근거로 한국교회의 앞날을 가늠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활용성을 가진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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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지도서 [한] ∼敎區指導書 [라] Directorium Missionis de Seoul

1922년 9월 21일 서울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공포한 교구 지도서. 1887년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에 의해 한국 교회지도서(Coutumier de la Missio de Coree)가 공포된 이래 1911년 대구교구, 1920년 원산교구가 설정되자 각 교구의 실정과 한국의 전통 · 관습 · 제도 등 한국 교회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지도서의 출현이 필요하게 되어 1914년 대구교구지도서가 간행된 후, 1920년 서울교구에서는 보좌주교 드브레(Devered, 兪世俊) 주교에 의해 지도서의 원칙이 작성되어 1921년 서울교구 내 전신부들에 의해 그 내용이 검토되었고 1922년 사제피정, 서울교구공의회를 거쳐 서울교구재판소에서 지도서의 원문이 완성되어 이해 9월 21일 뮈텔 주교가 이를 공포하였으며 이듬해 홍콩 나자렛 인쇄소에서 라틴어로 간행되었다.

지도서의 구성은 서언(序言) · 본문 · 부록 등 세 부분으로 어우러져 있고 총 658개의 조목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은 서언에서는 한국 교회의 주보(主保)와 제사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본문은 4편으로 나누어져 제1편에서는 사제 자신에 대해, 제2편에서는 성사집전에 대해, 제3편에서는 교회재산의 관리규정에 대해, 제4편에서는 사제에게 부여된 특권과 심신단체들에 대해 각각 언급하고 있으며, 끝으로 부록에서는 각종 교회문서의 서식(書式)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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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슬 [한] 徐若瑟 [관련] 마라발

마라발(Maraval) 신부의 한국명. ⇒ 마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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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밖 네거리 [한] 西小門∼

44인의 성인과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기념지. 남소문(南小門, 현 光熙門)과 함께 서울 도성의 유해를 운반하는 곳으로 지정된 서소문(西小門)이 순교자의 피로 물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신유박해(1801년)부터의 일이다. 이 땅의 교회를 이끌어가던 정약종(丁若鍾, 요한), 강완숙(姜完淑, 콜롬바), 최창현(崔昌顯, 요한) 등 초기 평신도 지도자들이 주로 처형된 이곳은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때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되었다. 즉 기해박해 때에는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김아기(金阿只, 아가다), 박아기(朴阿只, 안나), 이아가다(李, 아가다),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 한아기(韓阿只, 바르바라), 박희순(朴喜順, 루시아), 이광렬(李光烈, 요한), 김노사(金老沙, 로사), 김성임(金成任, 마르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 김장금(金長金, 안나),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김누시아(金累時阿, 루시아), 원귀임(元貴任, 마리아), 박후재(朴厚載, 요한), 박큰아기(朴大阿只, 마리아), 권희(權喜, 바르바라),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이연희(李連熙, 마리아), 김효주(金孝珠, 아녜스),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 김유리대(金琉璃代, 율리에타), 전경협(全敬俠, 아가다), 박봉손(朴鳳孫, 막달레나),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 김효임(金孝任, 골룸바),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토),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등 41명의 성인들이 순교하였고, 병인박해 때에는 남종삼(南鍾三, 요한), 전장운(全長雲, 요한), 최형(崔炯, 베드로) 등 3명의 성인과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었다. 이들 순교자들의 피어린 순교지인 서소문밖 네거리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파악되지 않고 다만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아현 고가도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부근으로 추정될 따름이다. 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여 한국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는 ‘순교자현양탑’을 서소문공원 내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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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봉 [한] 徐碩奉

徐碩奉(?-1815).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 경상도 청송(靑松) 노래산(老萊山)에서 1815년 2월 22일,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많은 신자들과 함께 잡혀 경주진영(慶州鎭營)으로 압송되어 지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대구감옥으로 이송되어 1815년 10월 18일(음) 옥사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사형언도가 내려졌으나, 집행되기 전에 옥사하였다는 기록밖엔 없다. 그의 아내도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언제 집행되었는지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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