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도 [한] 平和∼祈禱 [프] Priere pour la paix

기도문의 하나. 1917년 성명미상의 작자에 의해 프랑스어로 씌어진 이 기도문에는 복음적인 내용이 짙게 깔려 있고 매우 대중적이다. 원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인데, 최근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문에는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랐던 복음의 사도이자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에 대한 희망과 자랑, 그리고 복음적 이상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그 전문(全文)은 아래와 같다.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얻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서 참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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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한] 平和 [라] pax [영] peace [관련] 정의

가톨릭 교회가 선포하는 가장 궁극적인 가치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이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가치는 정의, 진리, 사랑 및 평화다. 그런가 하면 인류전체가 국가와 국경과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서 갈망하는 것도 평화를 건설하고 국제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인류의 갈망이 일치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같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한 가족을 이루고(창세 1:28)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적으로 볼 때 인류는 피부색, 언어 관습에 있어서는 서로 상이한 점이 있으나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다양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지 서로의 이질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다양성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일치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치는 평화의 증진이라는 공통된 갈망을 낳게 하였다.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을 통하여 정치공동체들간의 상호관계, 세계 정치공동체의 임무와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제5장에서 평화의 본질, 전쟁회피, 국제공동체의 건설 등에 대해서 심오하고 구체적인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평화와 국제정의에 대해서 가장 열렬하게 강조한 교황은 바오로 6세였다. 바오로 6세는 1965년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통하여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국제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에서 약소민족들에 대한 선진국의 원조를 역설하고, ‘세계안의 정의’,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세계평화와 정의에 대한 교회의 공헌’, ‘평화는 가능하다’, ‘세계 식량회의에 붙여’ 등의 메시지와 연설을 통해 가톨릭 교회가 세계평화에 대하여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책임이 있는가를 천명하였다.

가톨릭시즘의 입장에서 볼 때 평화는 정치의 방법, 힘과 이해관계의 균형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마음, 사랑, 평화의 활동으로써만 얻어진다. 오늘날 인류는 이 위대한 건설을 위해 수고하고 있다. 현재까지 역사 발전에 그렇게 많이 작용해온 이기적이고 호전적인 정신을 교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이 선의의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르는 새로운 역사, 평화롭고 참으로 인간다운 역사를 향해서 우리가 단호히 전진해야 함을 긍정하기는 용이하다.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 세력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이다. 인간사회의 창설자인 하느님이 인간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 인류의 공동선(共同善)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법칙에 지배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평화는 한번도 영구히 얻어진 것이 아니고 언제나 꾸준히 건설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는 죄의 상처를 입었으므로 평화를 얻으려면 각 사람이 끊임없이 야욕을 억제해야 한다.

개인의 복지가 안전하게 확보되고 사람들이 정신과 재능을 서로 신뢰로써 나누지 않고서는 지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타인과 타국민, 그리고 그들의 품위를 존경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이 평화 건설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 이렇게 평화는 정의의 내용을 초월하는 사람의 결실이다. 현세의 평화는, 이웃에게 대한 사랑의 결과이며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모상이며 결실이다. 강생(降生)한 그리스도는 평화의 임금으로서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당신 육신 안에서 미움을 죽이고 부활로 현양(顯揚)되시어 사랑의 성신을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부어 주었다.

국가들 사이에 개재하는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불균형이 지나치면 긴장과 불화가 생기며 드디어 평화를 위기에 몰아놓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세계의 무수한 빈민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보다 진실하고 보다 적극적인 것이라야 한다. 우리가 빈곤과 부조리를 반대하고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내지 윤리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다. 힘과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면 그것이 바로 평화라고는 할 수 없다.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는 질서, 보다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인 것이다. 비록 인간이 보편적 최고문명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인간들 사이의 완전하고 항구한 질서의 고요함, 즉 절대적이며 결정적인 평화는 하나의 꿈일 수 있다. 이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헛된 꿈이 아니며, 이 이상은 꼭 실현되어야 할 것이기에 공상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나 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변천하게 마련이고 인간의 완성이란 한 가지 뜻만 가진 것도 아니려니와 고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에 있어서 인류 전체에 있어서의 평화는 각 사람의 마음 안에 평화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즉 하느님이 명한 질서를 그 자신 안에서 준수하지 아니하고서는 확립될 수 없다. 평화가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능력만으로 성과를 낼 수는 없다. 즉 인간 사회가 아무리 탁월하게 하느님의 나라의 모상을 반영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도움이 매우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가혹한 수난(受難)과 죽음으로써 불화, 불행, 불균형의 근원이 되는 죄악을 씻어 없애실 뿐만 아니라, 자기 성혈(聖血)로써 전인류를 천상성부와 화해시키고, 평화의 과업을 부여하였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유태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담을 그분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헐어 버리고 서로 원수가 되었던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와서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 와 가까이 있던 유태인들에게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에페 2:14-17). 그리고 부활시기의 거룩한 전례(典禮)는 “우리 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자기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함이 있을 지어다. 알렐루야 하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즐거워하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왔고 평화를 남겨 주었으며,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요한 14:27)고 말씀하였다.

평화는 아름다운 것이나 동시에 얻기 어려운 것이다. 얻기가 아주 어렵고 복잡하여 어떤 이는 평화를 꿈, 신화, 유토피아(Utopia)라고 생각한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그것은 많은 계획에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원해야 하고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어야 한다. 평하는 모든 이의 선(善)이므로 평화를 유지하고 진전시키기 위해서 누구나 협조해야 한다. 평화는 열렬한 희망을 가지고, 교회에서 근본적인 원칙으로서 시사(示唆)한 문제를 조정하는 질서를 창출(創出)하지 아니하면 공언(空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질서는 진리에 입각되고, 정의의 규준에 의하여 성립되고, 애덕(愛德)으로 생기고 또 완성되고, 끝으로 효과적인 자유에 의하여 실현된 질서를 말한다.

평화는 가능하며 우리의 의무라는 주장은 평화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평화 건설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상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힘의 용기가 아니라 사랑의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새로운 정의의 구현없이 평화는 오지 않는다. 세계가 긴장상태에 놓여 있어도 긴장과 평화는 공존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일선 참호 속에도, 교전(交戰) 중에도, 정상질서가 파괴된 폐허 가운데도 고요한 공간과 고요한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평화가 그 나름의 방법으로 꽃을 피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의 이상으로서의 참된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거짓 평화에 평화란 이름을 줄 수는 없다. 사람은 폐허를 만들면서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휴전이나 단순한 무장해제나, 속임수의 오만한 권력행사나, 폭력과 협박에 기초를 둔 외적 질서나, 적대세력의 일시적 균형이나, 적대세력의 고정된 긴장 속에서 진행되는 힘의 경쟁이나 그 어느 것에도 평화의 이름을 붙여 줄 수는 없다. 이것은 반드시 위선일 것이다. 불안정하고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평화롭게 번창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기회주의자들은 사람은 현실주의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타협과 깨지기 쉬운 부분적 화해가 있을 뿐, 그보다 나은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학(人間學)의 실제적, 결론으로서 인류역사와 인간 마음속에는 선과 악의 신비로운 원인들이 있다. 그 때문에 평화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로 나타나고 비판적 해결책에 위협을 당하면서도 동시에 보다 행복스러운 해결책에 대한 위무와 희망을 느끼며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라 부르며, 그것이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는 인간의 온갖 상황들이 엄청나게도 신비로운 변천을 일으킨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리니,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라”한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일곱째 행복은 기억할 만하다. 평화는 성신(聖神)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며 축하이며, 성서적 축원(祝願)으로서 항상 우리 마음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신비롭고 마를 줄 모르는 평화의 샘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평화인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가 존재할진대 이 평화는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을 위하여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족 전체는 그 성숙과정의 최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인류는 점차로 결합되어 어디서나 이미 이 일치를 보다 깊이 의식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어디서나 참으로 보다 인간다운 세계를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참된 평화를 찾아서 새로이 회심하지 않고서는 이 일을 성취할 수는 없다. 여기서 평화의 건설자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행복하다”(마태 5:9)고 선언한 복음의 메시지가 인류의 고상한 노력과 소망에 부합하며 새로운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하고 숭고한 평화의 뜻을 해명하고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斷罪)하고, 평화의 주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정의와 사랑에 뿌리박힌 평화를 확립하고 평화의 수단을 강구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에서 정의 안에 있는 평화의 실현과 평화 안에 있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교회는 특히 복음에서 붙여진 불을 가져오고 교회가 성신의 인도로 그 창립자로부터 이 같은 공헌을 하게 된다. 교회가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평온한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바치는 공헌의 구체적 증거로서 전세계 교회에서 ‘평화의 날’을 지내야 한다고 1968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제안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그 나름대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에게 신뢰를 갖도록 교육시키려는 투신에 활발성을 보여야 한다. 그것은 타인을 침략자로 볼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공헌할 수 있는 미래의 협조자로 보도록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제 모든 인류가족은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에는 각자의 역량대로 인류평화를 위하여 헌신하는 굳은 의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형제처럼 사랑을 나누는 지향이 필요하다. (⇒) 정의 (韓庸熙)

[참고문헌] 사목헌장 제2부 제5장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바오로 6세,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1972 / 바오로 6세, 세계 평화와 정의에 대한 교회의 공헌, 1972 / 바오로 6세, 평화는 가능하다,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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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본당 [한] 平澤本堂

경기도 평택군 평택읍 비전리(碑前里)에 자리 잡은 이 본당은 1927년 몰리마르(J. Molimard, 牟)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당시 진위군 병남면 비전리(振威郡 丙南面 碑前里), 즉 오늘날의 평택읍 비전리에 부임함으로써 설정되었다. 이 성당은 원래 안성본당 관할의 ‘안중공소’로부터 교세가 늘어 분할된 곳이다. 몰리마르 신부는 부임한 그 해 8월 15일 성당과 사제관을 지어 봉헌함과 동시에 주보로 ‘성모 승천’을 모셨다. 1934년에는 사제품을 받은 한국인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전교에 힘썼고, 1937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본당 가톨릭청년회에서 성극을 공연하고, 김영식 신부가 일반대중을 상대로 종교강연회를 열어 1천여 명의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한 때는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미국인 신부들이 본당 사목을 맡았는데 1951년부터 한국인 신부들이 다시 본당에서 활동하였다. 1950년 성당증축에 착수였으나 6.25전쟁이 일어나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2년에 미군의 원조를 얻어 성당을 85평으로 증축하고 1955년에는 종각을 건립하였다. 하한주(河漢珠, 요셉) 신부의 재임 중인 1964년에 수원교구로 편입되었다. 1971년에 옛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지금의 성당을 축성하였으며, 교세의 신장에 따라 1983년에는 팽성본당을 분할하였다. 현재 이 본당은 양병묵(楊炳默, 루가)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으며, 신자수는 4,859명에 달하고 9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그동안 이 본당을 맡았던 주임신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초대 프랑스인 몰리마르 신부를 비롯하여 김영식, 파리 외방전교회의 프로망투(Emile Fromentoux, 포만수), 멜리장(Pierre Melizan, 梅履霜), 메리놀회의 부드(W. Booth, 夫), 페티프런(R. Petipren, 邊),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인균(申麟均, 요셉),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 하한주, 한종훈(韓鍾勳, 스테파노), 조원길(趙源吉, 그레고리오), 서강하(徐康夏, 마태오), 한의수(韓義壽, 베드로)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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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한] 平日 [영] ferial days [그] feria

일주일 가운데 주일(Dies Dominica)과 토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을 전례상(典禮上) 평일이라 부른다. 유태인의 관습에 따르면, 안식일인 토요일의 다음 날을 제1평일이라 불렀고, 월요일을 제2평일(feria secunda), 화요일을 제3평일(feria tertia), 수요일을 제4평일(feria quarta), 목요일을 제5평일(feria quinta), 금요일을 제6평일(feria sexta)이라고 불렀다. 그 뒤 제1평일인 일요일은 ‘주의 날’로 바뀌었고, 나머지 날들이 평일로 정착된 것이다.

지금은 주일 다음에 오는 주간일을 평일이라고 보면 된다. 각 요일은 고유한 중요성에 따라 경축된다. ①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의 월∼목요일은 모든 다른 평일에 우선한다. ② 12월 17∼24일의 대림절 평일과 사순절 평일은 모든 의무적 기념에 선행한다. ③ 다른 평일들은 대축일과 축일에 양보하고 기념이 있으면 평일과 혼합해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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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본당 [한] 平壤本堂 [관련] 평양교구

1985년 창설된 평안도 최초의 본당. 1943년 이후 평양교구 주교좌 본당. 주보는 성 미카엘(1900∼1947년), 평화의 모후(1947년 이후).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는 1864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전교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로 교우들이 산산이 흩어지기도 했으나 1881년부터 전교회장 김기호(金起浩)의 3년간에 걸친 전교로 다시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 뒤 차츰 교우집단이 생기게 되자 황해도 수안(遂安)본당 관할의 공소지역으로 되었다. 그러던 중 1895년, 수안본당 주임이던 르장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가 평안도 담당신부로 임명되어 평양 외성(外城)에 부임함으로써 평양본당은 창설되었다. 이때 전국의 교우수가 3만여명이었음에 비해 평안도의 교우수는 고작 437명에 불과한 열악한 교세였다.

본당 창설 신부인 르장드르 신부는 평양 외성의 산명모루(山明隅)[平川里]에 주거를 정하고 사가(私家)를 사들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며 교세 신장에 전념하다가 1898년 본당을 평양 시내의 장대재[將臺峴]로 옮긴 뒤 곧 전임되고, 후임으로 르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가 부임하여 1900년 봄에 폭 24척(尺), 길이 81척, 종각 높이 57척의 연와조 성당을 건축하였다. 르메르 신부는 이후 20여년간 사목하면서 1905년 기명(箕明)학교, 1906년 성모여학교 등을 개설하고, 1909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을 초빙하여 교육과 전교를 전담케 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다.

그 뒤 1923년 10월 르메르 신부가 수원(水原)으로 전임되자 보좌이던 김성학(金聖學)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는데, 이 해에 메리놀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평안도 일대에서 사목하며 평양교구 신설을 준비했고, 그 결과 1927년 평양교구가 서울교구에서 분리, 신설되면서 본당 내에 교구본부가 설치되어 평양본당은 명실공히 평양교구의 중심본당이 되어 메리놀회 신부들이 주임신부로 부임하기 시작하였다.

1929년 본당 운영의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통합한 6년제 성모보통학교가 정식인가를 받게 되고, 1932년에는 2대 평양교구장 모리스(Morris, 睦) 신부가 본당 주임신부를 겸하게 되면서 사제관의 신축, 성당의 증축을 보았고, 이때를 전후해서 본당 청년회에서는 많은 강연회를 개최하여 평양 일대에 천주교를 널리 소개하였다. 또한 1934년 본당에 양로원과 무료숙박소가 개설되었고, 이해 2월 평양 시내에 신리(新里)본당을 분할시킴과 동시에 본당명이 관후리(舘後里)본당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천주교 150주년 평양교구 기념행사를 본당에 유치하여 성대히 거행하였다.

1940년 평양시내에 기림리(箕林里)본당을 분할시켰고, 1941년 12월 소위 ‘태평양전쟁’ 발발 후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신부들이 일제에 체포 구금되자 보좌신부이던 홍건항(洪健恒) 신부가 잠시 본당을 사목하다가 1942년 2월 홍용호(洪龍浩) 신부가 평양교구장 대리로 임명되면서 본당 주임신부를 겸하게 되었다. 1943년 3월 홍용호 신부가 정식으로 교구장에 임명되고 3월 21일 착좌식이 관후리본당에서 거행됨으로써 관후리본당은 평양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다.

1944년 2월 일제에 성당과 부속건물을 징발당하여 산정현(山亭峴)의 예배당으로 성당을 옮겨야 했고, 8.15광복 후 북한 공산정권과의 끈질긴 교섭 끝에 1946년 3월 성당을 다시 찾아 이듬해 전 교구민의 참여하에 대규모 성당 건축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1949년 5월 홍용호 주교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납치되고 이어 6월에 본당 주임 김필현(金泌現) 신부가, 12월에 보좌 서운석(徐雲錫) 신부가 납치됨으로써 결국 관후리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는 1932년 조직된 부인회 · 성로회(聖路會) · 가톨릭 소년군, 1934년 조직된 가톨릭운동연맹 관후리 지회, 성가대, 성체회, 자치위원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성모보통학교, 성모유치원, 성모학원, 양로원, 무료숙박소 등이 있었다. (⇒) 평양교구

[참고문헌] 平壤敎區史編纂委員會 編, 天主敎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 / 교회와 역사, 제83호,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6. 25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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