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l, Paul Louis Charles(1868∼1955). 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가톨릭 작가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고전적인 교양과 철학 · 신학의 해박한 학식, 그리고 가톨릭 정신에 입각해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고, 서정시(抒情詩) · 희곡 등은 특히 그리스도교적 상징력을 지니고 있다. 작품으로서는 많은 시집(詩集) 외에 ≪마리아에의 계시≫를 위시한 희곡과 평론, 서간집(書簡集) ≪자크 리뷔에르와의 왕복서간≫, ≪신앙에의 고민≫ 등이 있다. 그는 외교관으로도 활약, 도오꾜(東京) · 워싱턴 · 브뤼셀 등의 주재 대사를 역임하였다.
클레 [원] Klee, Heinrich
Klee, Heinrich(1800∼1840). 독일의 신학자. 뮌스테르마이펠트(Munstermaifeld)에서 출생하여 뮌헨(Munchen)에서 별세. 마인츠에서 교회사, 성서주석학(1824년)과 철학을(1825년), 본에서 교의신학과 성서주석학(1829년)을 가르치고 뮌헨(1839년)에서 묄러(J.A. Mohler)의 뒤를 이었다. 스승 리베르만(B. Liebermann)의 비합리적이고 보수적인 접근방법에 대하여 클레는 현대철학에 대한 개방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헤르메스주의(Hermesianism)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몇 권의 성서주석서 외에 저서로 ≪Die Beichte≫(Mainz 1827),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2v., Mainz 1837∼1838), ≪Katholische Dogmatik≫(3v., Mainz 1835) 등이 있다.
클라렛 [원] Claret, Antonius Maria
Claret, Antonius Maria(1807∼1870). 성인. 축일은 10월 14일. 스페인의 가톨릭 성직자. 스페인의 살렌트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프롱프르와에서 세상을 떠났다. 직조공의 아들로서 청년시절까지는 바르셀로나의 방직공장에서 직조공 · 디자이너로 근무하였다. 1835년 비크(Vich)의 주교가 되었고, 1840년부터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설교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1849년에는 ‘성모성심애자회’(聖母聖心愛子會, Congregation of the Missionary Sons of the Immaculate Heart of Mary)를 창립하였다. 1850년 쿠바의 산티아고 드 쿠바의 대주교로 부임, 이 섬의 불우한 원주민에 대한 선교에 힘썼다. 1857년 스페인에 돌아와 여왕 이사벨라 2세의 고해사제(告解司祭)가 되었다. 카탈로니아 지방 빛 마드리드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의 가톨릭문학 출판을 위한 협회를 조직, 그 자신도 많은 집필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궁정에서의 그의 직위는 교권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의심과 적의를 불러 일으켰으며, 1868년에 그는 스페인에서 강제 출국당하여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8∼1870)에 참석, 1870년 5월 31일 공의회 석상에서 교황무류성을 변호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는 프랑스 프롱프르와에 있는 시토수녀회 수도원에서 생애를 마쳤다. 1934년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諡福), 1950년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