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한] 親切 [영] kindness

삼위일체 중의 제3위 즉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동격의 참 신(神)인 ‘성신’(聖神, Holy Spirit) 또는 ‘성령’(聖靈)은 신자의 영적인 생활의 근본 힘이 되고, 신의 영원한 사랑 곧 의지활동에 의하여 발출(發出)하며, 감화를 받아서 진리를 깨닫고 신앙생활에 정진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는 본체이다. 그런데 이 ‘성신’이 맺는 열매(fruits of the Holy Spirit)란 곧 초자연의 공적이며, 이러한 착한 일을 행하는 자는, 자신이 경험하는 행복에 의해 신의 현존(現存)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착한 일을 목격함으로써 신의 현존을 인정한다(갈라 5:22-23). 바꾸어 말하자면, 이와 같은 착한 일은 성신의 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결과들이다. 성신의 12가지 결실을 불가타(Vulgata)판 성서에서 들자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관용, 친절, 선의(善意), 유화(柔和), 신앙, 절도(節度), 절제(節制), 순결이다. 사도 바울로가 이를 12가지로 한정할 생각은 없었던 것같으며, 어쨌든 이러한 착한 일은, 덕(德)이나 보람으로부터 싹튼 행위(actus)라고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친절’이란 일반적으로는 남을 대하는 태도가 성의가 있으며, 정답고 고분고분한 것을 지칭하나. 그리스도교적으로는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이해와 동정과 배려를 나타내는 소질을 말한다. 상냥한 말씨, 관대한 태도, 받은 모욕을 용서하는 행위 등에 의해서 표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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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 親口 [라] osculum [영] kiss

친구란 숭경(崇敬)의 대상에 대해 경의를 표하거나, 평화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입맞추는 것을 말한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얼굴, 손, 입에 입맞추는 것은 혈연(창세 27:26, 29:11), 우애(1사무 20:41), 화해(2사무 14:33, 루가 15:20), 사랑(아가 1:1), 환영(루가 7:45), 존경과 복종(1사무 10:1) 등의 상징이었다. 또 물건에 입맞추는 행위는 속죄, 회개, 기원, 경건의 의식으로서 신전(神殿)의 문지방, 제단에 입맞추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것과 함께 성체배령 전 성체, 순교자의 묘, 성유물(聖遺物)에도 입맞추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에서는 미사 시작 때와 미사 끝날 때 사제가 제단에 입맞추고 복음낭독 뒤에는 복음서에 입맞춘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신자 상호간의 일치를 통한 평화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상징으로 서로 입맞춘다. 즉 공식 의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부제나 사제가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라고 하면, 모든 신자는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평화와 사랑을 표현한다. 이 때 사제는 부제나 봉사자와 입맞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때 입맞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을 한다. 또 축복된 물건을 분배 할 때(초나 종려나무가지) 먼저 입맞추고 난 뒤 분배하는데, 이 때 받는 사람은 분배자의 손이나 반지에 입맞춘다. 임종 때에는 십자가에 입맞춘다. 이상의 모든 행위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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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 [한] 親交 [영] divine friendship

보통은 친하게 사귀는 교분(交分) 곧 정분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친교’란 ‘하느님과의 친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은총의 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천국의 상속인(相續人)이 되고, 분별할 줄 아는 나이에 다다르면, 신의(神意, divine will) 즉 ‘신의 의지’(volition of God)를 성의를 갖고서 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느님과의 친교의 기초는, 하느님에게서 준 신성(神性, deity 또는 divinity)을 공유(共有)한다는 데서 다져지고 있다. 하느님과의 교우(交友)관계가 있게 됨은,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부응하여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은총의 상태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대신덕(對神德)인 애덕(愛德, charity)에 의하여, 의화(義化)된 사람은, 하느님의 자애에 대한 답례로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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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리아노 [라] Cyprianus

Cyprianus(200∼258). 카르타고의 주교. 성인. 축일 9월 16일. 학식 높은 이교도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유명한 수사학자로 성공하여 246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 2년 만에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성서와 테르툴리아노의 저술에 심취하여 깊은 지식을 얻게 된다. 249년 가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가 시작 되었을 때 그는 도피하였으나 망명지에서 서간을 통해 그가 맡은 교회를 계속 이끌어 갔으며 251년 망명지에서 돌아왔다. 그는 255년과 256년 두 차례의 시노두스에서 교회에 관련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교회의 성사를 주관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이교도들의 재세례를 요구하였으며, 아프리카 주교들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이교도들도 세례를 주관할 수 있었으므로 치프리아노와 로마 주교 스테파노는 서간을 통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논쟁은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에 의해 잠시 중단되었고 258년에는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는 몸을 숨겼으나 곧 붙잡히게 되어 258년 9월 14일 순교하였다.

소논문과 서간이 주를 이루는 치프리아노의 저술은 당시부터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그의 교회와 사제와 성사에 대한 저술들은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교회 안에서 교회와 주교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진정한 일치에 관해 서술한 그의 소논문 <교회일치론>(De catholicae Ecclesiae Unitate)은 유명한데 이 논문에서 그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은 자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고 쓰고 있다. 그의 서간들도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데, 성체에 관한 그의 63번째 서간과 같은 몇몇 서간들은 사실상 소논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서간은 모두 81통인데 이들 중 65통은 치프리아노 자신의 것이고, 16통은 이에 대한 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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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품천사 [한] 熾品天使 [관련] 천사

⇒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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