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rianus(200∼258). 카르타고의 주교. 성인. 축일 9월 16일. 학식 높은 이교도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유명한 수사학자로 성공하여 246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 2년 만에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성서와 테르툴리아노의 저술에 심취하여 깊은 지식을 얻게 된다. 249년 가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가 시작 되었을 때 그는 도피하였으나 망명지에서 서간을 통해 그가 맡은 교회를 계속 이끌어 갔으며 251년 망명지에서 돌아왔다. 그는 255년과 256년 두 차례의 시노두스에서 교회에 관련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교회의 성사를 주관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이교도들의 재세례를 요구하였으며, 아프리카 주교들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이교도들도 세례를 주관할 수 있었으므로 치프리아노와 로마 주교 스테파노는 서간을 통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논쟁은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에 의해 잠시 중단되었고 258년에는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는 몸을 숨겼으나 곧 붙잡히게 되어 258년 9월 14일 순교하였다.
소논문과 서간이 주를 이루는 치프리아노의 저술은 당시부터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그의 교회와 사제와 성사에 대한 저술들은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교회 안에서 교회와 주교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진정한 일치에 관해 서술한 그의 소논문 <교회일치론>(De catholicae Ecclesiae Unitate)은 유명한데 이 논문에서 그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은 자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고 쓰고 있다. 그의 서간들도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데, 성체에 관한 그의 63번째 서간과 같은 몇몇 서간들은 사실상 소논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서간은 모두 81통인데 이들 중 65통은 치프리아노 자신의 것이고, 16통은 이에 대한 회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