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들이 세계도처에 산재해 있거나 공의회로 연합되어 있음을 막론하고 교회 내의 수위권이 교황 개인에게 있지 않고 주교단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를 통하여 이 주장은 다양한 형태를 띠어 왔는데 그 중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도 있다. 이 주장의 근거는 교회생활에 대한 고대 문헌과 신약성서이다. 그리스도는 주교단의 전신(前身)인 사도단을 창설했는데 베드로는 이의 단장으로 임명받아 독특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므로 사도단의 권위는 베드로의 권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후자에 의하여 보완된다. 사도시대 교부들의 저작에 의하면, 주교는 그 지위가 고립되거나 그 임무가 자신의 관할구역에 제한됨이 없이 교회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하며 그 책임은 다른 주교들과의 친교 속에서 표현된다. 주교단 지상주의의 이론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저서와 성 치프리아노 및 아우구스티노의 저서에서 이런 의미로 인용해 왔다.
역사상 교황의 수위권이 널리 인정된 중세에 주교단 지상주의의 일부 풍조는 교황의 권한과 주교들의 권한을 조화시켜 계승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교황의 아비뇽 유폐, 미모왕 필립과 바바리아의 루드비히의 충돌, 서방교회 대이교(大離敎) 등이 공의회 우위론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원시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피사의 공의회를 비롯하여 수차의 공의회는 파리의 요한, 오캄의 윌리암 등 주교단 지상주의의 지지자들이 일으킨 사건기록을 누적시켰다. 이의 보급에 기여한 자는 프랑스의 갈리카니즘(Gallicanismus)이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us)에 반대하여 공의회 우위론과 교황의 교회법 종속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견해는 알마인(Almain)의 온건파에서 리처(Richer)의 강경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독일에서 주교단 지상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베스트팔리아 강화조약 이후의 일이다. 공의회는 교황의 지위를 강화하는 한편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긍정했으나 양자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레(Maret)와 다르브와(Darboy) 몬시뇰에 의해 대표되는 주교단 지상주의에 대하여 그들의 견해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과 교황 무류성의 제한적인 인정, 주교들의 관할권 등을 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 지상주의의 정통적인 요소를 새롭게 표현하고 이단적인 요소를 배척하였다. 즉 사도들의 직무는 하느님에 의하여 주교단에 계승되었고 주교 개인은 이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주교단의 조직은 창설자인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의 단장은 베드로의 직무를 행하는 교황이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공의회 원리를 수위권의 원리와 결합시켰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을 포함한 주교단에 있으며 이 권위의 행사는 주교단에 의하여, 혹은 주교단의 단장인 신분으로서의 교황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Joseph Lecuyer, Episcophalism, Sacramentum Mundi, vol.3, Barns & Oates, 1968 / 鄭鎭奭, 주교단과 수위권, 司牧, 46호 / 鄭夏權, 敎階制度의 起源, 司牧,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