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1 [한] 離敎 [라] schisma [영] schism

교회 공동체로부터의 고의적인 이탈, 이탈한 상태 혹은 그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 교인의 단체. 이의 대표적인 단체로 그리스 정교회를 들 수 있다. 갈라진 금을 뜻하는 그리스어(schisma)에서 유래한 이 말을 바울로는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위협하는 견해의 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고(1고린 1:10, 11:18, 12:25), 초대 교회는 주교의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교회의 친교에서 이탈하는 것을 지칭하였다. 이교는 친교의 이탈이라는 점에서 이단과 같으나, 그 이탈의 원인에서 볼 때 후자가 신앙 이해의 차이인 데 대하여 전자는 교회의 재치권에 대한 배척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된다.

이교의 개념이 발전한 데는 치프리아노(Cyprianus)와 아우구스티노에 힘입은 바 크며 그레고리오 개혁(11세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 개념은 또한 교회론의 발전에 크게 의존하였다. 가톨릭 개혁(Counter-Reformation) 신학은 ‘이교’의 신학적 성격을 수정하는 길을 열었다. 이때까지는 신앙에 대한 중대한 이해 차이가 없는 한, 더구나 합법적인 권위로부터 이탈한 자가 교회의 성사체계와 교계조직들 간직하는 한 이교는 교회 일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정될 뿐, 이교집단이 교회의 신비와 절연되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았으며 서로간의 우정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한편 교회란 교황권 아래 교계조직을 갖춘 사회라고 정의하게 되자, 가톨릭 개혁은 이교를 ‘교회 자체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보았다. 종교개혁자의 거부운동에 답변할 목적을 가진 이 교회론은 서방교회가 동방 자매 교회에 대하여 취한 전통적인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수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재치권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 ‘우정의 교회론’을 제창함으로써 이교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회복하였다. 그래서 성사(세례, 신품, 성체), 성화은총, 대신덕, 성령의 은혜 등을 강조하며, 교회의 신비에 참여하는 데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교의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이교는 교회법적 의미에로 로마 성청과 재치권적 관계를 끊는 것이며, 신학적 의미로는 교회가 지닌 단일성의 구현을 저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이교자(schismatici)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갈라진 형제라 부르며 교회의 재일치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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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한] 李光獻

이광헌(1787~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일명 치문. 성녀 권희(權喜)의 남편, 성녀 이 아가다의 아버지, 성인 이광렬(李光烈)의 형.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어려 순교자를 낸 광주이씨(廣州李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30세 때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한 후로는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를 피해 다니느라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년을 궁핍하게 살았으나 회장직에 충실하여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는 한편 주교와 신부들을 보좌하여 교우들을 모아 미사에 참여케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 초 어떤 예비교우가 체포된 자신의 아내를 석방시키기 위해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천주교인을 밀고하여 이로 인해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신문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되었고 형조에서 배교하면 가족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3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냈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을 비롯한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항 성 비오 10세에 위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로로 2세에 위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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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렬 [한] 李光烈

이광렬(1795~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요한. 일명 경삼. 성인 이광헌(李光獻)의 동생. 명문양반인 광주이씨(廣州李氏) 가문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 때 형 이광헌 일가와 함께 입교했고 그 후 교회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 유진길(劉進吉) · 조신철(趙信喆) 등을 도와 두 차례나 북경(北京)을 왕래하며 조선 교회의 상황을 북경 교회에 알리고 성직자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북경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국해서는 육식을 금하고 인내와 극기의 동정(童貞)생활을 결심, 평생을 혼자 살며 수계(守戒)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7일 형의 일가, 김장금(金長金)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형과 함께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이겨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이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위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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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나오 [관련] 니콜라오1 니콜라오2

⇒ 니콜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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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 [한] 李啓先

이계선(1918~1979). 신부. 세례명 레오. 서울에서 출생.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11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서품 후 인천본당 보좌신부, 1946년 명동본당 보좌신부겸 청년연합회 지도신부, 1948년 이천본당 주임신부, 계성 여자중 · 고등학교장 등을 역임하고 1954년 로마에 유학했으며 그 뒤 공부를 마치고 파리로 와 사망할 때까지 소르본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9년 5월 14일 심장병으로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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