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강학 [한] 天眞菴講學 [관련] 주어사강학

1777년 겨울 주어사(走魚寺)에서 권철신(權哲身), 정약전(丁若銓), 이벽(李檗) 등이 모여 소위 주어사강학(走魚寺講學)을 개최한 이후 강학은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러한 주어사강학의 연장선상에서 천진암에서 열렸던 강학을 천진암강학이라고 한다. 그런데 1777년 겨울 주어사에서 열린 강학에 대해 정약용(丁若鏞)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녹암 권철신 묘지명>(鹿菴權哲身墓誌銘)에는 강학 장소를 천진암과 주어사로 기록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일부에선 1777년 겨울에 열렸던 강학을 주어사강학이 아닌 천진암강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여유당전서≫의 <선중씨 묘지명>(先仲氏墓地銘)과 이승훈(李承薰)의 문집 ≪만천유고≫(蔓川遺稿)에는 강학 장소를 주어사로만 기록하고 있고, 또 강학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녹암 권철신 묘지명>, <선중씨 묘지명>, 그리고 달레(Dallet)의 ≪조선천주교회사≫(Histori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 등 세 자료를 종합 검토해 보면 강학 장소는 분명 주어사이다. 따라서 천진암강학은 1777년 겨울에 열렸던 것이 아니라 1777년 겨울 이후, 즉 주어사강학 이후 열린 강학이다. 천진암강학이 열렸던 천진암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京畿道 廣州郡 退村面 牛山理)에 의치해 있는데 현재 천진암성역화위원회가 조직되어 성역개발사업을 벌이고 있고 이벽, 권철신 · 권일신 형제, 이승훈, 정약종(丁若鍾)의 묘소가 이장되어있으며 가르멜 여자수도회가 진출해 있다. (⇒) 주어사강학

[참고문헌] 趙珖, 韓國 初期敎會史와 走魚寺, 司牧, 91호,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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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학문 [한] 天主學文 [관련] 천주학

천주학에 관한 저술, 신학서나 기타 저술을 말한다. (⇒) 천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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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학 [한] 天主學 [관련] 서학

천주에 관한 학문이란 뜻으로 천주교 수용당시 우리 나라에서 천주교를 이렇게 불렀다. 동시에 서학으로도 불렸다. 17세기의 조선조학자인 이수광(李晬光)은 그의 저술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마태오 리치(Matteo Ricci)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소개하였으며, 이에 의하여 천주교가 조선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초에 천주교는 종교적 신앙으로서가 아니라 학문으로서 연구되었기 때문에 천주학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천주’의 의의에 대하여는 당시의 유학자(예컨대 유몽인)들은 유교의 ‘상제’(上帝)의 의미로 쓰기도 하였다. (⇒) 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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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종 [한] 天主∼ [라] Servus Dei [관련] 가경자

시복에 관한 특수용어로서 시복조사가 시작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시복조사가 교황청 시성시복성성에 정식을 접수되면 가경자(Venerabilis)로 대치된다. (⇒) 가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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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어린 양 [한] 天主∼羊 [라] Agnus Dei

① 라틴미사에서 영성체 직전에 사제에 의해 낭송되는 ‘천주의 어린 양’이라고 시작되는 문구. 요한 복음 1,29절에 성서적 근거를 두고 있다(이것은 또 이사야 53,7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문구의 반복은 ‘하늘에는 천주께 영광’(Gloria in excelsis)에서 처음 발견되며 로마에서 미사에 소개된 것은 교황 성 심마쿠스(St. Symmachus, 재위 : 498∼514)에 의해서였으며 시리아의 세르지오(Sergius) 1세(재위 : 687∼701)는 이것을 독립시켜서 성체 분할(分割) 때 부르게 하였다. 원래는 한 번만 부르던 것이 11세기 이후에는 세 번씩 부르게 되었으며 세 번째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문구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바뀌었다. 1969년의 의 법규는 이것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게 하였다. ② 교황의 즉위 첫 해와 그 뒤 7년마다 교황에 의해 축성되었던 양의 모습을 담은 밀랍 메달. 전년(前年)에 남은 부활초로 성 토요일에 만들었는데 9세기 로마에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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