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한] 休息 [영] rest

1. 의미와 기능 : 휴식이란 인간의 지속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서 모든 생명체의 필연적 전제조건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운동과정은 단순한 직선동작(直線動作)이 아니라 주기적 율동성과 확장적 변이로서 파악될 수 있다. 인간 역시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확장한다. 겉으로 분명히 표현되는 적극적 활동을 노동이라고 하면, 쉽게 감지되지 않는 소극적 활동을 휴식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인간 활동의 주기적 변이는 노동과 휴식이라는 진폭 속에 이루어진다.

흔히 노동은 인간의 다른 종류의 동작, 예를 들어 춤이나 연극 스포츠 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원시사회 자연민족의 노동에는 그러한 대립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고 노동 · 춤 · 놀이 등이다. 함께 융합된 인간 활동만이 있었을 뿐이다. 휴식은 활동의 완결 뒤에 오는 마침이 아니라, 계속 진행과정 가운데 일시적 쉼을 뜻하므로 휴식은 인간의 총체적 운동의 주기적 율동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리듬은 운동을 시간적 경과에 따라 질서 있게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개인이나 집단노동에서 그 피로를 경감시키고 동시에 기쁨을 유발시키며 미적 쾌감의 원천이 되어 인간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한다. 역사적으로 농업사회에서 노동은 낮과 밤, 계절 등 자연주기에 따랐으며 날씨가 좋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궂은 날씨에는 느슨하게 일에 임하였다. 이러한 여건은 노동에 자연적 리듬을 첨가한다. 인간의 노동은 하루의 주기와 일치함으로써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그치였다. 1년이라는 자연 순환의 주기는 안식기간과 축제기간 등 또 하나의 리듬을 인간노동에 부가하여 인간사회에 보편적 현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휴식의 기원을 귀족 등 지배계층에 두는 사람도 있으나 고대 희랍 철인이나 16세기 영주들의 일하지 않는 상태를 휴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특권계층이 일하지 않고 여가를 가질 수 이었던 것은 노예나 농노 하인들 덕분이었기 때문에 그 같은 여가는 휴식을 노동과 관련된 의미로 규정할 때 노동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가 아니고 노동 대신에 그냥 차지한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휴식과 노동의 구분을 단순히 인간 동작의 외형적 표출이나 감지여부로써만 판단할 수는 없다. 자동차 운전이 직업인 사람의 경우, 휴일에 놀러 가려고 가족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는 것은 비록 똑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노동이 아니라 휴식의 과정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행위의 목적은 휴식과 노동을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노동이건 휴식이건 인간의 모든 시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특히 휴식은 자유와 직결되어 있다. 휴식과 관련된 자유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 좁은 의미로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이다. 인간에게는 휴식시간과 자유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휴식이라는 자유로운 여유의 시간을 본래의 의미대로 인간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휴식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생계를 위한 노동은 창조적 행위도 아니며 순수한 기쁨도 아니고 오히려 괴로움과 무거운 짐이 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에게 인간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그 가치를 고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휴식이며 여기에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휴식은 자유의 소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이다. 휴식의 기능으로서는 첫째, 노동은 인간의 자연적 생리적 리듬에 짐을 부과하여 인간 활동의 지속성에 장애요소를 가져오는데 휴식은 그러한 장애요소 즉 피로를 회복시켜 준다. 둘째, 휴식을 통해 실제적이건 상상적이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함으로써 규격화된 일상 업무 수행으로 쌓여진 단조로운 관행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게 한다. 셋째, 기본사회조직의 습관적 일상성에서 벗어나 인간 창의력을 새롭게 함으로써 인류문화의 지배적 가치를 재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간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동시에 노동 시간을 계속 단축시켜 하루의 노동시간, 주간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일생 동안의 총 노동시간마저 단축되고 있다. 따라서 휴식의 문제는 새삼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보다 많은 휴식을 누릴 것인가, 보다 많은 소비를 즐길 것인가”라는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생산성 향상으로 배타적 과제가 아니라, 보완적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여 휴식의 시간을 포기하여 버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휴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그 참된 의미를 망각함으로써 그릇된 휴식 속에 파묻혀 기쁨보다는 싫증만을 가져온다고 불평하고 있다. 노동과 휴식은 상호보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가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휴식을 통해 인간의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휴식의 의미를 정리함으로써 그 과정은 분명해진다. 첫째, 휴식은 인간의 내적 성숙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인간의 내적 성숙을 위해서는 분명히 평정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릇된 향락은 참된 휴식이 될 수 없으며 정신적으로 공허함만을 가져온다. 보다 근본적 사리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데 휴식은 활용되어야 한다. 둘째,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공허하고 천박하고 피상적 내용으로 바뀌었다. 휴식은 인간에게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활용되어야 한다. 인간의 관심과 마음을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돌림으로써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인간존재의 바른 자리를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직장과 가정이 분리되어 있는 오늘날, 휴식은 가능한 한 가정을 중심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인간은 생업을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장(家長)으로서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현대인은 가정과 노동이 일치하던 과거의 가장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가정에 할애하여야 한다. 가정을 중심으로 인간은 보다 넓은 이웃, 보다 큰 사회와 공존할 수 있으며, 체험의 범위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2. 가톨릭 입장 :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 2:2-3). 일을 쉰다는 것은 본래 종교적인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단순히 세속적 의미의 휴식으로서 그 내용과 기능을 충실하게 할 수는 없다. 종교적 가르침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휴식을 통해 참다운 인격 발전과 정신문화의 성숙은 불가능하다. 노동과 휴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천지창조를 통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계명이다. 인간의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 바로 휴식이며 그 고유기능이기도 하다.

성서의 하느님 백성은 주일(主日)을 중심으로 한 주의 주기가 구성된다. 일상적 노동, 가정과 사회생활 모두가 주일(主日)을 통하여 질서 있는 활력을 얻는다. 일요일의 안식은 한 주 동안의 노동을 하느님의 뜻대로 그 안배하심 속에 머물게 한다. 하느님 앞에서의 안식과 고요함을 통해 ‘기도하며, 일하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노동의 궁극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일요일에 일을 쉰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이다. 가톨릭 교회의 일요일을 지배하는 정신적 중심은 성체의 희생이다. 십자가와 제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로 그리고 세상 가운데로 스며든다. 십자가와 제단은 부활과 영생의 보증이며 따라서 일요일은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미사에 참여하고 일을 쉬는 것은 다 같이 일요일에 지켜야 할 계율이지만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을 쉬는 것이므로 이 양자의 가치는 동등한 것이 아니라 목적과 수단의 관계이다.

안식일의 의미는 단순히 쉬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거룩하게 보내는 데에 그 근본목적이 있으므로 일요일의 휴무(休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다. 첫째, 보통의 가사와 가축을 돌보는 일을 일요일의 휴무규칙에서 면제된다. 둘째, 화재 · 홍수 등 목전의 긴급 상태를 제거해야 할 경우 안식일의 노동은 허락된다. 셋째, 수도 · 가스 · 전기 등 그냥 방치할 경우 일어날 위급상태를 예방하기 위한 안식일의 노동도 허락된다. 넷째, 가을철 불순한 날씨 때문에 급히 추수를 서두를 경우 등 개인적으로 큰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도 휴무규칙에서 면제된다. 다섯째, 제조과정에 있는 재료가 일요일의 작업 중단으로 못쓰게 될 경우 등 생산과정에 있어 기술적으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할 경우 일요일의 노동은 허락된다. 그러나 투자자본의 효율성이나 보다 많은 수익을 목적으로 휴일을 다른 요일로 바꾸는 것은 면제사유가 되지 못한다. 휴일을 다른 요일로 바꿈으로써 인간의 노동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의 리듬을 깨뜨리고 안식일의 의미를 무시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다. 하느님의 천지 창조 과정과 계획 속에서 노동과 휴식은 그 기능과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金漁相)

[참고문헌] 두봉 編, 노동과 인간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1 / 레오 13세, 노동헌장, 성바오로출판사, 1982 /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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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영] humanism [독] Humanismus

휴머니즘이라는 말은 ‘인간성’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anitas에서 유래되었고, 다시 이 말은 ‘인간’이라는 homo에서 파생되었다. 어원에 비추어 인간과 인간성을 존중하여,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함으로써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모든 장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란 말은 사용하는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휴머니즘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인문주의자들, 즉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에라스무스 등은 중세적인 교회의 권위와 신(神)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귀함을 확인하고 옹호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불렀다. 이후 17∼18세기의 시민혁명기에 이르면 봉건적인 신분질서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자고 외친 시민사상가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불렀다. 그 뒤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사회의 계급적 대립,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자기 소외, 공황과 실업에 의한 사회적 불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불렀다. 그 중 특히 포이에르바하는 자기의 유물론적 세계관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실존주의자들은 주체성의 확립이 휴머니즘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하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지칭하였다. 이렇게 다종다양한 휴머니즘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로부터 이어 내려온 휴머니즘의 정신적인 전통을 계승하여 냉전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할지도 모를 핵전쟁의 참화에서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휴머니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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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꼴라레 [관련] 포콜라레

⇒ 포콜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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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본당 [한] 琿春本堂

1924년 만주 간도성 훈춘현 훈춘시(滿洲 間島省 琿春縣 琿春市)에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훈춘지역은 1905년경 복음이 전파되어 1907년 이 지역의 주민 13명이 원산본당의 브레(Bret, 白) 신부에게 영세한 후 교우촌을 건설, 삼원본당 주임 라리보(Larribeau, 元亭根) 신부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순방을 받았고, 1909년 다시 100여명의 영세자가 생기게 되어 7개의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 후 1920년 함경도와 간도 지방이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가 됨에 따라 1923년 베네딕토회의 퀴겔겐(C. Kugelgen, 具) 신부와 로트(L. Roth, 洪) 신부가 훈춘현 육도포에 본당을 창설하고, 이어 1924년 퀴겔겐 신부가 훈춘시에 본당을 분리시키고 자신이 주임신부로 사목하였다. 1929년 되르플러(E. Dorfler, 鄭)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932년 마적과 공산군의 습격으로 폐쇄된 육도포본당까지 관할하면서 1934년 성당, 사제관을 증축하고 올리베타노 베네딕토수녀회 분원을 설치하는 한편 진료소, 해성학교, 야학 등을 개설하여 교세는 급격히 신장하였다. 그 후 시미트(C. Schmid, 金)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고 이어 되르플러 신부가 다시 4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과 부속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다. 본당이 가장 발전했던 1936년의 교세는 교우수 1,244명, 공소 22개소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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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 [한] 後進國 [관련] 개발도상국

⇒ 개발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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