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철 [한] 趙信喆

조신철(1795∼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20일. 세례명 가롤로. 일명 덕철(德喆). 성녀 최영이(崔榮伊)의 남편. 성인 최창흡(崔昌洽)의 사위. 강원도 회양(淮陽)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5세 때 모친을 여읜 후 부친이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탕진하자 잠시 중이 되었다가 환속, 서울로 이사하여 23세 때부터 동지사(冬至使)의 마부(馬夫)로 일하였다. 30세경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 유진길(劉進吉) 등과 알게 되어 입교했고 북경에서 성세 · 견진 · 성체 · 고백성사를 받고 계속 동지사의 마부로 일하면서 북경 교회와의 연락, 성직자영입운동 등에 깊게 관여하여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 1836년 모방(Maubant, 羅) 신부, 1837년 샤스탕(Chastan, 鄭) 신부와 앵베르(Imbert, 范世亭) 주교 등을 입국시켰다.

항상 궁핍한 교우들을 도와주고 외교인들을 가르쳐 입교시켰고, 고집이 센 아내를 인내와 노력으로 훌륭한 교우로 만들어 선종케 했는데 아내가 죽은 후 독실한 교우인 최창흡의 딸 최영이와 재혼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처가(妻家)로 피신해 있었으나 6월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던 중 처가를 습격한 포졸들이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는 것을 보고 포청까지 따라가 자수했다. 포청에서 집에서 발견된 성물(聖物)과 교회서적 때문에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해야 했고, 곧 이어 체포된 유진길 · 정하상 등과 함께 서양신부들의 은신처를 알려는 관헌들에게 더욱 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내고 9월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조스 [원] Josse, Jean B.

Josse, Jean B.(1851∼1886). 조선교구 선교사. 프랑스의 브와소(Boiseau)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여 낭트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187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소신학교 교사로 1년간 봉사한 후 클리옹(Clion)의 보좌신부로서 4년간 사목활동에 정진하였다. 1880년 파리 외방선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 1881년 10월 26일 임지인 조선을 향해 떠났다. 도중 상해(上海)에서 리델(Ridel) 주교를 만나 그의 지시에 따라 일본 나가사끼(長崎)로 건너가 그 곳 인쇄소에서 일을 도우며 조선 입국의 날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때마침 주교성성식을 갖기 위해 일본에 왔던 블랑(Blanc) 주교를 수행하여 1883년 10월 1일 마침내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곧 부흥골의 작은 공소를 맡아 전교활동을 개시하였는데, 1884년 9월에는 전라도지방의 사목을 맡게 되었다. 그는 벽촌을 두루 찾아다니며 많은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새로운 영세자를 얻는 데 온 정력을 다하는 동안 과로로 몸이 쇠약해진데다가 장티푸스의 증세마저 도져, 1886년 1월 28일 조선 입국 28개월만에 선종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조숙 [한] 趙淑

조숙(1786∼1819).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권일신(權日身)의 사위. 경기도 양근(楊根) 출신. 그의 입교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는 나이가 어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상당히 어려서 입교한 듯하다. 박해 때 양친을 따라 강원도 외가로 피신하여 여러 해를 살았다. 그는 권일신의 딸 권데레사와 결혼하였으나 부부가 합의하여 일생을 동정(童貞)부부로 살 것을 결심하고 순교 때까지 순결을 지켰다.

박해가 좀 뜸해지자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와 살면서 기도와 묵상으로 신앙을 굳혔으며 함께 전교에 힘썼다. 1817년 조숙이 잡혀 갇히자 권 데레사도 자진 포도청에 출두하여 남편과 함께 갇히었다. 그들은 혹독한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특히 권 데레사는 천주께서 죄 많은 나에게 동정을 지키는 은혜를 주셨고 또한 순교의 은혜까지 주시고자 함을 감사할 따름이라고 하였고, 남편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 편지를 써 격려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1819년 5월 21일(음) 서울 포청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는데 조숙은 33세였고 그의 아내 권 데레사는 36세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조선천주교소사 [한] 朝鮮天主敎小史

1933년 부산(釜山)에서 일본어로 간행된 한국 천주교회사. 저자는 일본인 구스다 오노사부로(楠田斧三郞). 판형은 4 · 6판(版). 일본군 군종신부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참전했던 예수회 선교사 세스페데스(Cespedes)의 조선 입국에서 시작하여 1880년대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되기까지의 한국 천주교회사가 서술되어 있다. 총 374면(面)의 분량에 서(序), 본문(本文), 외편(外篇),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고 10여 장의 화보가 수록되어 있다. 서에는 연구동기, 연구방법, 내용의 개요 등이 밝혀져 있고, 7장(章)으로 구성된 본문에는 조선 천주교회사가 서술되어 있으며, 외편에는 ‘귀즐라프 조선연안항해기’(朝鮮沿岸航海記), ‘영함(英艦) 알세스트호(號) 조선연안 항해기’, ‘복병산상(伏兵山上)의 양인묘지(洋人墓地)’ 등 3편의 소론(小論)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록에는 참고문헌 목록, 조선에서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기간표, 조선지도, 경기도 연안의 해륙도(海陸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구스다 오노사부로는 부산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사람으로, <청구학지>(靑丘學誌)에 실린 조선 천주교회사 관계 논문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강연으로 조선 천주교회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까지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자비로 이 책을 간행하였다.

≪조선천주교소사≫는 아마추어 사가(史家)의 저술인 만큼 많은 착오와 부실이 드러나고, 서술에 있어서도 지명(地名)과 인명(人名)의 확증과 역사적 배경의 고증 없이 사실만을 제시하여 단조롭고 피상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지만 소책자의 통사(通史)로서 많은 이용되었고, 또 일인(日人)이 저술한 최초의 통사라는 점에 그 의의와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李元淳, 韓國天主敎會史硏究小史, 崔奭祐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 楠田斧三郞, 朝鮮天主敎小史, 博文堂書店, 釜山 1933.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조선천주공교회약사 [한] 朝鮮天主公敎會略史

1931년 경성교구 청년회 연합회에서 ‘조선교구설정 10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간행한 한국 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 편자(編者)는 서문(序文)에서 조선에 복음이 전래된 경위를 널리 알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활동한 선교사들에게 감사하며 순교선열들의 덕(德)을 기려 10만 교우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복음화에 앞장설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간행취지를 밝히고 있다. 내용은 본문(本文)의 서언(緖言)에서 임진왜란 때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입국을 간략히 서술한 뒤 이어 본론으로 들어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공교의 조선 전래와 그 초기’, ‘성풍(腥風) · 육니(肉泥)의 군난시대’, ‘전교의 자유와 광양시대’, ‘공교회의 대발전과 신교구 설정’ 등의 4기(期)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고 본론의 끝부분에서는 ‘각 교구의 사업과 시설일반’이라는 제목 아래 각 교구의 전례, 교육, 의료, 출판, 사회사업 및 수도회 등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또 부록에서는 연표, 각 교구의 역대교구장, 교우 증가표, 1884년부터 1930년까지의 영세자 총수, 각도별 교우수 통계, 79위 복자 방명록, 조선 내의 성당 소재지 등을 수록하고 있다.

책의 크기는 4 · 6판의 총 111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였으나 우리말로 서술된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의 통사(通史)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