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벌 [한] 永罰 [영] eternal punishment

악마와 저주받은 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받는 형벌. 세상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거절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한 사람은 죽고 나서 공의(公義)하신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저주받은 자’(마태 25:41)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마태 25:46). 성서의 말씀에 따라 교회는 지옥의 영벌이 있다고 가르친다(Denz. 780).

스콜라 신학자들은 영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지옥의 영벌은 세상에서 지은 죄에 상응해야 하는데, 죄란 인생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외의 다른 것들을 마치 최후 목적인 양 추구하는 것이므로, 그 벌 또한 하느님을 잃는 형벌뿐 아니라 다른 것들로부터 해(害)를 받는 형벌을 당해야 한다. 전자를 실고(失苦, poena damni), 후자를 각고(覺苦, poena sen년)라 한다. 실고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요 선 자체이신 하느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함으로써 당하는 고통이다.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마태 25:12). 각고는 성서에서 인간 육신이 느끼는 아픔에 비유하여 기록한 고통이다. 지옥의 통곡은(마태 8:12, 22:13) 마음의 아픔으로, 죽지 않는 독충(毒蟲)은 양심의 가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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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 [한] 永福

천주교 용어로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쓰여 왔으나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영복’이란 본래 ‘영원한 복락(福樂)’의 약어(略語)로서 만들어진 말인데, 뜻은 천당에서 받는 영원한 복락을 가리킨다. 이 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것은 ‘영벌’(永罰, damnation) 즉 ‘영원한 벌’이다.

‘영복’을 받는 사람은 의인(義人), 또는 죄를 짓지 않고 애덕(愛德)의 생활을 하다가 숨진 사람으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판결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서 비로소 이 영원한 복락을 누릴수 있다. 하느님에게서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끝이 없는 행복의 상태를 말한다. 이 표현은 영원히 행복이 계속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의 충만도 의미한다. 이러한 생명의 충만을 신자는 이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가함으로써 가지고 있다.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풀이에 따르면, ‘영복’은 ① 천구의 성인들의 영화와 행복, 또는 영광스러운 행복, ② 영원한 행복(bonheur eterenel)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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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경 [한] 榮福經 [라] doxologia major [관련] 대영광송

⇒ 대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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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한] 靈性 [라] spiritualitas [영] spirituality

그리스도교에서는 섞인 것이 조금도 없는 순전한 비물질성(非物質性)을 영성이라고 부른다. 본질적으로 적어도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品性)이나 성질, 또는 천부(天賦)의 총명을 영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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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신학 [한] 靈性神學 [라] thelolgia spiritualis [영] spiritual theology

영성 생활의 성격과 본질을 규명하고 완덕(完德)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이는 본시 독립된 학문이 아니었으나 17∼18세기에 와서 신학의 각 분과가 독립될 때 영성신학도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성신학이 영성생활을 다룰 때에는 은총론의 기초 위에서 다루게 되므로 교의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영성생활의 원리와 방법을 탐구할 때에는 윤리신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성신학의 원천은 성서, 전승, 교회의 가르침, 교부와 신학자들의 가르침 등이며 그 목적은 완덕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에 있으므로 실천적인 학문이다. 이 신학은 연역적 · 귀납적 방법을 병용한다. 완덕의 본질이나 요건 등을 계시진리에서 연역해야 하고 연역한 일반 진리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일찍이 완덕에 도달한 적이 있는 성인들의 사적(史蹟)을 귀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성신학이 다루는 그리스도교적 영성생활이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사업의 신비적 차원을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그리스도 교인의 존재와 삶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도달하려는 빠스카적 삶인 것이다. 이 삶은 세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간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그리스도교 교인이 죄에서 정화(淨化)되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심신을 강화하는 정화,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를 입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명(照明),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행복을 느끼는 일치(一致)의 단계가 그것이다. 이들 단계에는 수덕과 신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수덕적인 요소란 은총의 도움으로 완덕에 나아가는 모든 노력 가운데 특히 죄악을 멀리하고 덕행을 실천하는 것을 가리키고, 신비적인 요소는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내밀한 지식에 접하는 영신생활의 깊이이다. 이들 양 요소는 하나의 영성신학에 대한 두 관점이었다. 신비생활은 수덕생활의 발전 결과 자연히 도달하는 단계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스카라멜리(G.B. Scarameli, 1687∼1752)가 영성신학을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나누자 이 구별을 따르는 학자들이 많았다. 이에 따르면 수덕 신학의 대상이 영성생활 가운데 그리스도 교인의 일상적인 측면인 데 대하여 신비신학은 직관 · 계시 · 신비적인 일치 등 특수은총을 연구한다. 그러나 오늘날 통설의 입장은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이라는 말 대신에 영성신학이라고 표현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으로 복귀하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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