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제, 유월제(逾越祭), 혹은 빠스카라고 한다. 과월제는 유태인들의 3절기(節氣) 중 봄의 철기[春節]인 과월절에 지내는 축제, 혹은 제사를 말한다. 과월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Pesah는 ‘통과하다'(보고도 그냥 지나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처음에는 가축의 맏새끼를 잡아서 바치던 유목민족의 축제였는데, 여기에 가나안 농경민족의 축제 풍습인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관습이 결합하였다는 것이 출애급 이전의 과월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기에 다시 출애급의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가 부과된다. 즉 야훼가 이집트민족의 모든 장자(長子)들을 멸하실 때 이스라엘 민족의 집을 통과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첨가되면서 이집트에서 해방된 출애급을 기념하는 중요한 축제로 되었다. 니산(nisan, 정월)의 10일에 그 해 태어난 흠 없는 양을 고르고 14일에는 그것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른다. 고기는 수족(手足)과 내장까지 모두 구워서 누룩 없는 빵, 쓴 나물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식탁에 앉은 사람은 모두 허리띠를 두르고, 신을 신은 채, 지팡이를 가지고 급히 음식을 먹는다. 아침이 될 때까지 집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식사 도중 지명된 아들이 의식상 질문을 한다.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는가”라는 물음에 이집트에서 해방되던 이야기와 현재의 로마 지배하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기도형식으로 대답한다. 즉 과월제는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대한 거룩한 축하행사다. 또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해방을 염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과월제를 지키고, 이날에 성찬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마르 14:10-16). 이와 함께 과월제 양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나타내는 전조(前兆)로 되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성취되고, 성체제정(聖體制定)의 만찬과 과월제는 결합(요한 19:36)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진실한 과월제의 고양(羔羊)이 되었다(1고린 5:7).
과성은혜 [한] 過性恩惠 [라] donum praeternaturale [영] preternatural gift
인간의 본성(本性)을 더욱 완전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혜. 원죄(原罪)를 범하기 이전 원조(元祖)가 고통과 죽음을 당하지 않고 탐욕에 지배되지 않은 은혜를 누렸던 상태를 두고 한 말이다. 성 토마스는 이 은혜가 은총의 소산(所産)이라 하엿다. 이 은총을 입은 사람은 고통도 죽음도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과르디니 [원] Guardini, Romano
Guardini, Romano(1885~1968).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신부. 종교철학자. 문학.사회평론가. 이탈리아의 벨로나에서 태어나 1910년 사제가 되었다. 1923~1939년 베를린대학 종교철학. 가톨릭 세계관 교수, 1945~1947년 튀빙겐대학 교수를 역임한 후 뮌헨에 거주하였다. 가톨릭 청년운동(퀴크보른, Quickborn), 전례(典禮) 운동의 지도자로, 문필에 능하여 근대작가에 관해서나 현대 문화평론에 많은 저서를 내놓았다. 주요 저서로 ≪전례의 정신≫(1918),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있어서의 종교적 형상≫(1939), ≪근대의 종말≫(1950), ≪그리스도교적 의식≫[파스칼연구] 등이 있고, 그 밖에 단테, 릴케, 횔덜린 등에 관한 연구평론이 있다.
과들루프 [원] Guadeloupe
서인도제도의 소(小)안틸리즈 제도 북부에 있는 2개의 섬과 주변의 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 1,779㎢, 인구 약 33만명(1982년 추계)이다. 화산성의 고지로 되어 있는 서쪽의 바스테르섬이 주된 섬이고, 거주는 해안에 한정되어 있다. 1635년부터 프랑스인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 영국 등과 영유권을 다투다가 1816년 프랑스령으로 확정되었고, 1946년에 5개의 작은 섬을 합하여 식민지에서 해외주(海外州)로 승격하였다. 1982년 현재 29만 7,000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한] ~外邦宣敎會 [스] Missioners de Guadalupe
1949년 10월 7일 멕시코 주교단에 의해 창설된 선교회. 1966년 11월 26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교황청 포교성성(布敎聖省)의 직속관할 아래 사목자 파견의 지도를 받으면서 한국, 일본, 홍콩, 케냐, 앙골라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1962년 샤베즈(Jose Chavez, 강) 신부와 알바레즈(Jose Alvarez, 안) 신부의 부산 진출과 때를 같이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선교회 총장과 광주(光州) 대교구장 헨리(Henry, 玄海) 대주교와의 합의에 따라 1962년 6월 11일 교황청 포교성성의 인준을 받아 전라남도 순천지역에서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초대 지부장에는 알바레즈 신부가 임명되었고, 1965년에는 서울 성수동 본당을 위임받으면서 서울 대교구에도 진출하였다. 1983년 현재 서울 대교구 내 1개 본당과 광주 대교구 내 10개 본당을 비롯하여 3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 대건(大建)신학대학의 교수신부를 비롯하여 15명의 신부와 3명의 신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