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교우 [한] 實敎友

옛 교우들이 쓰던 말로 신앙 생활 전반에 충실한 교우, 즉 ‘열심한 교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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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부스 [라] Syllabus

유설표(謬說表)라고도 번역되는 실라부스는 교황 비오 9세와 비오 10세가 잘못된 교의(敎義)를 배척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이다. 먼저 <비오 9세의 실라부스>는 1864년 12월 8일 교황청 국무장관이었던 안토넬리(Antonelli) 추기경이 회칙 를 통해 발표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범신론(汎神論), 자연주의(自然主義), 유리주의(唯理主義), 종교적 무관심(宗敎的無關心), 사회주의(社會主義), 공산주의(共産主義), 자유주의(自由主義), 교회와 국가의 관계, 그리스도교적 결혼의 본질, 교황의 속권 등에 관한 그릇된 의견을 통박하는 것으로, 이들에 관한 80개 명제가 배척되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교황은 이 실라부스를 모든 주교에게 보내어 발표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이에 대해 이의(異意)를 제기하면서 발표를 지연하는 등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비오 10세의 실라부스>는 1907년 7월 3일 교황청 검사성성(檢邪聖省)에 의해 발표 되었고, 다음 날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공인되었다. 이 실라부스는 근대주의와 관련된 65개의 명제가 지닌 오류를 지적하면서 배척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근대주의가 지닌 오류는 근대주의가 인간의 지식과 신앙의 진보에 대해 그릇된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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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이허 [원] Schleicher, Arnulf

Schleicher, Arnulf(1906~1952). 독일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회 소속 신부. 한국명은 안세명(安世明). 독일에서 출생하여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회에 입회, 수사(修士)를 거쳐 1930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2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 원산교구에서 전교하는 한편 덕원신학교에서 성서와 교의 신학을 강의하였다. 1935년 한국 주교회의의 위임을 받아 신약성서중 4복음서와 사도신경을 제외한 서간경과 묵시록의 번역에 착수, 1941년에 완수하기도 했다.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 1949년 5월 9일 원산교구장 사우어(Sauer, 辛) 주교, 덕원수도장 원장 로트(Roth, 洪泰華)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Klingseis, 吉) 신부 등과 함께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원산감옥에 갇혔다가 평양감옥으로 이송되어 1952년 6월 28일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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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 [한] 失樂園 [영] Paradise Lost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대서사시(大敍事詩). 영문학 사상 유명한 고전에 속하는 비극 작품의 하나. 광대한 사상성과 주제의 웅장한 처리는 근대 문학에서는 단테의 ≪신곡≫에 비길 수 있다. 작품 안에 내포된 신학은, 그의 사상에 아리아니즘의 흔적이 있으며, 유기적인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주제는 그리스도교의 교의(敎義)의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서, 인간의 타락과 참회, 그리고 그 구원을 다루고 있다. 1658년부터 1665년 사이에 쓰여져서 1667년에 출판되었는데, 뒤에 연작(連作) ≪되찾은 낙원≫(Paradise Regained)과 ≪삼손 아고니스테스≫(Samson Agonistes) 등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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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테르 [라] Silvester

Silvester 1세(?~335). 교황(재위 : 314-335). 성인. 교회사상 매우 중요한 시기에 로마교구에 있었으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5세기 말경 로마에서 성립된 전설 ≪실베스테르 행전≫(Actus Silvestri)에 의하면, 그리스도 교도를 박해한 벌로 나병(癩病)에 걸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꿈속에 나타난 베드로와 바울로에게서 실베스테르를 찾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그에게 라테라노에서 세례를 받고 나병이 치유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황제는 교회나 로마의 주교들을 위해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공헌을 찬양하고 있는데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가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땅에 로마의 대성당으로서 라테라노 대성당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그는 또한 교회에 대한 광범한 권리를 준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문서>의 수령자이다. 니체아 공의회(325)에 그 자신은 출석치 않았으나 두 사람의 교황사절을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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