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한] 實用主義 [영] pragmatism

행동을 사고보다 중시하여, 사상이나 관념의 의미와 본질을 행동의 귀결과 성과에 따른 실용성에 의해 평가하는 철학사상. ‘행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pragma에서 유래된 말이며, 영국의 경험론적 전통을 이어 받고, 근대과학의 방법론에 자극받아 19세기 미국에서 풍미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급속한 미국의 자본주의발전을 그 배경으로 하여 퍼스(Chales peirce)가 개척하였다. 그는 의미의 이론을 펼친 ≪How to make our ideas clear?≫에서 처음 프래그머티즘이란 말을 사용했고, 제임스(William James)가 진리의 이론으로 소개함으로써 철학의 유파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 완성은 듀이(John Dewey)의 기구주의(器具主義, instrumentalism)에서 비로소 이뤄진다.

생활에 유용하고, 생활을 합리화시키고, 생활의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이론은 무엇이든 그 상대적 진리성을 인정하며 생활과 관계없는 이론은 체계화되고 심원하다고 할지라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실용주의의 특징은 ① 과학은 형이상학에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② 철학은 세계관보다는 방법론과 관계있는 것이다. ③ 프래그머티즘의 방법론은 흄과 밀(J.S. Mill)의 경험론의 전통을 진화론에다 적용시킨 것이다. ④ 모든 관념과 신념은 행동을 위한 규칙으로 보며, 그 관념과 신념의 유효성은 그에 따른 행동이 유효한가에 의해 평가된다.

그러면 행동의 유효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여러 분파로 나뉜다. 제임스 실러(F.C.S. Schiller)에 있어서는 종교와 모순을 초래하는 세계관이 퇴조하고, 종교적 관심을 포함한 개인의 정서적 만족이 유효성을 지닌 것이라고 주장된다. 퍼스와 듀이는 과학과 기술에서 공적 검증의 성과가 중시되었다. 최근의 주된 발전은 브리지먼(P.W. Bridgman)의 조작주의 과학론(操作主義 科學論), 모리스(C.W. Morris)의 행동론적 기호론(行動論的 記號論), 화이트의 분석철학과 세계관의 통합시도 등이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가톨릭 교회의 근대주의 운동을 자극시켜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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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 [한] 實在論 [라] Realismus [영] realism [독] Realismus [프] realisme

의식이나 인식 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實體)를 인정하는 입장을 말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실제(realitas)를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며, 이런 실재를 용인 또는 고려에 넣는 사고 경향을 지칭한다. 이론적인 실재론은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일반적 또는 특수한 본체론적(本體論的) 실재론으로서 나타나거나 또는 인식론(認識論)에 나타난다. 실재론이란 간단히 요약해서 ① 인간의 지식과 소망과는 관계없이, 신과 우주라는 객관적인 존재와의 갖가지 관계, ② 신과 우주의 인식은 가능하다, ③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또는 최종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이 객관적인 실재를 인정하며 이에 입각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등을 용인하는 모든 형태의 철학을 가리킨다.

1. 본체론적 실재론 : 이데아를 참된 실재라고 생각한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 받아서, 보편(普遍, universalia)은 개개의(대상) 물에 앞서서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중세의 스콜라학의 입장이다. 이런 경향의 대표자는 에리우제나(J.S. Eriugena, 810?~877?), 안셀모(Anselmus, 1033~1109) 등이다. 보편논쟁에 있어서 보편은 이름뿐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唯名論)에 대립하는 용어로서, 이 실재론은 ‘실념론’(實念論)이라고도 부른다. 인간의 일반적인 생활태도나 경험과학에 근대까지 철학상 우세하였던 이 입장은 걸맞는 것이었고, 당시 그리스도교 교의의 기초 확립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본체론적 실재론에 대한 반대 입장은 본체론적 ‘관념론’(觀念論)이며, 의식에 있어서의 존재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유아론(唯我論, solipsismus)이 되기 일쑤다.

2. 인식론적 실재론 : 의식을 초월한 독립적인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인데, 인식은 대상과의 일치이며, 이러한 실재를 받아들이려는 인식론상의 입장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인식론적인 의미에서의 관념론이며, 주관적 관념론에 따르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 의식내용으로서 있다는 의식내재설인데 반하여, 고대 이래의 객관적 관념론은 대개가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이다. ‘유물론'(唯物論)이 실재론이기는 하나, 실재론이 반드시 유물론은 아니다. 실재론의 입장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① 소박한 실재론은 일상 우리가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대로의 세상이 있으며, 의식은 그것을 즉 실재를 모사(模寫)함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② 지각적인 실재론 : 빛깔이나 향기 같은 감각적인 성질은 주관적일지라도 과학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는 수량적인 성질은 객관적이라는 입장이며, 데카르트, 특히 로크의 경우가 그러하였고, 이는 반성적인 자연적 실재론에 속한다. ③ 철학적 실재론 : 칸트는 경험적인 인식의 모든 대상을 ‘현상’으로 보고, 그 배후에 인식의 가능성을 초월한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를 상정(想定)하였다. 감관을 촉발하는 물자체의 존재를 일단 인정한 점에서 실재론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존재방식의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자신의 입장은 초월론적 즉 선험적(先驗的)으로는 관념론이며, 경험적으로는 실재론이라고 말하였다. ④ 신(新) 실재론 : 헤겔을 정점으로 하는 유럽의 다채로운 실재론 이외에, 마음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인식론을 해석하는 영미의 현대 실재론 및 신 실재론(new realism)이 대두하여, 무어(G.E. Moore), 알렉산더(S. Alexander), 화이트헤드(A.N. Whitehead), 러셀(B. Russell), 페리(R.B. Perry), 몬타규(W.P. Montague) 등의 제창이 잇달았다. 이상의 비판적인 실재론들의 입장은 실재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경험의 주관적인 혼입을 먼저 비판적으로 격리시켜야만 옳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실재론 일반이 강화되었음과 동시에, 관념론에 의하여 저항을 받았다. ⑤ 경험적 실재론 : 프래그머티즘, 특히 케임브리지 플라톤학파의 영향을 받은 논리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의 맥락에 서있는 영국 일상언어학파의 경향 등은 경험적 실재론으로서, 경험의 배후의, 원리적으로 비경험적인 실재와 경험과의 관계를 논한다는 전통적인 경향의 근본적인 난점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H. Ostler, Die Realitat der Aussenwelt, 1912 / M. Frischeisenkohler, Das Realitatsproblem, 1912 / A. Messer, Der kritische Realismus, 1923 / E.H. Gilson, Le Realisme methodique, Paris 1936 / F.D. Wilhelmsen, Man’s Knowledge of Reality, Englewood Cliff, N.J. 1956 / J. Maritain, Distinguish to Unite: The Degrees of Knowledge, tr. G.B. Phelan, New York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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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한] 實存主義 [영] existentialism [독] Existenzialismus [프] existentialisme

1. 용어의 유래 : 세계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에 사르트르(J.P. Sartre, 1905~ )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라는 소책자를 내놓았다. 그리고 ‘실존철학’을 표방한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가 ≪Existenzphilosophie≫를 낸 것이 1948년이다. 그런데 실존(Existenz)이란 말을 현대(철학)적인 의미로 주체적인 면에서 강조한 것은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15)이다. 그러나 실존의 일반적인 의미는 첫째, 보통으로 우리의 인식이나 의식(意識)으로부터 독립하여 사물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말함이다. 어떤 의미의 실존은 허무(虛無)와 대립하는 것이다. 둘째, 형이상학적으로는 사물의 본질이나 본성(本性)과 구별하여 그 사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표시하기 위해 쓰였다. 이런 의미의 실존은 본질과 대립된 말이다. 셋째, 실존철학의 의미로는 추상(抽象)이나 이론에 맞서서 삶 자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현실적 인간존재를 말함이다.

실존으로 번역된 existence, Existenz란 말은 본래 라틴어 existentia에서 온 것인데, 이 말은 existere란 동사에 유래한다. 그것은 ‘무엇인가로부터’ ex-와 ‘존립한다’ -sistere란 의미로 ‘존재’라기보다도 오히려 ‘생기(生起)한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것이 ‘생기한다’는 것에서 ‘현존(現存)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스콜라철학에 있어서, 사물의 본성을 표시하는 본질과 구별하여, 사물이 현실에(객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활동을 표시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이처럼 있는 유(有)의 본질과 실존의 구별을 처음으로 명확히 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인데, 기실 토마스 자신은 existere(existentia)란 말을 쓰지 않고 esse 즉 ‘있다’는 동사의 부정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후기의 스콜라학도들이 esse란 용어 대신에 existentia라는 술어(術語)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2. 실존의 성격 : 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과 실증주의(實證主義)에 맞서는 전후의 새로운 사조로서 일어난 것으로,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을 중심 개념으로 하는 철학적 사상을 널리 실존주의 또는 실존철학이라고 부른다.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G. Marcel, 1889~ ), 니체 (F.W. Nietzsche, 1844-1900),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 샤르트르 등의 철학사상이 이에 속한다. 이 중에 니체는 초인주의(超人主義)를 내세운 생철학자(生哲學者)로 규정되기도 하고, 하이데거는 자기의 입장을 ‘기초적 존재론’이라고 천명하였지만, 범논리주의(汎論理主義)적 헤겔 철학과 대결함으로써 개체적(個體的)인 실존개념에 기초를 두고 뿌리 깊게 근원적으로 파고든 사람은 키에르케고르이다. 그에 의하면 진리는 객관적 합리적인 것이 아니고, 개별적 주체적인 것이다. 주체성이 진리이고 주체성이 현실인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 체계 속에 해소되지 않는 구체적인 주체이고,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자택일(二者擇一)의 선택을 해야만 되는 윤리적 존재이다. 이 같은 존재는 고독한 단독자(單獨者)로서 불안과 죄책의 느낌을 지니고 있다. 자기 자신에 관한 관심을 갖는 존재로서의 이 같은 실존의 성격은 실존주의 사상일반에 공통된 것이나,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념론에 대립하여 구체적 존재를 중시한다. 실존은 현실적 인간존재이기에 일반적인 것 속에 해소되지 않는 개별적인 ‘나’를 뜻한다. 둘째, 그러나 실존적 자각은 동시에 실증주의와 맞서서 객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내면성(內面性)으로서 성립한다. 셋째, 내면적 현실존재로서 실존은 주체적 윤리적이고, 이 같은 존재로서 그것은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진실된 존재이다. 넷째, 진실된 존재로서의 실존은 자연적 생활이나 개념적 체계 속에 안주하지 못하고 불안과 고민을 지니는 동시에,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초월(超越)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 초월의 방향에 따라서 두 갈래로 유별된다. 하나는 키에르케고르 · 야스퍼스 · 마르셀 등의 입장으로 이를 유신론적 실존주의, 또 하나는 니체 · 하이데거 · 사르트르 등의 입장으로 이를 무신론적 실존주의라고 할 수 있다.

3. 유신론적인 것 : 키에르케고르에 있어서 실존은 미적(美的), 윤리적, 종교적 3단계를 거치지만, 참된 실존은 신 앞에서의 실존이다. “사람은 어떻게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밝히는 것이 그의 생애의 과제였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언제나 신 앞에 직면하는 사람,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신이 시간적인 모습을 취하여 이 세상에 나타난 이로서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이고, 이 계시의 순간은 인간이성의 이해를 넘어선 역설(逆說)이기에 정열적인 신앙의 비약에 의하지 않고는 포착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이 같은 신앙에 의해서 신 앞에 선 사람이고, 거기에 인간의 참된 자기 존재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본래적으로 신과 관련된 자기가 신과의 관련을 떠나 있는 것은 자기가 참된 자기를 소외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이것이 바로 죄(罪)인 것이다. 죄 속에 있는 인간은 결국 절망 속에 사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참된 자기가 되고자 하는 한, 항상 영원자를 구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노력의 과정, 즉 자기가 본래의 자기로 되려고 하는 생성과정이 실존하는 것이고, 이것은 이미 한갓된 이성(理性)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특수한 삶의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방해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 즉 문학적인 심미주의(審美主義)와 헤겔의 철학적 사변(思辨)이었다. 거기서 이 양자를 비판하여 미적인 삶의 절망적인 무상함과 이성적 사변의 추상성을 지적하고 분석하였다. 이런 견지에서 ‘단독자’, ‘주체성’, ‘실존적 사유’라는 그의 근본개념이 헤겔적인 ‘보편성’, ‘객관성’, ‘추상적 사유’라는 개념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확립된 것이다. 무릇 신앙은 개인문제이기 때문에 신 앞에 서는 자는 단독자가 아닐 수 없고, 종교적 진리는 무관심할 수 있는 객관적 진리와는 달라서 사람이 그 때문에 살거나 죽기를 원하는 그런 주체적 진리가 아니면 안되는 까닭에 사유도 참된 자기가 되기 위한 사유로서 실존적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키에르케고르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그 뒤에 나온 실존철학에의 길을 터놓는 동시에 바르트(K. Barth, 1885~1968)를 위한 변증법 신학의 기초를 구축한 것이다.

야스퍼스에 있어서도 키에르케고르의 경우와 같이 주체적인 실존이 철학의 중심을 이룬다. 과학은 대상을 밖으로부터 객관적으로 파악하지만, 철학은 대상적인 것을 넘어서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려고 함에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고 잇는 실존의 자각이다. 실존은 자기 자신에 관계함으로써 기성관념을 타파하고, 자기의 근원으로 자기 자신을 넘어섬으로써 전체적 진리, 초월자(超越者), 일자(一者), 포괄자(包括者)에 도달한다. 자기 자신에 관계함으로써 대상성을 넘어서는 실존적 사유는 동시에 초월자와 관계하게 되는 사유이지만,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이율배반(二律背反) 즉 한계상황에 부딪쳐 좌절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실존의 내적 행위에 있어서 비로소 초월자는 다만 한갓 상징으로서나 또는 암호(暗號)로서 파악될 뿐이다. 이것은 그의 말대로 ‘철학적 신앙’의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마르셀은 프랑스 실존주의의 선구이며 가톨릭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여 가톨릭에 입교한 것은 1929년이다. 그의 철학은 체계적 형식을 취하지 않고 실존적 체험의 자유로운 기술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주체적 실존과 객체적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차원을 갖고 있으나, 양차원의 교차점이 바로 ‘나의 신체’인 것이다. 이 신체는 곧 ‘나’인 동시에 ‘그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육화(肉化, incarnatio)의 사실에 있어서 그 신비를 체험하고 문제에 봉착한다. 문제는 객관적 시야에서 보아지는 데 대해서 신비는 “나가 참여하고 있는 무엇인가?”이고, 이 같은 신비를 현상학적(現象學的) 반성에 의해서 기술하는 것이 형이상학의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신비에 있어서 인간의 태도는 정신적 교제의 기대나 능동적인 대화 즉 기도이고, 객체화되지 않는 ‘너’(toi)에게로 향한다. 이와 같은 ‘너가’ 현현(顯現)하는 영역, 즉 2인칭의 판단에 응답하는 실재가 인간관계의 중심에 있어, 거기에 있어서만 성실(fidelite)을 통하여 자타의 자유가 실현된다. 그리고 이 성실은 더 근본적으로는 희망(esperance)으로 지지되어 있기에 인간은 이 소망에 의해서만 죽음의 승리가 궁극적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인간의 자연적 경향은 언제나 ‘너’를 ‘그’(lui)로 ‘우리들’(nous)을 ‘사람’(on)으로 대신하여 다루려고 하기 때문에 타인도 또한 객체화를 면치 못한다. 이에 유일한 예외는 신(神)이고, 이 신만은 합리적 철학이 ‘그것’(cela)으로서 다루면 언제나 한갓된 비실재적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신만은 객체화되지 않는 타자 즉 절대적인 당신인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절대적인 사랑과 흠숭 속에서만 이 같은 신을 만나게 되고 진정한 그 존재를 분유(分有)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셀에 의하면, 나의 모든 성실을 다하여 절대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상대자는 신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성실에 의하여 신이 나에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요, 그만큼 나도 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성실로써 영원성을 알게 된 자만이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같은 소망을 다함께 가지고 신에게 공동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지반은 믿음 즉 신앙이다. 그러니 무릇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설명이나 증명하려는 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신은 객체화될 대상이 아니므로 참된 신은 어떠한 말로써나 3인칭으로는 표시할 수가 없다. 신은 바로 인격적인 신이기에 언제나 ‘당신’이다. 따라서 신을 3인칭으로써 다루려고 할 때에 신은 벌써 자취를 감추고 만다. 신은 거기에 있지 않다. 나를 참으로 신에게로 인도하는 것은 믿음 즉 신앙이지 과학이나 변신론(辯神論)이 아니다. 믿음이란 증명에 앞서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셀에 있어서는 영원자인 존재가 마치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존재의 소명(召命)에 응답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성실이요, 희망이요, 사랑이다. 성실 · 희망 · 사랑은 존재의 신비에 참여하는 열린 마음이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여는 나의 참여의 자유가 있고 창조적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신과 만나는 것, 존재에 참여하는 것, 신에 대한 성실이야말로 나 자신을 참된 존재로 실현케 하는 것이다.

4. 무신론적인 것 : 니체가 한 문명비판, 즉 그리스도교에 유래된 유럽문명의 정신적 퇴폐(頹廢)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한 인간의 기계화, 노예화에 대한 비판은 억압된 개인이나 삶의 해방을 위한 커다란 역사적 역할을 하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의 영향을 입은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 의해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키에르케고르와의 대조자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거론되는 ‘사신론’(死神論)은 그의 말인, “신은 죽었다”(Gott ist tot)에 유래하는 것이라 하겠다. 니체가 내세운 ‘임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말하자면 생성에 대해서 존재의 각인(刻印)을 찍는 것이지만, 주체적으로는 생성에의 자기상실 속에서 자기를 결단 속에 회복하는 것이 된다. 자기상실을 통해서 자기를 존재로 돌아오게 하는 것, 자기 밖에서 자기로 되돌아오는 것 즉 ‘영원한 되돌아옴’[永劫回歸, ewige Wiederkunft]인 것이다. 이런 ‘되돌아옴’은 외적 세계의 대상적 사건은 아니다. 주체의 결단적인 ‘자기회복’의 행동이다. 이 점에서 키에르케고르의 ‘반복’(反復, Wiederholung)과 통하는 것이 있다고 보겠다. 그리고 자기를 상실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닐 수 없다는 의식이 곧 ‘운명애'(運命愛, amor fati)이다. 이에 운명이란 자기 밖에 있는 것으로서 자기를 괴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상실에 있어서 자기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니체의 주의주의(主意主義)적인 ‘힘에의 의지’란 ‘영원한 되돌아옴’과 ‘운명애’의 결단을 통하여 자기의 실존에로 되돌아오는 의지로서 그의 생철학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자기의 입장을 해석학적 현상학을 방법으로 하는 기초적 존재론이라고 함으로써 실존철학으로부터 자기를 구별한다. 그의 의도하는 바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이게 하는 존재 자체의 해명이지만, 존재 자체에 도달하는 통로로서 인간 존재 즉 실존이 중시되는 한에 의미의 실존주의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는 우리가 현재 여기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현존재’(現存在, Dasein)이고, 이 현존재의 존재방식이 실존인 것이다. 우리의 현존재는 이 세상 속에 있는 존재 즉 ‘세계내 존재’(世界內 存在, In-der-Welt-Sein)로서 우선 배려(配慮)나 염려하는 관심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람은 이 관심의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한갓된 ‘사람’(das Man)으로서 이 세상에 전락하고 있는데, 이런 전락 속에서 본래의 자기를 되찾을 때에 사람은 무(無, Nichts)에 직면해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불안해진다. 이 불안한 존재는 세상 속에 던져지며 자기를 미래로 향하여 내던지고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일 때 자기를 미래로 향한다. 우리의 현존재는 과거를 지니면서 미래로 향함으로써 현재를 성립시키는 시간성(時間性, Zeitlichkeit)으로 환원됨으로써 그 구조가 분명해진다. 한 마디로 현존재는 유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빛’을 찾는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것이나 매우 사회적이란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에 의하면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니, 실존은 개념적 본질 속에 해소되지 않고, 합리적 파악 이전의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무(無) 속에서 “스스로를 만드는 무엇”이라고 한다. 이 말은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는 주체적 존재로서 ‘자유’인 것을 뜻한다. 인간을 무엇이라고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상 인간을 보증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란 휴머니즘이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유 바탕에서 자기를 선택하는 것은 동시에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기에 세계전체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티’를 지반으로 한 단체로서의 인간의 공통구조를 해명하고, 그 바탕을 자유로서 전제함으로써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에의 참여를 주장한다. (金奎榮)

[참고문헌] Soren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 zu d. philosophischen Brocken, 1844(表在明 역), 哲學的 斷片, 平和出版社, 서울 1974) / Karl Jaspers, Existenzphilosophie, 1937 / Gabriel Marcel, Journal metaphysique, 1929; Etre et avoir, 1935; Homo viator, 1945; Exitentialisme chretien, 1947; le mystere de l’etre, 1951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Alsosprach Zarathustra, 1883 /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1927 / Jean-Paul Sartre, L’etre et le neant, 1943 / 曺街京, 實存哲學, 博英社 서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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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신학 [한] 實證神學 [라] theologia positiva [영] positive theology

교회의 가르침이 지니는 진리를 성서, 전승, 신앙의 유비(類比)등의 근거를 통하여 규명하고 가톨릭 교리 전체와 조화있게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신학의 일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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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철학 [한] 實證哲學 [영] posititivism [관련] 논리실증주의

경험과 실천이 없는 생각 · 추리 · 추측 · 공상을 배척하여 경험적 사실로 주어지고 관찰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철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실증철학이라 부른다. ① 최초로 실증철학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1830년경 콩트(Auguste Comte)는 그의 ≪실증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에서 ‘3단계 법칙’을 주장하여 지식의 진보는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로, 형이상학적 단계에서 실증적 단계로 나아간다고 하였다. 여기서 지식의 최고 단계는 실증과학이며, 실증과학은 현상법칙의 기술(記述)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실재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콩트의 실증철학은 프랑스대혁명 후 부르즈와적 질서를 재편성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② 보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초월적 형이상학적 사변(思辨)을 배척하고 확실한 인식방법을 실증과학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하여 인식을 경험적 사실에 한정시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선천적(a priori) 인식을 인정하지 않으며, 경험의 대상으로서 객관적 실재는 문제삼지 않는 현상론의 입장을 취한다. 밀(J.S. Mill), 리트레(E. Littre), 스펜서(H. Spencer), 마하(E. Mach) 등이 대표적이다. ③ 빈학파는 감각에 의해 검증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것의 기준으로 하여 형이상학적 진술(陳述)은 무의미하고 수학적 경험, 과학적 진술만이 의미가 있다는 논리실증주의 입장을 취한다. 수학적 논리학을 가지고 일반적 진술을 검증 가능한 개별적 진술로 분석 · 확인하는 조작이 그 특징이다. ⇒ 논리실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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