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성서를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하느님의 영감은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성서 작가가 영감을 받았는가의 사실 여부는 성스러운 계시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가톨릭에서 경전의 경전성(canonicity)의 판단은 결함 없는 교회의 일치된 견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결정은 교회사에서 약간 늦게 이루어졌다(트리엔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성서의 어떤 책에 대해서는 그 경전의 경전성 여부에 대하여 의심하기도 하였다.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인정되는 책을 흔히 제1경전이라 하고, 한때 경전으로서의 자격에 대하여 의심을 받은 책을 제2경전(Deuterocanonicus)이라고 한다. 가톨릭에 있어서는 제1경전이나 제2경전이나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신약성서에 대하여는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이 정전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구약성서에 대하여는 약간 입장을 달리한다. 즉,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유태교 경전만을 따르며, 따라서 히브리어 성서에 있는 구약성서 책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그리스어번역 성서(70인역)에 들어 있는 일곱 권의 책을 추가하여 제2경전이라고 한다. 일곱 권의 제2경전이란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시라크, 바룩서, 마카베오서 상·하 등이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들 제2경전을 외경이라고 한다. (⇒) 제이정전, 외경
경애학교 [한] 敬愛學校 [관련] 장연본당
1907년 황해도 장연(長淵)의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세운 초등교육기관으로 1925년 보통학교로 승격되었다. 1928년 황해도를 감목대리구로 승격시키려는 구상이 마련되면서, 그 일을 추진할 임무를 띤 장연본당 주임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황해도 감목대리구의 감목대리로 임명되면서 경애학교는 보통학교 교육뿐 아니라 소신학교의 예비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황해도 각지의 보통학교에서 수학하던 사제지망생들이 경애학교로 편입하여 교육을 받았다. 1945년 이후의 사정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 장연본당
경신성성 [한] 敬神聖省 [라] Sacra Congregatio pro Cultu Divino [관련] 성사경신성성
현재의 성사경신성성(聖事敬神聖省)의 전신. 1975년 성사경신성성이 신설되었는데, 그 대신 1908년에 설립된 성사성성과 1969년에 설립된 경신성성을 폐지하였다. (⇒) 성사경신성성
경신박해 [한] 庚申迫害
1859년 말부터 1860년 8월(음)에 걸쳐 일어난 박해. 천주교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감을 품고 있던 좌포도대장 임태영(任泰瑛)과 우포도대장 신명순(申命淳)에 의해 일어났다. 천주교의 교세가 날로 확산되어가자 임태영과 신명순은 조정의 허락도 없이 서울과 지방의 교우촌을 급습, 30여명의 지도급 교우들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시켰다. 그러나 포졸들이 교우들을 체포하면서 재산을 약탈하고 가옥에 방화한 것이 문제가 되자 조정에서는 당시 세도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집안의 호조판서 김병기(金炳冀), 병조판서 김병운(金炳雲) 등이 천주교인 체포를 반대, 결국 두 포도대장은 파면되고 천주교인 체포도 금지되었으며 이어 8월 7일(음)에는 철종(哲宗)의 명으로 투옥된 교우들이 모두 석방됨으로써 9개월간의 박해는 종식되었다. 박해기간 중 최양업(崔良業) 신부도 경상도의 죽림이란 곳에서 체포되어 얼마간 감금생활을 당하다가 석방되었다.
경신덕 [한] 敬神德 [라] virtus religionis [영] virtue of religion
하느님과 인간과의 기본관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으로서 예배와 상통한다. 즉 하느님을 창조주이시며 구원자로 받들고 인간은 피조물이며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태도이다. 이를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볼 수 있다.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마땅한 흠숭과 감사를 드리고 부족하고 잘못된 생활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며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천주교회의 성사와 기도는 바로 이러한 경신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