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교회사자료실
쟈끄 오노레 샤스땅 신부
쟈끄 오노레 샤스땅 신부 1803년 10월 7일에 프랑스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디뉴 근처의 ‘마르꾸’라는 작은 농가에서 앙드레 세바스띠앵 샤스땅과 마리안느 루공의 아들로 태어난 쟈끄는 어려서부터 신양생활에 충실하였다. 어린 샤스땅은 마르꾸의 본당 신부로 있다가 중국 선교사로 떠난 오드마르 주교의 … 계속 읽기
삐에르 필베르 모방 신부
삐에르 필베르 모방 신부 1803년 9월 20일에 프랑스의 봣시라는 농촌에서 샤를르 모방과 까따린느 뒤슈맹의 아들로 태어난 삐에르는 어려서부터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 그는 비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이외교구의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1829년 5월 13일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르 대제르 본당과 샤뒤부 … 계속 읽기
유방제(빠치피꼬) 신부
유방제(빠치피꼬) 신부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으로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애르 주교가 임명되었을 때에, 이딸리아의 나폴리에 있는 성가정(聖家庭) 신학교 출신의 중국인 유 방제(劉方濟) 신부가 조선 선교를 자원하였다. 이곳 신학교는 포교성성이 중국 선교사의 양성을 위해 설립한 교육 기관인데, 유 신부는 이곳에서 약 … 계속 읽기
조선 교회의 교계 체제 확립
조선 교회의 교계 체제 확립 랑글로아 신학교 교장 신부가 선교 지방의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1829년부터 파리 본부에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회원들은 원칙적으로 조선 선교 참여에 대해 긍정적 대답을 보냈다. 그러나 선교사의 선택과 조선 입국 방법, 그리고 … 계속 읽기
조선 교회의 성직자 청원 운동
조선 교회의 성직자 청원 운동 신유대박해 때 중국인 주 문모 신부가 순교한 이후로 조선 교회는 33년 동안의 “목자 없는 시대”(1801-1834)에 들어섰다. 1802년에 이르러 천주교 박해의 분위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신 태보(베드로), 권 기인(요한), 이 여진(요한) 등이 사방으로 흩어진 신자들을 … 계속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