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타종교자료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3. 이 나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먼저 피와 땅과 눈물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탄이 인간을 주관하게 됨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서러워하시며, 패역무도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악세계를 해매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하늘을 반역하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수 사탄에게 희생시켰으며, 나중에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내주시는 설움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하루같이 서러워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사탄세계와 싸우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러워하시는 부모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어 충효의 길을 가는 자식이 어떻게 그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인가 ? 그러므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민족은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으로 섬으로써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1 이스라엘도 고난의 길을 걸었고, 제2 이스라엘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 나왔으니, 제3 이스라엘된 한민족도 응당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한민족이 걸어 나온 비참한 역사노정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마땅한 길이었던 것으로, 실상 그 고난의 길이 결과적으로 한민족을 얼마나 큰 행복으로 인도한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선한 민족이어야 한다. 한국민족은 단일 혈통의 민족으로서 4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졌고, 고구려 신라시대 등 막강한 국세를 자랑하던 때에도 침공해 온 외세를 밀어내는 데 그쳤을 뿐,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었다. 사탄의 제1근성이 침략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한민족은 하늘편인 것이 분명하다. 하늘의 작전은 언제나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승리를 거두어 나온다. 그러므로 역사노정에서 수 많은 선지자들과 선인들이 희생을 당하였고,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나, 결과적으로 승리는 하늘 것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도 공격을 한 것은 사탄편이었으나, 매양 승리는 하늘편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한민족도 역사 이래 수 많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민족이 하늘편에 서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한민족은 선천적으로 종교적인 천품을 가지고 잇다. 그리고 그 종교적인 성향은 언제나 현실을 떠난 곳에서 현실 이상의 것을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민도가 대단히 낮던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천사상이 강하여, 부질없이 자연을 신성시함으로써 거기에서 현실적인 행복을 구하는 따위의 종교는 숭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민족은 자고로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잇는 것이다. 이 민족이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거족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의 힘찬 저류에서 나온 성향인 것이다. 4. 이 나라에는 예언자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민족에게 내린 뚜렷한 예언자의 증거로서, 첫째 이 민족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1이스라엘 선민이 예언자들의 증언을 따라(말라기 4장 2~5절, 이사야 60장 1~22절), 장차 메시아가 왕으로 오셔서 왕국을 세우고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을 믿고 있었으며, 제2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의 재림을 소망으로 하고 어려운 신앙의 길을 걸어나온 것과 같이, 제3이스라엘 선민된 한민족도 이조 500년 이래, 이 땅에 의의 왕이 나타나서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세계만방의 조공을 받게 된다고 하는 예언을 믿는 가운데서 그 때를 바라보며 고난의 역사노정을 걸어 온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정감록’ 신앙에 의한 한민족의 메시아사상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왕이 나온다는 예언이기 때문에,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막아 왔고, 더구나 일제시대의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말살하기 위하여 그 책들을 불태우는 등의 탄압을 가해 왔으며, 또 기독교가 들어온 후 이 사상은 미신으로 몰려 왔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심령 속에 깊이 박힌 이 메시아사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면하게 흘러 내려온 것이다. 이제 알고보니 한민족이 고대해 온 의의 왕 정도령(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라는 뜻)은, 바로 한국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한국 안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장차 메시아가 한국으로 재림하실 것을 정감록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책의 많은 예언이 성서의 예언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수 많은 학자들이 확인 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이 민족이 믿고 있는 각 종교의 도주들이 모두 한국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계시를 그 신도들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전편 제3장에서 자세히 말한 바이지만, 문화권 발전사로 보아도 모든 종교는, 하나의 기독교로 통일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므로, 끝날의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수 많은 종교의 목적을 완성해 주는 최종적인 종교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심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그 모든 종교의 교조들이 지상에서 이루려 하였던 도의 목적을 일괄하여 완성하기게 되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사명으로 보아 그 모든 교조들의 재림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전편 제5장 제2절 Ⅳ). 따라서 여러 종교에 있어서 계시에 의하여 한국에 재림할 것으로 믿겨지고 있는 그들의 교조는, 각각 다른 분들이 아니라 사실은 장차 오실 재림주님 한 분일 분인 것이다. 즉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유교에서는 진인이, 천도교에서는 최수운이, 그리고 정감록에서는 정도령이 나타나는 것으로 교단마다 각각 다른 계시를 받아 왔던 것이다. 세째는 예수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영통인들의 신령역사가, 비온 뒤의 죽순과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을 물 붓듯 하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오늘의 한민족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 많은 수도자들이 잡영계로부터 낙원급 영계에 이르기까지의 여려 층의 영인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각기 주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명확한 계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잠들고 있는 것은 현 기독교계의 지도층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 당시에, 전성술자들과 목자들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강림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었던 반면에, 누구보다도 먼저 이것을 알았어야 할 제사장들과 교법사들은,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장 25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 유대교계의 지도층의 영적인 무지를 개탄하시는 동시에, 무식하나마 어린이들 같이 순진한 신도들에게, 하늘의 일을 교시하여 은혜를 내려주신 것을 감사하는 말씀이었다. 그 때와 동시성의 시대인 오늘의 한국 교계에 있어서도, 그와 똑같은 사실들이 더 고차적인 것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님은 어린이 같이 순진한 평신도층을 통하여, 끝날에 관한 하늘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계시로써 알려주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내용을 발표하면 교직자들에게 이단으로 몰려 추방을 당하게 되므로 그에 관하여는 일체 발표하지 않고 비밀에 붙이고 잇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계의 실정이다. 마치 제사장과 교법사들이 그러했듯이, 오늘의 많은 기독교 지다자들은 성서의 문자를 풀이하는 지식을 자랑하고, 많은 신도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으로 낙을 삼으며 그 직권행사에 만족하고 있을 뿐, 끝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모르고 있으니 실로 이보다 더 통탄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이가 – 한국
Ⅲ.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이제까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에 재림하시지 않고, 그들의 유업을 상속하여 열매 맺는 나라에 재림하실 것을, 우리는 알았고, 또 그 열매 맺는 나라는 동방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예로부터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아마데라스오오미가미를 숭배해 온 나라로서, 더구나 전체주의 국가로서 재림기를 당하였었고, 또 아래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던 것이다(후편 제5장 제4절 Ⅲ.3 참조) 그리고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연유를, 원리에 입각하여 다각도로 논증해 보기로 하겠다. 메시아가 강림하시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1.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한국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원리적으로 보아 천주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이 이 기대를 세워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신다면,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에서 받아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제1 이스라엘이었고, 제1 이스라엘선민에게 이단자로 몰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를 계승해 나온 기독교 신도들이 제2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7장 25절 이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으로 예언하신 것과 같이, 그는 제2 이스라엘 선민된 온 기독교 신도들에게도 이단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에 의하여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버리셨듯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기독교 신도들도 버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7장 23절). 그렇게 되면 재림주님을 받들고 하나님의 제3차 섭리를 완수해야 할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1 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애급에서 400년간을 고역하였다. 그와 같이 제2 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따라서 한국민족도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편의 어떠한 국가에게서 40수에 해당되는 햇수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되어 박해를 당한 4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민족은 어떤 경위로써 일본제국 밑에서 40년간의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가 ?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을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었다.즉 1905년에 일본의 이또오 히로부미와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그통감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일본은 사실상 한국으로부터 정치, 외교, 경제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합병한 후로는, 한국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하였고, 심지어는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 한국독립운동 때에는, 전국의 곳곳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하였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났던 일본 관동대진재 때에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말들을 꾸며내어 도요꼬에 살고 있던 죄없는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부지기수였다. 한편 수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비옥한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시련을 쌓으며 조국 광복에 진력하였었다. 일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어린 아기에 이르기까지의 전 동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 몰살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학정을 그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독립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거니와, 더구나 제정 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었다. 이뿐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천황이 제2차 대전에서의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국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박해를 당한 것이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2.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으므로, 사탄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앞세우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여 나오셨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틀림없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시려고 재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가 재림하실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니,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즉 한국의 삼팔선은 이러한 복귀섭리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치선에 그 판가리의 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제물이다. 그런데 한국민족은 천주 복귀를 위하여 이 일선에 놓여진 민족적인 제물이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야 했듯이 이 민족적인 제물도 쪼개야 하므로, 이것을 삼팔선으로 쪼개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것이다. 따라서 이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에 유엔의 여러회원 국가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이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 섭리의 뜻에 맞추어 조국 광복의 역사에 가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간시조가 타락될 때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한 점에서 서로 갈렸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또한 한 점에서 갈라져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부디쳐 내려왔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의 것으로 각각 분리됨으로써,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결실되었고, 이것들이 다시 한국을 중심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사상,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한국에서 마찰되고 충돌되어 큰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것이 세계에로 파급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영계에서 벌어진 이러한 현상이, 복귀섭리의 주체인 한국을 중심하고 실체적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러한 혼란이 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올 것을 보여주는 전조임을 알아야 한다. 일찌기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셨다(누가복음 17장 37절). 하나님의 일선이요 또한 사탄의 일선인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맞부딪치게 되므로, 사망의 무리를 찾아서 독수리로 상징된 사탄이 이 땅으로 모이는 동시에, 생명의 무리를 찾는 주님도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 Ⅰ.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맨 먼저 구원의 인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장 23절)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자가 있다(마태복음 16장 28절)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4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슴하셨던가 ?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세기 32장 28절). 야곱은 이와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생각치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로마서 2장 28~29절)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증언하였다(로마서 9장 6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사도행전 13장 46절).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Ⅱ.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 때에 어린 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요한계시록 5장 7절),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요한계시록 6장 1절).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광경으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 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여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 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요한계시록 14장 1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태복음 21장 43절)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3
그러나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자, 그들과 전 인류를 하나님 앞에 복귀하시기 위한 대속의 조건으로, 예수님의 몸을 사탄에게 내주시어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적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뒷날 재림하셔서 그것을 이루시기로 약속하고 가셨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상에서 영 육 아울러 완성되어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함으로써, 그것들을 하나로 화동시켜 준 존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의 완성실체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영체로 오셔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초림때와 같이 영 육 아울러 완성한 존재로 오셔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함으로써(로마서 11장 17절), 그들로 하여금 영 육 아울러 완성하여,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지 아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어, 복귀된 전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그 나라의 왕이 되셔야 할 것이었다(이사야 9장 6절, 누가복음 1장 31절).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가 재림하시어서도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또 왕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 인간의 속죄는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전편 제1장 제6절 Ⅲ.3).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을 쓰시고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어서, 아직도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유전되어 온 원죄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속죄하시어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완성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셔서는 이 목적을 달성하실 수 없기 때문에, 초림때와 같이 육신을 쓰고 오시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영체 재림이 아니라 초림때와 같이 육신 재림이라는 것을 여러 모로 밝혔다. 예수님이 설혹 영체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체가, 물질로 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그의 재림이 영체로써 공중의 어디에 가 계시다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 이에 대해서는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 무슨 기적인들 행치 못하실 것인가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법도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장에는 서실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와 주금도 다름없는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 할 예수님이, 구태여 지구 아닌 다른 어떤 천체의 공간 속에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도록 하시는, 그러한 비원리적인 섭리는 하실 필요도 없고 또 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온 모든 논증에 입각해 볼때,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Ⅲ. 구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 탄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구름은 무엇을 비유하였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스덴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영안이 열린 성도들뿐이었다(사도행전 7장 55절). 따라서 영계에 계시는 예수님이 영체 그대로 재림하신다면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만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각인의 눈이 다 영체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각인의 눈이 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그가 육신을 쓰고 오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한편 육신을 쓴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의 구름은 분명코 무엇인가를 비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또 같은 성구 가운데, 저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예수님을 찌른 자는 로마병정이었다. 그러나 로마병정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죽어 버린 로마병정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부활해야 될 터인데, 요한계시록 20장 5절의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뿐이요, 그 밖의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시대가 지나간 후에야 부활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한 ‘찌른 자’는 부득이 비유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가 뜻밖에 그가 지상에서 육신 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 때, 그를 몰라보고 핍박하게 될 무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찌른 자’를 비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같은 구절 안에 있는 ‘구름’이라는 어귀 역시 비유로 해석해서 안 될 리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 구름은 지상에서 더러운 물이 증발되어 올라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물은 타락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은 타락한 인간이 중생하여 그 마음이 항상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독실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구름은 성서나 고전에서 군중을 표시하는 말로 씌어졌다(히브리서 12장 1절).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의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세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의 구름기둥은, 앞으로 같은 민족의 인도자로 오실 예수님(+)을 표시하였고, 밤(-)의 불기둥은 예수님의 대상존재로서, 불의 역사로써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성신(-)을 표시한 것이었다. 우리는 위의 설명에 의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살펴본 바와같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에(누가복음 17장 37절), 예수님이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신 말씀의 본 뜻도, 독실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름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구름을 이와같이 비유로서 해석하고 보면, 예수님은 초림시에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셨던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 47절에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으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3장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실 지상에서 탄생하셨어도, 그 뜻이나 가치로 보아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7장 13절에 초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것으로 보여주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Ⅳ. 예수님은 왜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예언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막기 위함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하실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가운데서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었으므로, 어떠한 보잘것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영적으로 어느 기준에 달하게 되면, 제각기 재림주로 자칭하고 나서서 세상을 현혹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줄로 알고, 하늘만을 우러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이 혼란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지상에서 탄생하실 것을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어려운 신앙노정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전후가 잘 맞지 않는듯한 말씀을 하신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실례를 들어보면,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또 요한복음 21장 18절 내지 21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 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를 받아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자 베드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응수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여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지나 않을까 하고 고대한 제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또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곧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일념에서, 로마제국의 압정과 유대교의 핍박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사도행전 2장 1~4절) 초대교회를 창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강림하셔서, 번개 같이 모든것을 이루실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많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어떻게 부활하실 것인가 2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장 20절) : 만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써, 이미 그 나라가 임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엘리야가 공중에서 재림할 것으로 알고 고대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기 때문에,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나,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지상으로 재림하신 주님을 불신하게 되어,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나니라”(17장 21절) :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그를 먼저 메시아로 믿고 따라서 모신 사람들은 벌써 그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하실 때에도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그를 먼저 알고 모시는 성도들을 중심하고 보면, 천국은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개인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 그 천국은 점차로 볼 수 있는 세계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셔서 일시에 볼 수 있는 천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장 22절) : 만일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누구나 다 같이 그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게 될 리가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가 ?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심과 함께 인자의 날은 이미 임하였던 것이나, 불신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이 날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시는 날로 인자의 날은 오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자의 날은 이미 와 있을지라도 사실은 그 날을 그 날로 보지 못하게 될 것임을 사실이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17장 23절) 이미 부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세에는 심령이 어느 기준에 달한 성도들은 ‘너는 주라’는 계시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에 그들이 이러한 계시를 받게 되는 원리를 모르면, 스스로 재림주로 자처하게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미혹 당할 것을 염려하여 이런 권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17장 24절) :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은 사탄세계의 헤롯왕에게까지 들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장 2~3절). 재림 때에 있어서도 교통과 통신기관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재림에 관한 소식은 마치 번갯불과 같이 빠르게 동서간에 왕래하게 될 것이다. 17장 25절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17장 26절) : 노아는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백성들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있다가 모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진리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은, 땅에서 들려오는 이 말씀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그를 이단자로 배척하다가, 노아 때와 같이 모두를 섭리의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입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자는 살리리라”(17장 33절) : 구름을 타고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믿는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 탄생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가 이단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를 믿고 따르려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각오를 하고서라도 믿고 따르면 그 결과는 살게 될 것이나, 현실적인 환경에 영합하여 그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살겠다고 뒷걸음을 치다 보면 그 결과는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17장 37절) : 예수님은 그 제자들이 그의 재림하실 장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단에 놓였던 쪼개지 않은 비둘기 위에 솔개가 내렸던 사실을 알고 있다(창세기 15장 11절). 이것은 성별되지 않은 것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사탄이 따른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마지막 대답은 주검이 있는 곳에 그 주검을 취하러 사탄이 모이는 것 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생명이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씀은 주님은 독실한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미 부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기에는 많은 영인들의 협조에 의하여, 독실한 성도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생명있는 곳으로서 주님이 나타나실 곳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림 당시에도 하나님을 가장 잘 받들어온 선민 가운데서 탄생하셨고, 선민 중에서도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비로소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여기의 철장은 죄악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인류역사 종말론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불심판은 곧 혀 심판이요 따라서 말씀 심판이다(야고보서 3장 6절).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던 그 ‘말씀’이 저들을 심판한다고 하셨고(요한복음 12장 48절),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불살라 심판한다고 하셨으며(베드로후서 3장 7절), 주께서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들을 죽인다고도 하셨다(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입의 막대기, 곧 혀와 입술의 기운, 곧 그의 말씀이 바로 철장인 것이다(이사야 11장 4절).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27절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분명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였고, 또 그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누구 시겠는가 ? 그는 바로 지상에서 만왕의 왕으로 탄생하시어 지상천국을 이루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첫머리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에 4음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만민의 혈통을 가진 후손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위의 성구의 ‘여자’를 교회로 해석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전제 밑에서 이 성구를 해석하려니까, 교회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남은 자손’은, 그 아래 씌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양자 격으로(로마서 8장 23절) 선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사도행전 8장 16절) 예수님이 각자의 마음 속에 계시게 되는 것을(요한복음 14장 20절) 그의 재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직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때부터(사도행전 2장 4절) 오늘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언제나 내재하시게 된 것이므로, 이런 것이 재림이라면 그 재림은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직후에, 그의 생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으며(마태복음 28장 9절, 그 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령기준이 높은 신도들에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오셔서 모든것을 지시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림도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새삼스럽게 그 재림의 날을 역사적인 소망의 날로 고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체와는 수시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재림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자들이 고대한 것은 영체로서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항상 만나고 잇는 사도요한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 말씀을 들은 요한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도 영체로써 찾아오시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으며, 사도요한도 또한 예수님이 영체로써 나타나시는 것을 그의 재림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잇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초림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재림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극히 자명한 사실이다. 창조원리에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이 세계를 주관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되 영인체와 육신의 두 부분으로써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이 두 세계의 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되었으므로, 주관자를 잃어버린 피조물은 탄식하며 자기를 주관해 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로마서 8장 19~22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으로서 이 두 세계의 완전한 주관자로 오셔서(고린도전서 15장 27절), 모든 성도들을 그에게 접붙이어(로마서 11장 17절) 그와 일체가 되게 함으로써, 그들도 모두 피조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해 주시려 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