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떻게 부활하실 것인가 2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장 20절) : 만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써, 이미 그 나라가 임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엘리야가 공중에서 재림할 것으로 알고 고대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기 때문에,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나,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지상으로 재림하신 주님을 불신하게 되어,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나니라”(17장 21절) :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그를 먼저 메시아로 믿고 따라서 모신 사람들은 벌써 그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하실 때에도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그를 먼저 알고 모시는 성도들을 중심하고 보면, 천국은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개인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 그 천국은 점차로 볼 수 있는 세계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셔서 일시에 볼 수 있는 천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장 22절) : 만일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누구나 다 같이 그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게 될 리가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가 ?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심과 함께 인자의 날은 이미 임하였던 것이나, 불신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이 날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시는 날로 인자의 날은 오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자의 날은 이미 와 있을지라도 사실은 그 날을 그 날로 보지 못하게 될 것임을 사실이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17장 23절) 이미 부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세에는 심령이 어느 기준에 달한 성도들은 ‘너는 주라’는 계시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에 그들이 이러한 계시를 받게 되는 원리를 모르면, 스스로 재림주로 자처하게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미혹 당할 것을 염려하여 이런 권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17장 24절) :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은 사탄세계의 헤롯왕에게까지 들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장 2~3절). 재림 때에 있어서도 교통과 통신기관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재림에 관한 소식은 마치 번갯불과 같이 빠르게 동서간에 왕래하게 될 것이다. 17장 25절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17장 26절) : 노아는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백성들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있다가 모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진리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은, 땅에서 들려오는 이 말씀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그를 이단자로 배척하다가, 노아 때와 같이 모두를 섭리의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입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자는 살리리라”(17장 33절) : 구름을 타고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믿는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 탄생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가 이단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를 믿고 따르려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각오를 하고서라도 믿고 따르면 그 결과는 살게 될 것이나, 현실적인 환경에 영합하여 그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살겠다고 뒷걸음을 치다 보면 그 결과는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17장 37절) : 예수님은 그 제자들이 그의 재림하실 장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단에 놓였던 쪼개지 않은 비둘기 위에 솔개가 내렸던 사실을 알고 있다(창세기 15장 11절). 이것은 성별되지 않은 것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사탄이 따른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마지막 대답은 주검이 있는 곳에 그 주검을 취하러 사탄이 모이는 것 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생명이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씀은 주님은 독실한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미 부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기에는 많은 영인들의 협조에 의하여, 독실한 성도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생명있는 곳으로서 주님이 나타나실 곳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림 당시에도 하나님을 가장 잘 받들어온 선민 가운데서 탄생하셨고, 선민 중에서도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비로소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여기의 철장은 죄악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인류역사 종말론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불심판은 곧 혀 심판이요 따라서 말씀 심판이다(야고보서 3장 6절).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던 그 ‘말씀’이 저들을 심판한다고 하셨고(요한복음 12장 48절),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불살라 심판한다고 하셨으며(베드로후서 3장 7절), 주께서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들을 죽인다고도 하셨다(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입의 막대기, 곧 혀와 입술의 기운, 곧 그의 말씀이 바로 철장인 것이다(이사야 11장 4절).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27절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분명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였고, 또 그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누구 시겠는가 ? 그는 바로 지상에서 만왕의 왕으로 탄생하시어 지상천국을 이루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첫머리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에 4음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만민의 혈통을 가진 후손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위의 성구의 ‘여자’를 교회로 해석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전제 밑에서 이 성구를 해석하려니까, 교회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남은 자손’은, 그 아래 씌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양자 격으로(로마서 8장 23절) 선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사도행전 8장 16절) 예수님이 각자의 마음 속에 계시게 되는 것을(요한복음 14장 20절) 그의 재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직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때부터(사도행전 2장 4절) 오늘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언제나 내재하시게 된 것이므로, 이런 것이 재림이라면 그 재림은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직후에, 그의 생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으며(마태복음 28장 9절, 그 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령기준이 높은 신도들에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오셔서 모든것을 지시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림도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새삼스럽게 그 재림의 날을 역사적인 소망의 날로 고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체와는 수시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재림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자들이 고대한 것은 영체로서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항상 만나고 잇는 사도요한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 말씀을 들은 요한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도 영체로써 찾아오시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으며, 사도요한도 또한 예수님이 영체로써 나타나시는 것을 그의 재림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잇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초림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재림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극히 자명한 사실이다.


 창조원리에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이 세계를 주관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되 영인체와 육신의 두 부분으로써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이 두 세계의 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되었으므로, 주관자를 잃어버린 피조물은 탄식하며 자기를 주관해 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로마서 8장 19~22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으로서 이 두 세계의 완전한 주관자로 오셔서(고린도전서 15장 27절), 모든 성도들을 그에게 접붙이어(로마서 11장 17절) 그와 일체가 되게 함으로써, 그들도 모두 피조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해 주시려 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타종교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