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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에 대한 예정

      제2절 뜻 성사에 대한 예정  창조원리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 복귀섭리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그 ‘뜻성사’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실상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그들에게 맡겨진 책임분담을 그들 자신이 완수함으로써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창세기 2장 17절1)). 따라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있어서도, 그 사명을 담당한 중심인물이 그 책임분담을 수행함으로써만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는, 유대인들이 그를 절대로 믿고 따라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써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 성사’는 부득이 재림 때에로 미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 이미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의 책임분담에, 그를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 책임분담 5%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100%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아담 해와를 중심한 ‘뜻 성사’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되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노아가 방주를 제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섭리도 타락인간이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비로소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요한복음 3정 16절).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작은 책임분담마저 감당치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연장케 하였었다.  한편 또 야고보서 5장 15절2)에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마가복음 5장 34절3)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으며, 마태복음 7장 8절4)에서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러한 성구들은 모두 인간자신의 책임분담 수해에 의하여서만,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었다는 사실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인간이 담당했던 책임분담은, 하나님이 그의 책임분담으로 담당하신 수고와 은사에 비하여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 섭리적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감당치 못함으로써 복귀섭리를 연장시켜 왔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가벼운 책임분담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얼마나 힘에 겨울만큼 큰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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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

           제6장 예정론  예로부터 예정설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실제에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성서에는 인생의 영고성쇠와 행 불행은 물론 타락인간의 구원 여부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되어지는 것으로 해석되는 성구가 많이 있다. 그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29절 이하에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이를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셨다. 또 로마서 9장 15절 이하에는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으며, 로마서 9장 21절에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9장 11절이하에는,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된 에서는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고 한 말씀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완전예정설을 세워줄 수 있는 성서적인 근거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예정설을 부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성서적인 근거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2장 17절에 인간조상의 타락을 막으시기 위하여 ‘따먹지 말라’고 권고하신 것을 보면,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은 결과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한편 또 창세기 6장 6절에는, 인간시조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신 기록이 있는데,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타락되었다면, 하나님 자신의 예정대로 타락된 인간을 두시고 한탄하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또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바로 멸망으로 예정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성구인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만나게 하시며,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으로만 되어진다면, 무엇 때문에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  또 야고보서 5장 14절9)에 병중에 있는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병이 나거나 낫거나 하게 되는 것도 역시 모두 하나님의 예정에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불가피한 운명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라면, 인간이 애써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종래의 예정설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기도나 전도나 자선행위등 인간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아무 도움도 될 수 없고,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자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라면 그것도 역시 절대적일 것이므로, 인간의 노력으로 변경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정설을 둘러싸고 찬 반 양론이 모두 세워질 수 있는 성서의 문자적인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리의 논쟁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가 원리로써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 예정론에 대한 문제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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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3

 6.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군주주의시대에 뒤이어 온 것은 민주주의시대였다. 그런데 군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차 메시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 사회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을 인민에게 둠으로써, 인민이 그 민의를 따라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메시아왕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군주주의의 독재를 깨뜨리고,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기 위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 심령이 점차 밝아지게 되므로, 이 섭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은 자기도 모르게 종교를 찾게되고, 또 종교를 찾는 그 본심은 결국 하나님이 최종적인 종교로 세우시고 섭리하시는 기독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의 기독교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는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역사가 종말에 가까워 갈수록, 백성의 뜻은 점차 기독교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백성의 뜻에 따르는 민주정체도 또한 기독교적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 기독정신으로 원숙한 민주정체의 사회로 메시아가 재림하시면, 그는 백성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을 지상에 세워 지상천국을 복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결국 사탄편의 독재를 없이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주권을 백성의 뜻을 따라 복귀하시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전제군주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주주의는, 영국․미국․프랑스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키어, 군주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고찰하였거니와,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섭리적인 흐름으로 본 민주주의에 대하여는 다음 장으로 미루기로 한다.  다음으로 종교면에서의 역사발전과정에 있어서도, 1517년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황을 중심한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이 무너진 뒤에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왔다. 기독교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교황이 독재하여 내려오던 영적인 왕국을 무터뜨렸다.   원래 교황을 중심한 이 왕국은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교황이 국왕고 하나가 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전제군주사회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교황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기독교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황이나 승려를 통하지 않고 각자가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면에 있어서도 신도들이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하여 신앙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왔다. 이리하여 기독교민주주의는 장차 메시아가 어떠한 모습으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잇는 기독교적인 사회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경제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그 발전법칙에 의하여 제국주의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적인 경제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1차 세계때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는, 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을 깨부수기 위한 국가적 민주주의가 나타나, 열강들은 식민정책을 포기하고 약소국가들을 해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경제시대는 제국주의의 붕괴를 전기로 하여 사회주의적인 경제시대에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보면,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본연의 가치에 있어서는, 그들 사이에 서로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치 우리 인간의 부모가 그 자식을 대하듯이,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을 주시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마치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므로, 생산과잉에 의한 판로경쟁이나 편파적인 분배로 인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에 지장을 가져오는 축적이나 소비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치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간장과 같이, 기능 전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마땅한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이상으로써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복귀할 수 있는 섭리역사의 종말기에 이르러,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의 본성을 더듬어 나아가게 되면, 결국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의가 이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민의에 의한 정치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사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고대 기독교사회에서도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찾아 볼 수 있고,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도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것이었으며, 한편 또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일어났던 오웬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사상도 그러했으며, 또는 19세기로 들어오면서 영국의 킹스리의 기독교사상에 의하여 가톨릭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사회주의 등이 나오게 되었던 것은, 모두 창조이상을 지향하는 인간본성의 자연적인 발로에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 공생공영공의주의와 공산주의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은, 사탄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던 인간의 창조본성을 계발하여 나아가므로, 인간은 이와같은 창조본성의 욕구에 의하여,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의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블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없는 것이니, 이 세계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인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사탄편에서는 먼저 유물사관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어 공산주의세계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발전관에 입각하여, 인류역사는 원시공산사회에서 다시 공산주의사회에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원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상천국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 인간과 혈연관계를 먼저 맺은 사탄이 타락인간을 중심하고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복귀하시려는 지상천국을,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원리형의 비원리세계가 바로 공산세계인 것이다.   마치 군주주의의 정치적인 독재를 막고, 그 주권을 인민의 것으로 돌리려는데서 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과 같이, 국가의 재산이 어느 특수한 개인이나 계끕에 독점을 당하는 제국주의적인 경제체제를 타파하고 인민들이 그것을 균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를 거쳐서 하늘편에서는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지향하고, 사탄편에서는 그것을 앞질러 먼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경제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서구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가,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옸따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섭리역사로 종결을 지어, 재림이상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 이미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 육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이 3분되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이렇게 세 부면으로 발전해 온 역사가 하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초점으로 귀결되기 위하여서는,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종교에 의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심정에 귀일함으로써,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경제의 기대 위에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정치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생공영공의 주의에 입각한 메시아왕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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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2

             5. 군주사회와 제국주의사회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군주사회인 것이다. 그러면 이 때의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면에서 본 군주사회는 어떻게 이루어졌었는가 ?  서구에 이동된 게르만 민족이 세웠던 국가들은 모두 그 존립기간이 짧았으마, 프랑크왕국만은 오래도록 존속되었다. 프랑크는 서게르만의 한 부족이었는데, 그가 메로빙왕조를 세운 후, 기독교와 결합하고 로마문명을 흡수하여, 서구에다 게르만적인 로마풍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왕조가 몰락한 후 촬스․마르텔은 서쪽에서 침입한 아라비아인을 물리쳐 세력을 폈고, 그의 아들 피핀은 카롤링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알대제는 일찍부터 성어거스틴의 ‘신국론’을 숭상하였었는데, 왕위에 오르자 그는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군주국가를 세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알대제는 주우유럽을 통일하고, 민족대이동으로 혼란된 서구를 안정시켜서 강력한 프랑크왕국을 확립하였었다.  다음으로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는 <메시아를 위한 영적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없는 영적왕국사회 였다. 그리고 교황 레오3세가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하여 천적인 기업을 상속함으로써,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영적인 왕국과 정치적으로 형성된 프랑크왕국이 하나되어 기독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는 구약시대의 통일왕국시대와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봉건시대에 뒤따라 왕국시대가 왔던 것은 봉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더욱 큰 하늘편의 주권과 백성과 판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천사장의 입장에서 실체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온 교황은 국왕을 축복한 뒤에 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하고, 또 국왕은 교황의 이념에 따라 메시아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하여 기독왕국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더면, 그 시대가 바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말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그 때까지 서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상충되어왔던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과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왔더면, 그 때 바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하나의 이념을 중심하고 완전히 일치된 방향으로 발전함으로써, 이 터전 위에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왕국시대가 옴으로써 봉건시대는 그 때에 완전히 끝나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이나 국왕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서, 카알대제의 본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완강한 봉건제도의 기틀은 무너지지 ㅇ낳고 그 뒤 오래도록 존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서로 분립됨으로써,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도 여전히 분립되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카알대제는 원숙한 봉건제도의 터전 위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실상 일개 대영주의 입장에 불과하였다. 기독왕국이 이렇듯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봉건제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정치면에서의 봉건계급사회는 전제군주사회가 일어날 때가지 번성하였다.  17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권신수설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군림한 국왕은 절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를 사실상 이룩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교사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군주사회의 귀추는 어떠하였던가 ?  이 시대의 교황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세속화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심령적인 면에서 쇠퇴의 길을 밟아 가게 되었었다. 더구나 십자군 전쟁에 패함으로 말미암아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한편 또 교황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갇힘으로써, 그들은 허명무실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이었던 기독교군주사회는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경제면에서의 발전과정을 보면, 봉건적 경제제도는 봉건적인 정치제도가 몰락되고 중앙집권화한 전제군주사회에 있어서도, 의연히 존속되어 프랑스혁명 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농업경제의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화해 가던 다른 경제면에 있어서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넘을 수 없었다. 즉 자영농민들도 봉건영주의 지배에 맞서기 위하여 국왕의권력에 의뢰하였으나, 그들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메뉴팩처의 경영자들도 봉건적인 분열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중앙집권의 국왕과 결탁하였으나, 결국 그들도 역시 봉건화한 상업자본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라면, 경제면에 있어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것인가 ?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인 것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가 오게 된 것은, 봉건적인 경제제도에 의하여 확보된 작은 단위의 경제기대를 더 큰 기대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본보기노정은 서구를 중심하고 이룩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하는 제국주의도 서구를 중심하고 전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서구에서 팽창된 제국주의사상은, 서구의 각 기독교국가로 하여금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지구의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세계는 급진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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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1

   Ⅱ.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1. 복귀섭리와 서양사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4세기 말에 이르러 드디어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초에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그를 왕으로 모시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원한의 땅 <유대>에서 서<로마>의 판도였던 서구로 옮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 이후에 있어서의 기독교에 의한 영적 복귀섭리는 서구를 발판으로하고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는 서구에서만 본보기노정을 따라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물사관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발전과정도 서구의 역사에서만 적응되고 있는바, 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서구를 중심한 기독교사는 복귀섭리연장시대를 만든 중시적인 역사자료가 된 것이다.        2. 종교사와 경제사와 정치사의 상호관계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유형 무형의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육신과 영인체의 두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다 함은 이미 창조원리에서 논술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더면 그의 영인체와 육신이 함께 성장하여 완성됨으로써, 영 육 양면의 지성이 동시에 지상의 육신생활 가운데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 육 양면의 무지에 빠지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영적인 무지는 종교에 의하여, 그 육적인 무지는 과학에 의하여 일깨워져 나왔던 것이니, 이에 관해서는 이미 전편 제3장 제5절 Ⅰ에서 논하였다.  그런데 영적인 무지는, 종교로써 타락인간 가운데 잠재해 있는 그 본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들이 보이지 않는 원인적인 세계를 찾아 나아감에 따라 점차 일깨워져 왔다. 그러나 종교는 누구나가 다 긴절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면의 깨우침은 어느 특수한 인간에 있어서는 비약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느린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고대인이나 큰 차이가 없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육적인 무지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결과의 세계 즉 자연계(육계)에 대한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써 일깨워져 왔다. 그리고 과학은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매우 필요하다. 그러므로 육적인 무지에 대한 계발은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이렇듯 찾아가는 대상이, 종교의 경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원인의 세계여서 초현실적인 것인데 반하여, 과학에서는 보이는 결과의 세계 즉 물지세계를 다루므로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이론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상충되어 왔다. 그뿐 아니라 피조세계의 주권을 갖고 있는 사탄이 현실생활을 통하여 인간에게 침범하는 관계로, 지금까지 종교의 길은 현실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현실을 추구하는 과학과 서로 조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다음 장 제1절에서 상세히 논급하겠거니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세기 2장 7절), 재창조원칙에 의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러한 섭리적 원칙으로 보더라도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발전과정을 밟아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부조화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우기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에 의한 종교사와 그 외적인 섭리에 의한 경제사는, 그 발전에 있어서 서로 방향과 진도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본보기노정을 밟아온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을 섭리적인 면에서 이해하기 이하여는,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따로 갈라지고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이 그러하듯이, 종교와 타락인간의 내 외 양면의 생활을 각각 분담하여 복귀해야 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혀 관계없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 따라서 종교와 경제는, 그 발전과정에 잇어서 서로 상충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부되어 각각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이루어 온 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었던가 ? 그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서였다. 기독교화했던 서구에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는 급진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과, 복귀섭리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맸던 기독교의 움직임을 사회생활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정치사는 종교와 경제를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를 위한 역사의 발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정치사도 역시 별도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실례로서, 17세기 말엽에 있어서의 서구의 역사를 놓고 그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종교사의 면에서 살펴보면, 이 시대에는 이미 기독교민주주의사회가 이룩되어 있었다. 즉 1517년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황이 독재하던 영적인 왕국이 무너짐으로써, 중세인들은 교황에 의해 지배받던 신앙생활에 해방되어, 누구나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정치사의 면에서 보면 이 시대에는 전제군주사회가 나타나 있었고, 경제사의 면에서는 아직도 장원제도에 의한 봉건사회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같은 시대의 같은 사회가 종교면에서는 민주주의사회가 되고, 정치면에서는 군주주의사회가되며, 경제면에서는 봉건주의사회가 되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발전과정을 각각 별도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은 어찌하여 그러한 과정을 밟아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고대사횡 있어서는 과학의 발달이 거의 정돈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발전도 역시 그러하였다. 아직도 생활양식이 분화되기 전인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민족은 지도자들의 명령에 의하여 엄격한 율법에 따르는 주종관계의 사회제도 아래서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생활은 곧 그들의 사회생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씨족사회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복귀섭리연장시대(신약시대)에 있어서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 등의 각 부면으로 본 역사발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탄을 중심한 원시공동사회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호응하는 인간의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분열되어, 그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인간이 분립됨으로써, 하늘편 씨족사회가 이룩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죽인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역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회를 분열시켜 그 가운데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기독교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야곱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이스라엘씨족사회를 이룩하여 섭리노정을 출발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가 기독교 씨족사회를 이룩하여 섭리노정을 출발했던 것이다. 기독교씨족사회는 원시기독교사회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도 정치나 경제 에 있어서의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기독교씨족 사회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 안에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아가면서 번성하여 기독교부족사회를 형성하는데 이르렀었다. 그리고 4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외었던 민족들의 대이동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은 드디어 476년에 쇠망하였고, 그 판도 안으로 이동해 온 게르만민족에게 기독교가 침투됨으로써 그들을 중심하고 광범한 기독교사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4. 봉건사회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씨족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봉건사회인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이 약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서구의 기독교사회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화되어, 각각 서로 다른 발전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봉건사회는 대․중․소의 영주와 기사들 사이에, 복종과 봉사를 전제로 하고 맺어진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와, 장원제도에 의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제도로써 이루어졌었다. 국토는 많은 영주들에 의하여 분활되었고, 국왕은 사실상 영주 중의 하나였으므로 국왕의 권력도 지방분권적이었다. 영주들은 상부로부터 은대지로 토지를 분배받아 그들의 독립영지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판권까지 행사하였었다. 따라서 이 영지는 거의 국가 권력을 떠난 개인 영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어진 개인의 영토를 장원이라 한다.  자작농의 하인들이 주권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영주 또는 사원에 바치고, 그 토지를 다시 은대지로 대여받아서 된 장원도 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장원은 전국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최하급의 기사는 하나의 장원을 나누어 받아 영주에게 사병으로서 종사하였지만, 국왕이나 영주는 수백 수천의 장원을 소유했던 것이다.  종교면에서도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하고 위에서 말한 봉건사회와 똑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기독교봉건사회라고 한다. 즉 교구장, 대주교, 주교는 대․중․소의 영주에 해당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왕이 영주 중의 하나였던 것과 같이 교구장 중의 하나였다. 거기에도 절대적인 주종관계에 의한 종교적인 정치제도가 있었고, 주교들은 신자들로부터 바쳐진 봉토를 가지게 되어, 그들은 봉건적 계급층들 중에서 유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주들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경제면에서 이 시대를 살펴 본다면, 이 시대는 고대 노예제도에서 장원제도로 옮겨진 시대였다. 따라서 평민들이 이 때부터 토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토지제도에 의한 신분은 대체로 지주, 자작농, 농노(반자유신분), 노예(부자유 신분) 등의 네 계급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게르만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교화하여 봉건사회를 세움으로써, 쇠망한 서로마의 터전에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3면으로 소단위의 하늘편 판도들을 강화하여, 장차 하늘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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