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가톨릭사전
홍교만 [한] 洪敎萬
홍교만(1737∼1801).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경기도 포천(抱川) 출신.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즉시 입교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아들 홍인(洪鏔)의 권고로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아 입교하였다. 입교한 뒤 더욱 열심히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전교에도 힘써 교회 발전에 공헌하였다. 박해가 일자 그는 1800년 … 계속 읽기
홍금주 [한] 洪今珠
홍금주(180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페르페투아. 서울 교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조모에게서 자랐다. 10세경 입교하여 15세 때 외교인과 결혼한 뒤 냉담한 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교우들의 권면에 힘입어 다시 신앙을 찾았고 그 뒤 신앙생활을 위해 어린 … 계속 읽기
홍낙민 [한] 洪樂敏
홍낙민(1740∼1801). 순교자. 세례명 루가. 충청도 예산(禮山)사람으로 일찍이 진사(進士)고시에 합격하여 서울에 이사하여 살고 있으면서, 이승훈, 정약용 등과 가까이 지내는 가운데 1784년에서 1785년 사이에 입교하였다. 그는 교리에 밝은 교우로 이름이 나, 1791년 정조(正祖)의 강압에 못 이겨 한때 배교했으나, 그 뒤 계속 기도를 … 계속 읽기
홍낙안 [한] 洪樂安
홍낙안(1752∼?). 문신, 천주교 박해자. 자는 인백(仁伯), 본관은 풍산(豊山), 후에 희운(羲運)으로 개명, 경북 안동(安東)에서 홍복호(洪復浩)의 아들로 태어났다. 1790년 증광문과(增廣文科) 병과(丙科)에 급제, 가주서(假注書)가 되었고 이듬해 신해진산사건(辛亥珍山事件)이 일어나자 공서파(功西派)의 선봉에 서서 신주(神主)를 불사른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을 고발하는 장서(長書)를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에게 올리는 한편, 진산군수(珍山郡守) 신사원(申史源)에게 … 계속 읽기
홍낙임 [한] 洪樂任
홍낙임(1741∼1801). 문신. 천주교인, 세례명은 미상. 자는 숙도(叔道), 본관은 풍산(豊山), 영의정 봉한(鳳漢)의 아들. 1769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었고 그 뒤 정언(正言), 문학(文學), 사서(司書)를 거쳐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윤행임(尹行恁)의 권유로 입교,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체포되어 제주도(濟州島)로 유배되었으나 곧 사사(賜死)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