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민(1740∼1801). 순교자. 세례명 루가. 충청도 예산(禮山)사람으로 일찍이 진사(進士)고시에 합격하여 서울에 이사하여 살고 있으면서, 이승훈, 정약용 등과 가까이 지내는 가운데 1784년에서 1785년 사이에 입교하였다. 그는 교리에 밝은 교우로 이름이 나, 1791년 정조(正祖)의 강압에 못 이겨 한때 배교했으나, 그 뒤 계속 기도를 드리고 대소재(大小齋)를 드려 1795년에 체포되어 15일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바 있었다. 1797년에 정조에게 천주교에 대한 보고를 올릴 때, 그 보고가 모호하다는 책망을 들은 뒤, 천주교를 모함하고 교인들을 가혹하게 처단해야 한다는 소(疏)를 다시금 올렸다.
그러나 1801년 대박해로 모든 천주교인에게 역률죄(逆律罪)를 적용하여 체포토록 하니, 홍낙민에게도 2월 9일 체포령이 내려 금부(禁府)에 수감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수한 고문을 받았지만,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를 달게 받았다. 그는 이러한 고문과 죽음을 전날의 배교에 대한 벌로 기꺼이 받는 듯했으며,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이제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4월 8일 이승훈(李承薰), 최창현(崔昌顯), 정약종(丁若鍾), 홍교만(洪敎萬) 등과 함께 참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