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4,1-12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르 1,12-13 ; 루카 4,1-13)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유혹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늘 유혹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탄의 유혹을 선택할 것인지, 하느님을 선택할 것인지. 하지만 그 달콤한 유혹도 선택 후 막상 지나가 보면 절망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유혹을 당하십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내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를 알아보면서, 나 또한 내게 밀려오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2.1. 광야에서 사십 일간 단식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로 나가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인도하십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하십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육신을 길들여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단식입니다. 하지만 그 단식으로 인하여 육신의 힘이 빠져 나갈 때는 또 유혹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악마도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하실 때, 그 기회를 노리고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한 끼를 굶어도 힘든데, 예수님께서는 40일을 단식하셨습니다.
2.2.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악마는 예수님의 계획을 망치려고 합니다. 악마는 40일간 단식하신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육신이 강할 때는 아무리 강한 유혹이라 할지라도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약해졌을 때는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실 분이시라면 결코 단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① 빵의 유혹
악마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신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4,3)라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드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차라리 단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악마는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지?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지? 또 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굳이 증거를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증거를 보이는 그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와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악마는 한 가지의 유혹을 통해서 두 가지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해서 내가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할까요? 유전자 검사를 해야만 되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증명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를 아버지의 섭리와 뜻에 맡겨야 함을 확신하셨고 갈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굶주림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사랑에 맡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사십 일을 단식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사랑 안에 머물고 계셨던 것입니다. 40일간의 굶주림도 결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신뢰를 깨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 육신을 채워주는 빵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런 유혹을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신앙이 밥 먹여 주냐?”하고 하느님을 등지지는 않았을까요?
② 권력과 명예에 대한 유혹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에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마태4,6)
이 높은 탑 아래에는 성전의 광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마는 이런 상황으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어차피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면 지금 이 군중들 속으로 뛰어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을 로마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실 그리스도, 구세주는 나다!’ 하고 외쳐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마가 말한 대로 군중들은 환호하며 예수님을 환영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서 받쳐 줄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혹합니다. “자! 뛰어 내려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참으로 달콤한 유혹입니다. 메시아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무사한 것을 보면 군중들은 확실하게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권력과 명예를 얻어서 구원사업을 펼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실 계획이었다면 굳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셨을 것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5,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강제로 회개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세상의 임금들이 그러하듯이 힘으로 평화를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세상 모든 이들을 죄의 종살이에서 속량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는 말씀을 통하여 사탄이 인용한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가르쳐주십니다. 사람 편에서 하느님께 억지로 기적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인간이 하느님께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은 결코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결코 하느님을 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을 떠보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탄의 모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것을 해 주신다면 제가 믿겠습니다.”라는 기도가 바로 악마가 예수님께 했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내 힘으로 하려 하지 않고 다른 힘을 빌려서 하려 하는 것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항상 그 사람에게 종속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며 할 수 있는 것들을 기쁘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은 편법보다는 정당한 방법과 노력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 나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유혹은 내 옆에 있습니다.
③ 재물에 대한 유혹
빵의 유혹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유혹으로도 예수님을 유혹하지 못한 악마는 이제 재물로 예수님을 유혹하려 합니다. 메시아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한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그렇게 세상을 보여주며 유혹을 합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4,9) 그런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악마는 이런 약속을 실행할 힘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지 악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들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악마는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감히 예수님께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가끔 뉴스에 부동산 업자들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마치 거대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여 사기를 치고, 그것에 현혹한 투자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즉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듯하여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유혹은 유혹일 뿐임을 명심하며, 내 것이 아닌 것에는 관심 기울이지 말고, 헛된 것에 욕심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10) 하느님 대신 악마에게 절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실 때 예수님께서는 200데나리온 어치 빵을 사오지 않으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나눠 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을 조각을 모으니 12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펼치는 데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신뢰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끔은 본당에서 봉사자들을 임명할 때 신앙을 보기 보다는 돈 있고, 명예 있는 이들을 임명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 봉사자들은 임기가 끝나거나 사제의 인사이동이 있으면 다시 뒤로 물러납니다. 얼굴을 보기도 힘듭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의 유혹입니다. 재물은 마음이 있는 이들이 내어 놓는 것이지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내어 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재물 앞에 무릎을 꿇어서도 안 됩니다.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 재물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적당히”라는 말은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적당히’를 넘어설 때” 불행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누가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할 때, 좋은 것을 사 준다고 할 때, 적당히 거절하는 것도 참으로 지혜로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재물이 있어야 만이 봉사하고, 재물이 있어야 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는 없지만 조금씩 모으면 많아집니다. 많이 줄 수는 없지만 정성을 담아서 조금씩 베풀어도 받는 사람들은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무엇을 주어야만이 상대방이 행복해지고, 성당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을 얼마나 자주 체험합니까?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내 옆에 있는 이들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큰 힘을 주는 내가 되어 봅시다.
2.3.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가는 악마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그 다음 기회는 바로 예수님의 수난을 가리킵니다. 그 때가 되면 악마는 또 다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 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망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겠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의 승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십자가상의 제사를 드리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악마는 완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완승을 올리고 있습니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있도록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유혹을 물리칩시다. 또한 처음의 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 드실 계획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단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며 “내가 바로 그리스도요!”라고 외치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굳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악마에게 절하여 재물을 얻을 계획이 있으셨다면 굳이 목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유혹은 처음의 마음을 잊게 만듭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라가.”라고 하든지,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냅다 튀든지.”하지만 예수님처럼 단호하기는 쉽지 않으니 유혹이 밀려올 때, “냅다 튀는” 연습을 많이 해 봅시다. 그리고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유혹을 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이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식과 금육으로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작은 결심들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재의 수요일에 결심하고 계획했던 것을 나는 지금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굳은 결심을 해 봅시다. 그리고 사순 첫 주일을 맞이하여 내가 접하고 있는 유혹, 내가 싸우고 있는 유혹에 대해서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고, 유혹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빵의 유혹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 재물의 유혹들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이 유혹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너지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③ 수많은 유혹들이 신앙인들에게 밀려옵니다.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유혹들도 있습니다. 이런 유혹들이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습니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혹시 내가 그들을 유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알림 및 공지
① 항상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굳은 믿음을 드리기.
② 유혹을 알아차리고,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기.
③ 형제자매들을 유혹하지 않고, 유혹에 빠진 형제자매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