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
– 눈먼 사람의 치유 –
1. 말씀읽기: 요한9,1-41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눈먼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런데 눈먼 소경이 눈을 뜬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누가, 어떻게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당연히 좋아해야 하지만 눈을 뜬 소경과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먼 소경의 치유를 통해서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와 함께 기뻐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 1: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요한9,2)하고 질문을 합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말씀드렸을까요?
① 주님! 저 불쌍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② 주님! 소경이 있네요. 돌아서 가시지요. ^*^
똑같은 상황을 놓고도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내적인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외적인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쓸데없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문제 2 : 예수님께서는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을 죄의 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를 지으면 병을 얻게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이나 부모가 죄를 지어서 소경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②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9,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보지 못하는 이들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을 듣게 하며, 걷지 못하는 이들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러 오셨고, 이제 눈먼 이에게 빛을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 3: 예수님께서는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9,4-5)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시는 3년을 하루에 비유하시며, 그동안“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구원하는 일이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②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우리들(그리스도교 공동체)도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생명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선포하고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③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의 의로운 믿음과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주고, 참된 가치를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합니다.
문제 4: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요한9,6-7)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냥 말씀 한마디면 될 텐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셨을까요?
① 진흙이 눈을 뜨는데 효과가 있어서 ^**^ 설마~
② 소경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고쳐주려 하고 있단다.”라는 것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
엘리사가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나아만은 손을 얹어 주거나 기도해 주지도 않았다고 불평을 했었습니다. 그것을 꼭 기억해 봅시다(열왕기 하권 5장을 꼭 읽어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친절하시게도 그의 눈을 만져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문제 5: 소경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서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① 예수님께서 하고자만 하시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②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데, 그 의미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파견 받으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예수님의 말씀만 믿는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③ 믿음을 가지고 씻었기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④ 실로암 못은 눈을 고치는 안약 재료가 있어서 그 물을 가져다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문제 6: 이웃사람들은 눈을 뜬 사람들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요한9,10)라고 물었습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물었을까요?
① 기쁘시지요? 참 잘됐네요.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②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정현이도 눈이 멀었는데, 혹시 당신 구걸하기 위해서 소경인 척 했던 것은 아닙니까? ^*^
③ 축하해요. 부모님께서 참 기뻐하시겠어요.
④ 역시 믿기만 하면 믿는 대로 되네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눈을 씻은 당신의 모습을 저도 본받아야겠어요.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소경이었던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소경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 7: 사람들은 치유 받은 소경을 바리사이들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치유 받은 소경을 그들에게 데리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원래 소경이었는데 지금 눈을 뜨고 있으니 이 놀라운 사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바리사이들을 통해서 이 사건을 조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종교와 관계있는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바리사이들의 권리였습니다.
② 원래 소경이었던 사람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고, 이들의 관심은 이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자기들의 궁금증을 푸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그들은 소경의 치유를 너무 너무 기뻐했고, 이런 기쁨을 주신 예수님을 함께 믿고,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자고 바리사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입니다. ^*^
문제 8: 소경이었던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신 놀라운 일을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치유된 소경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의인인지 죄인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갔습니다.
② 그들은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치유된 소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참되게 섬기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
누군가가 만일 나에게 “안식일이라고 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분명 “미뤄야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고통 받고 있다면 분명 치유를 받았을 것입니다. 남의 일이기에,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따지는 것입니다.
문제 9: 내가 만일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 하나였다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① 여보게들! 세상에 소경이었던 이를 눈뜨게 해 주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 우리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의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게나.
② 친구들! 안식일이라고 하여 자기 자녀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치유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너무 옹졸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리세.
③ 친구들! 어떻게 죄인이 이런 엄청난 기적을 베풀 수 있겠나?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시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일세.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님을 굳게 믿읍시다.
문제 10: 바리사이들은 다시 눈이 멀었던 이에게 (요한9,17)라고 묻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무엇일까요?
① 저는 원래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구걸하기 위해서 잠시 눈이 멀었던 척 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능력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② 예수님은 죄인이십니다. 왜냐하면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입니다.
③ “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요한9,17) ^*^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치유 받은 소경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온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자신이 체험한 만큼만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죄인으로만 단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 11: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요한9,19)라고 물었습니다. 이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그동안 아드님이 앞을 보지 못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습니까? 다행히 예수님께서 댁의 아드님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함께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② “당신 아들이 원래 볼 수 있었는데 못 보는 척 사기를 친 것 아니오? 사실대로 말하시오. 예수님과 짜고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그러는 것 아니오?”하면서 기적 자체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대답은 “소경이 아니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가끔은 거짓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적수라고 하면서 그것을 눈에 발라서 보이게 되었다고 과장 선전을 합니다. 먼 타지에서 일어난 일을 선전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런 방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또 그런 선전이 이루어지고 나면 교회가 아무리 아니라고 진실을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탄압한다고 말합니다.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기적은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데 있습니다.
문제 12: 소경이었던 이의 부모는 아들이 눈을 뜬 것을 기뻐할 겨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다고 말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예수님께서 위대하신 분이라고 하면 분명 박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① 부모는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요한9,20-21)라고 말하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②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에 이런 엄청난 기적을 베푸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당신들도 예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라고 말하고 회당에서 쫓겨났습니다. ^*^
문제 13: 만일 내가 소경이었던 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요? 당당하게 진실을 말했을까요? 아니면 대답을 회피했을까요? 그런데 회피하자니 예수님께 죄송스럽지 않겠습니까?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대답했겠습니까?
문제 14: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요한9,24) 하고 말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소경이었던 이에게 듣고 싶은 대답은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의 참된 의미를 알아내려는 것이었습니다. ^*^
② 지금까지 소경이었던 그가 거짓말을 했고, 사실은 자신은 장님이 아니었으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지 않으셨다는 거짓 자백입니다.
문제 15: 눈을 뜨게 된 소경은 바리사이들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요한9,25)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이 이야기를 내가 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①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밖에 없으신데, 형제님의 눈을 예수님께서 뜨게 해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②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니 예수님께서 죄인일리는 없으십니다. 형제님께서 눈을 뜨게 되신 것을 축하드리며, 우리 예수님을 찾아가 감사드리며, 함께 믿음을 고백합시다.
③ 기타( )
신앙인은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경이었던 이의 부모와 소경이었던 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소신 있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얼마나 당당하게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성해 봅시다.
문제 16: 바리사이들은 치유 받은 소경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요한9,28-29)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과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오로지 율법만 잘 지키면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이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눈을 뜬 이는 이제 유다인들을 가르칩니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분별하고 해결해주면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하느님의 일을 식별할 줄 모르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 17: 소경이었던 사람은 믿지 않으려는 바리사이들에게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요한9,30-33)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
②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
③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치유기적을 행하셨으니 예수님은 의로운 분이시라는 것.
④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셨기에 이런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의로운 이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십니다. 소경이었던 이의 기도는 늘 보게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을 예수님께로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이것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논리적으로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증거 합니다.
문제 18: 유다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요한9,34)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백성의 지도자들은 소경이었던 이로부터 자신이 소경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오히려 자신들을 훈계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말했기에.
② 더 이상 얘기한다 하더라도 자신들도 할 말이 없고, 소경이었던 이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의 크신 능력만 드러나고, 그럴수록 자신들은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했기에.
③ 소경이었던 이와 이야기 할 시간에 빨리 예수님을 찾아가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서^*^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하면서 소경이었던 이를 쫓아냅니다. 바리사이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불행을 부모의 죄로 돌리고, 그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로 몰아세웁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자신들의 부족함이 보이자 분노를 터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내 일상생활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반항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 등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 19: 치유 받은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알리십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이렇게 믿음을 고백한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5가지만 적어 봅시다.
①
②
③
④
⑤
소경이었던 그는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게 됩니다. 육신의 눈을 뜬 그는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됩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경배한다는 것은 꿇어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자세를 예수님 앞에서 취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분, 곧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매일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일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소경이었던 그는 기도의 응답을 얻었고,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할 차례입니다. 주님이심을 알아 뵙고 있기에 주님께 입으로만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며, 온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저의 주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문제 20: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9,39)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는 구원을 베풀고, 더 명확하게 하느님의 일을 보게 하며, 세상 모든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②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변화된 삶을 요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음이 없는 바리사이들처럼 형식적으로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고,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③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싶지만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빛을 비추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빛의 자녀”로서 살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문제 21: 죄가 있는 사람과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① 죄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거나,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소경이요, 죄를 짓는 것입니다.
②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으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본다.”고 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본다.”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본다고 자처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니,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없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신앙인이면서도 계산하고, 내 것 만을 챙긴다면 나는 아직 소경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것을 볼 수 있고, 빛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사람들은 치유 받은 소경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와 함께 기뻐해 줄 수 있을까요?
③ 나는 보는데 친구들은 못 보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 친구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아야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내가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4. 공지사항
① 내 옆에 있는 이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기
②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 위해 노력하기
③ 참된 것을 보기 위해 마음의 눈을 활짝 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