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
1. 말씀읽기: 요한11,1-45
라자로가 죽다
1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10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11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2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13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14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16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18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다
28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30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32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살려 주십니다. 라자로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오빠였고, 예수님께서는 이 가족과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은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큰 희망과 기쁨이 되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서 나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부활시켜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니 주님께서는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봅시다.
2.1. 병을 앓고 있는 라자로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요한11,1-2)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와 그의 자매들과 각별히 지내셨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집에 머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아 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① 라자로의 병을 알리는 마리아와 마르타
라자로가 죽어가자 동생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요한11,3)라고 알려 드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라자로의 병을 알리면서도 “저희 집에 오셔서”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하는 이가 앓고 있다고만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 드립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라자로를 예수님만이 살려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 라자로의 병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전갈을 들으셨지만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요한11,4)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어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 세상의 죽음을 없애버리기에 하느님께서는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라자로가 예수님을 자비를 통하여 살아나게 되니, 라자로의 부활을 통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2.2. 라자로에게로 가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묵으셨습니다. 이것은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많이 사랑하셨다는 이야기와는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체하신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라자로의 병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어 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체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일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한 친구를 도와주는데 있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더 머무신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요한11,7)라고 말씀하십니다.
청하는 이의 기도를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는 예수님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내 방식대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청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를 드리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불평해서는 결코 안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① 제자들의 만류
유다로 가자는 말씀에 제자들은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요한11,8)하며 여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에 가시면 예수님께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입 속으로 왜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시는지 제자들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일을 하러 올라가시려는 것입니다.
② 당신의 길을 가시려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걱정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요한1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라면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걸려 넘어질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로 가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의 때(십자가의 죽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의 때가 다가오면 그 때 비로소 유다인에게 잡혀 수난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③ 라자로를 살리시려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로 가시려는 이유는 라자로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11,11) 여기서 “잠”은 죽음의 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깨운다는 것은 죽음에서 부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고 하시는 것은 “내가 라자로를 다시 살리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요한11,12)라고 말씀드리며, 라자로가 죽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라자로는 죽었다.”(요한11,14)
④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예수님께는 지금 제자들만 보입니다. 수난과 죽음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걱정해서입니다. 제자들이 굳은 믿음이 있어야 만이 온 세상에 가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와 함께 계셨다면 라자로는 죽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을 더 키워 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요한11,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라자로에게로 가면 죽은 라자로를 제자들이 볼 것이고,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이 보게 될 것이고,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⑤ 위험을 감수하려는 제자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의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바라보시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이때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11,16)라고 말합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이 닥친다 할지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굳은 결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동료 제자들에게도 그런 결심을 갖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만일 토마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봅시다. 두려움에 떨면서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못가겠으니 예수님 혼자 다녀오시지요. 혹시 예수님과 동행하실 분들은 함께 다녀오세요.”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어려움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죽음 앞에서 그의 진실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요? 나에게는 토마스와 같은 마음이 있을까요?
2.3. 라자로의 죽음
① 이미 죽은 라자로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가 보시니 라자로는 이미 죽었고,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킬로미터 정도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습니다.
② 마르타와 예수님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상황도 알고 있었지만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 주지 않으신 예수님께 조금 서운했을 것입니다. 아니 오빠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가까운데 계시는데 오시지도 않고, 큰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오빠를 죽게 내 버려두심에 대해서…,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11,21)
그런데 기적을 인간 편에서 하느님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생명도 죽음도, 기쁨도 고통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③ 라자로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마르타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2)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타는 죽은 오빠를 예수님께 살려 달라고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으로 보아서, 지금 죽은 오빠를 살려달라는 청원은 드리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11,23)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오빠 라자로를 다시 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오빠를 살려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르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를 고백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3) 마르타가 고백한 것은 마지막 날에 죽은 이들이 소생되리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믿고 있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범주를 벗어나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이런 것 까지…,”하면서 불신을 드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능하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안 되는 것이지 주님께서 안 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마음을 활짝 열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④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십니다(계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11,25)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깊이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을 마르타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6) 마르타가 믿는다면 라자로는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에는 늘 믿음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 또한 예수님께 믿음을 드린다면 내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⑤ 믿음을 고백하는 마르타
마르타는 즉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11,27) 이렇게 마르타는 굳은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제 라자로는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라자로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라자로가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라자로가 죽어 있는 상태인 것처럼 죽은 이의 부활을 체험해 보지 못한 마르타도 라자로의 부활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눈앞에서 그런 표징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나는 그것을 굳게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나를 구원에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제2의 라자로가 되어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르타처럼 그렇게 “예! 주님! 저는 굳게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⑥ 마리아와 예수님
마르타는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동생 마리아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요한11,28) 그러자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슬픔에 잠겨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마리아. 처음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슬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예수님께 대한 원망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타가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알리자 그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슬픔에 가려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 이제 마리아는 힘을 내어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살아가다보면 처음에는 들리지 않는 말들이 있습니다. 또 어려운 상황이 되면 온전히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옆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들어야 하는 것은 듣고, 보아야 하는 것은 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면 많은 유다인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와 마르타가 당신께로 오게 하기 위함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께로 급히 나가는 것을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라자로의 무덤에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슬퍼해 주기 위해 마리아를 따라 나섰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자마자 그 앞에 엎드려 마르타와 같은 말을 되풀이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11,32)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라자로를 사랑해주셨던 예수님 앞에서 오빠를 생각하면서 다시 울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슬픔에 가려서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도 오빠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 앞에서 눈이 가려졌던 것입니다.
⑦ 예수님의 슬픔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마리아도 울고, 또 유다인들도 울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습니다.(요한11,33) 예수님께서 마음이 북받치는 이유는 나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과 라자로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슬픔은 라자로의 죽음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슬픔은 어둠의 세력을 향한 분노의 표현입니다. 이제 세상의 통치자인 어둠의 권세는 예수님께서 드릴 십자가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시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마음이 산란해 지셨다는 것은 “사랑하는 라자로를 살리려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가지게 될 감정, 즉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없애려고 하는 유다인들의 마음을 아시는 그 고통”이 함께 다가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하고 믿음이 없는 유다인들은 라자로의 부활을 겪고 난 후에는 예수님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품게 될 것입니다.
⑧ 군중들과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어디에 묻었느냐고 물으십니다.(요한11,34) 이것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심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 와서 보십시오.”(요한11,34)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11,35) 예수님의 눈물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신 분이시고, 동시에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를 사랑하는 어느 누구의 눈에서나 눈물을 흘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무척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요한11,36)
나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못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기쁜 삶, 의로운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만 닦아 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주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2.4. 라자로를 살리시는 예수님
유다인들 중 어떤 이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시는데 라자로가 죽지 않게 미리 손을 써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고 생각하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요한11,37)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죽은 라자로의 부활은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왜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구하기 위해 좀 더 빨리 오시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라자로의 부활이라는 엄청난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① 돌을 치워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라.”(요한11,38)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고자 말씀하셨지만, 누가 들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11,39)하고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긴 누가 있어 죽은 이를 살리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이지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②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11,40) 즉, 돌을 치우라는 것입니다.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마르타는 정신이 번쩍 났을 것입니다. 자신의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을 했는데, 행동은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더 확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내 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가끔은 내가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진지하게 말을 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말한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③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
사람들은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을 치웠습니다. 그런데 돌을 치우던 사람들은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뭘 하시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네.”하면서 불평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적은 “예”하고 응답한 후에 주어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1,41-42) 예수님의 이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도록 능력을 요청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항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갈망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어 주셨음에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청하시기만 하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11,43)고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나의 청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는 “이루어주십시오.”하지 말고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를 드리신 다음 즉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고 외치셨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굳게 믿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라자로가 손발은 천으로 싸 매인 채, 또 얼굴은 수건으로 감긴 채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무덤으로부터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된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요한11,44)라고 말씀하십니다. 라자로를 자유롭게 해 주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놀라움에 사로잡힌 유다인들에게 자기네 손을 가지고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뼈와 살이 있는 라자로임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라는 것입니다.
④ 예수님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
라자로의 부활을 체험한 유다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매달리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들은 지금도 내 주변에서 자주 발생되는 것들입니다. 내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성실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죽은 마음은 살릴 수 있습니다.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주님께로 나아간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주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내 옆에서 믿음으로 받은 은총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라자로의 부활을 체험했으니 더 굳은 믿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어떤 조건을 달지 말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못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믿지 않으니 하느님께서 안 해주시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며 라자로가 부활한 것처럼 나 또한 부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아가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내가 만일 마리아와 마르타였다면 예수님께 어떻게 말씀 드리겠습니까? 오빠 라자로가 아프고, 사람을 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죽은 지 삼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말씀드리겠습니까?
③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믿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라자로의 부활을 체험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4. 알림 및 공지
① 내가 숨을 쉬고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② 내 생각대로 주님을 판단하지 않기.
③ 내가 기도할 때는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심을 굳게 믿고 살아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