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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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관심을“ | |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
1독서의 지혜서 말씀은 하느님의 관점과 세상의 관점이 결코 같지 않음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2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기에 아무도 우리와 맞설 수 없으며,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순교자들의 신앙에 대해서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이 가하는 모진 고문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굳굳하게 지켰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박해 속에 신음하는 순교자들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지혜서의 말씀처럼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을 번제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더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험이나 칼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정 원한다면 죽음도 그 사랑을 막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환난이나 역경으로 다가오거나, 그 어떠한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던 간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로 향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매일 매일 한걸음씩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정 하상 바오로 성인은 어떤 분이신가?
정 하상(바오로, 1795-1839)은 1795년에 경기도 광주 지방의 마재에서 정 약종(아우구스띠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주 문모(야고보) 신부에게 바오로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집안은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대표적 순교 가정으로, 바오로의 부친인 정 약종 이외에 어머니 유 소사(체칠리아), 이복형 정 철상(까롤로), 누이 동생 정 정혜(엘리사벳)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치명하였다. 국법에 의하면 국사범의 아들은 처형되어야 했지만, 그의 부친과 이복형이 순교하였을 때에 정 하상은 6세의 어린 나이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 하상은 젊은 나이에 성직자 영입 운동을 재개하면서 교회 활동에 나섰다. 그는 하인이라는 미천한 자리를 자원하여 조선 왕국의 북경 파견 사절단 일행에 끼여 여러 차례에 걸쳐 북경을 드나들면서 앞으로 성직자가 입국할 수 있는 경로를 조사하였다. 북경을 왕래하면서 북경 교회와 로마 교황청에 보내는 편지를 쓰고 전달하여, 마침내 한 명의 중국인 신부와 세 명의 프랑스인 성직자를 모실 수 있었다. 정 하상은 성직자들을 자기 집에 모시고 사목 활동을 도왔다. 또한 그는 앵베르 주교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교육을 받기도 하였으나, 기대해박해로 교육이 중단되어 사제서품을 받지는 못하였다.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이 반포되자 정 하상은 자기 집에 모시고 있던 앵베르 주교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고 6월 1일(음력)에 체포되었다. 이때에 그는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자 자신의 체포를 예감하고 써놓은 「상재상서」(上宰相書)를 관가에 제출하였다. 이 소책자는 3천4백 자로 된 한국 교회 역사상 유일한 호교론으로서 당시에 천주교 탄압을 주창한 우의정 이 지연에게 올리는 글이다. 세계 교회사에 있어서 초대 교회에 등장한 호교 교부(변증론자)들이 그리스 철학 사상을 갖고 그리스도 교리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당성과 박해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듯이, 정 하상도 「상재상서」에서 유교의 사상과 윤리관을 통해서 천주교 교리(천주의 존재, 천지 창조, 십계명, 영혼론, 상선 벌악, 천주교와 불교의 비교 등)를 설명하였다. 아울러 그는 조선 유학자들이 오해 또는 비난하고 있는 천주교의 신앙(무군무부의 종교, 조상 제사의 거부, 신주 공경의 배척 등)을 해명, 옹호하였다. 또한 정 하상은 천주교는 조선 유교 사회의 전통을 거스르는 종교가 아니며 사회윤리를 올바르게 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몰아 박해함은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호소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신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 경우 어떠한 형벌이 닥치더라도 배교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6월 4일(음력)에 정 하상은 첫 심문에서 배교를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일용품으로 외국(중국)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구입하면서, 참된 종교인 천주교는 다만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배척하는 것이 옳습니까? 모든 사람이 누구를 막론하고 이 종교를 신봉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여섯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으면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1839년 8월 15일(음력)에 정 하상은 그의 동료 유 진길과 함께 모반무도(謀叛無道)의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평화로운 미소를 띠던 정 하상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의 나이 44세였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루가 9,23-26>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25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오게 될 때에 이런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말씀연구>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 우리가 받은 신앙은 피로써 물려받은 신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시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록 현세에서는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굳게 믿고 있던 그분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가끔은 어려움에 처하면 “아닌 것처럼 ”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죽기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죽기까지…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먼저 자신을 버리고, 곧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모든 시련을 참아 내고,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속에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디아 2,19-20)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25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의 개인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록 그 이익을 얻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는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목숨을 잃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해야 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득이라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 시험이라고 성당 안 오는 학생들. 고3이라고 성당 멀리하는 학생들. 비록 그들이 세상 안에서 출세를 하고 부를 쌓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까지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난해 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 때 미사 나온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고3 때 미사에 참례했다고 해서 대학 못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오게 될 때에 이런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버린다면 심판 날 사람의 아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 심판자로서 우리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세속에 대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는 것.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만은 하기 싫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2.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야기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1. 셀모임 시간을 지키기. 2. 친구들을 셀에 가입시키기.
3. 셀모임에 참석할 때 말씀 읽고 오기. 4. 셀 친구들에게 메일 보내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