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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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관심을“ | |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
◈ 이혼! 과연 둘 만의 문제인가? ◈
요셉과 요셉피나는 청년회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둘다 청년회에서 활동을 정열적으로 했고, 후배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으며,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후에 서로가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후배 청년들이 그들을 말렸다.
“아니 선배님들! 서로가 서로를 꿈에서도 그리워한다더니 이게 뭡니까? 남들도 다 부러워하는 커플이었는데 이혼이라니요…” 요셉피나가 말했다.
“난 말야. 요셉이 그런 사람인줄 몰랐어. 그리고 요셉도 많이 변했어. 술 안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일년에 손꼽을 정도이고, 그렇다고 집에 들어오면 애를 봐주기를 하나, 집안일을 도와주기를 하나,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정말 잘해주는 남편으로 보여 질지는 모르겠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원수가 따로 없었어. 지저분해서 봐주질 못하겠고, 그의 이중적인 인간성이 나를 못 견디게 만들고 있어…” 그러자 요셉이 말했다.
“난 요셉피나가 그런 여자인줄 몰랐어. 뭐 여자가 그러니? 남자가 술 좀 마실 수 있고, 늦게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니? 그리고 살림을 뭐 그렇게 엉망으로 하는지 모르겠어. 밥을 잘하나, 그렇다고 김치를 잘 담그나. 지금까지 요셉피나가 김치 담근적이 한번도 없어요. 사다가 먹던가 아니면 시댁이나 친정에서 가져다 먹고, 남들이 김치 맛있다고 하면 ‘뭐 기본이죠!’라고 말하는 그 위선. 난 요셉피나가 그런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꺼야!
그러자 청년들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면 애는 어떻게 할꺼예요? 그리고 새 어머니나 새 아버지 밑에서 아이가 큰다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클까요?”아이도 생각해 주어여 하지 않을까요?……
이혼이라는 것. 단 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자기들 둘만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먼저 이혼이라는 것은 하느님께 거역하는 행위이다. “하느님께서 묶은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한다고 하셨거늘 그들은 자기들 멋대로 하느님께서 묶어 놓으신 것을 풀려고 한다. 또한 부모님께 대한 모욕이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혼하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이 어느 부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릴 것인가? 그런데 부모가 받을 상처를 부부는 생각하는가? 또한 아이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혼! 과연 둘만의 문제인가?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르10,1-12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유다 지방과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 들었으므로 늘 하시던 대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4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5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6 그런데 천지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10 집에 돌아 와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물으니11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12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말씀연구>
살다보면 서로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정말 미운일도 있고, 그 때문에 내가 구속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되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눈에 띠게 됩니다. 살다보면 서로가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하지만 그 사람과 산다 하여도 또 시간이 지나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하지도 않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격차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그런데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그전에 내가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닌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함정을 팠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버릴 수 없다고 한다면 모세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 되고, 또 지금 예수님께서 계신 베레아에서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그 대신 헤로디아를 얻은 안티파스 왕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것이 된다. 왕에게, 특히 헤로디아에게 혼인윤리를 회상시키기 위해 용감히 대들었던 세례자 요한은 그 댓가로 목을 내 놓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안된 문제를 이용하여 이혼장에 관한 것과 거기서 저절로 이끌려 나오는 귀결을 확실히 하시려고 합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이혼을 허락했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그랬을까? 신명기 24,1-4에 그 목적이 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서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 주어야만 했다. 이 이혼은 쫓겨난 여인 편에서 보면, 자기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과 재혼을 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양식이었다. 아내를 쫓아 낸 남편은 그 여인이 두 번째 남편에게 또 이혼을 당하던가 사별하는 경우에도 다시금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혼장은 히브리말로 쓰도록 되어 있었다. 율법학자가 쓰고 두 증인이 서명하고 처의 후견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아내는 자유롭게 되고 부모가 있으면 친정에, 또 부모가 죽었을 경우는 친구 또는 친척 집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나이 적은 어린이는 아내의 손에 남겨지지만, 부양의 의무는 남편에게 있었다. 여섯 살 난 사내아이는 아버지와, 딸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경우나 아버지에게 부양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쫓겨난 아내는 재혼할 수 있었다.
이혼의 구실이 되어 있던,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란 성서에서는 확실히 또 오직 하나 아내의 불륜을 가리키고 있다. 만일 무엇인가 아내에게 비난받을 중대한 일이 남편 쪽에 있다면 이혼을 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신명22,13-19.28-29). 그리고 유배 이후의 유다인의 성서문학은 혼인을 맺으면 풀 수 없다는 데로 기울고 있었다(말라기2,14-16;잠언31,10-31)
랍비 샴마이는 아내의 간통만이 이혼장을 써 줄 이유라고 가르쳤다. 기질이 맞지 않는다던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유 때문에 이혼할 수는 없었다.
랍비 요가난과 랍비 엘리아잘도 같은 의견이었다. 랍비 키아의 아내는 정말 기질이 거칠이 거칠고 다루기 어려운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를 쫓아 내지 않아서 크게 칭찬을 받았다.
샴마이와 같은 시대 사람인 랍비 힛레루는 아내의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①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다. ②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③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했다. ④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을 했다. ⑤다른 남자와 말을 했다. ⑥고기를 지나치게 태웠다. ⑦국의 소금 맛이 너무 짰다. ⑧가정의 비밀을 다른 이들에게 흘렸다.
그리고 2세기가 되면서 유명한 랍비 아키바는 더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경우 전처를 내 쫓을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 주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무슨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이혼장이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예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모세의 율법은 유다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의 특권이 아닙니다. 그들의 고집 센 기질, 굳어진 마음, 너그러움이 모자라기 때문에 허용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입법자인 모세로서는 이혼을 금하는 법을 마련해야 했겠지만, 히브리 민족의 타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결혼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일부일처의 헤어질 수 없는 제도를 세우셨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묵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없고, 사람이 갈라 놓아서도 안되는 것입니다(혼인의 불가해소성).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이혼 관습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은 이혼장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이혼장을 쓰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전처의 권리가 아직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전처에 대하여 간통을 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뿐 아니라 일부다처제까지도 금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것도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에서는 여자에게도 남편과 이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풍속이 문란해짐에 따라 여자도 곧잘 이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팔레스티나의 왕실은 이 점에 대해 몹시 해로운 모범을 주었습니다. 헤로데 대왕의 자매 살로메는 기원전 25년, 자기 남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헤로디아는 필립보를 버리고 안티파스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도 자주 그런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서로가 신뢰를 지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이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경우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2. 친구들과의 결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어떤 때 친구들과 결별하고 싶습니까? 혹시 친구와의 다툼으로 결별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결별했다가 다시 친해진 경우도 있습니까?
3. 알림 및 공지
1. 셀모임 시간을 지키기. 2. 친구들을 셀에 가입시키기. 3. 셀모임에 참석할 때 말씀 읽고 오기.
4. 셀 친구들에게 메일 보내기 5. 견진 교리에 관심 갖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