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모임 자료

 

성서주간










탈리다 쿰


    


         “친구들에게 관심을“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1. 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신앙인들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들어 모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에 참여하게 됨을 기념하고,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온 힘을 기울이며 기도하는 축일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한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왕으로 섬겼는지에 대해서 돌아보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새로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성서 읽기 운동과 함께 성서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서 주간을 맞아 모든 신자는 성서를 늘 가까이하고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매일 매일 성서를 읽은 습관을 들입시다.




2. 오늘의 말씀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의 왕권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의 왕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리 편에 서지 않았기에 그분의 왕권을 인정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들은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갑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들은 예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마음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왕이신 예수님을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그분을 섬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반대로, 이웃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성서를 읽으면 하느님 나라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성서를 읽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성서를 하루라도 안 읽으면 영적인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성서를 대합시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 시민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18,33-37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죄, 곧 메시아를 사칭한 죄로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왕이라는 칭호는 비유다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가지의 메시아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언자들이 지적하듯이 유다 왕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및 윤리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로 인해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한 다윗의 새로운 출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다윗 왕조가 종말을 고했으며, 바빌론 유배 이후의 재건시기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화려했던, 가장 힘 있었던 다윗 왕조의 복건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했습니다.


종교 박해와 정치적 압박 등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점점 고조되었고, 이 희망은 유다 왕국의 국가적, 정치적 복건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델은 다윗왕조였습니다. 메시아 개념은 서로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유다 문헌들이 메시아나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국가적인 측면과 정치적인측면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유다인의 왕이냐고. 하지만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지만 빌라도가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본시오 빌라도! 그는 유다의 총독으로서 그리고 로마제국의 고위급 관리로서 예수님의 사건을 담당했고 그리스도교 신앙고백문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명예롭게 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기사계급 출신으로서 티베리우스 12년에 유다의 총독으로 파견되었으며, 유다의 제5대 총독으로서 10년간 총치하였습니다(서기26-36)그는 본성적으로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잔인하고 또한 뇌물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며 도둑질과 폭행을 일삼고 재판 없이 사형을 시키고 극도의 잔인성을 끊임없이 발휘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라고 묻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고대한 메시아, 즉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인 힘으로 구원할 메시아냐?”라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메시아라는 단어에 덧붙인 개념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질문으로써 질문을 응수합니다. 빌라도가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유다인이 아니었기에 예수님을 고발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가 이런 심판을 진행시킬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유다인의 왕이라는 호칭만으로 단죄를 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냐고…”빌라도는 유다인들의 모함에 대해 변호할 기회를 예수님께 드립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수단으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힘으로 세상을 뒤엎는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희생재물이 되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의 재물이 되시는,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세상의 권력에 의해서는 결코 건설되지 않으며 그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왕국의 왕은 자신을 위해 무기를 들고 싸워 줄 부하들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 세상에서는 무기력한 것이 바로 이 왕국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마태5,38-48) 비폭력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정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도 용납지 않는 해방과 구원을 주는 사랑의 나라. 힘에 의해서는 건설될 수 없는 나라. 그렇다면 폭력과 지상의 힘과의 결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우리의 물리적인 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두려워했으며 말과 정신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들은 사상과 언어의 자유를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정신의 힘은 빈껍데기가 결코 아닙니다. 한 인간이 입에 발린 말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헌신과 희생으로 무장한다면 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힘은 세상의 힘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힘은 항상 자신의 정당성, 합법성, 형이상학적 기초와 이해 등이 문제로 남습니다. 또한 정치적 힘은 절대화 경향을 가지며, 국가의 힘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최고의 절대적 권위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참된 자유의 왕국이며, 인간이 하느님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통치야말로 유일하고 참되며 신뢰할 수 있는 자유의 기반입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해하지 못하는 빌라도는 예수님께 “아뭏든 당신이 왕이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빌라도의 이 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증인이며,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증언을 통해 인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진리에 의해서 살며 진리를 전해주기에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느님의 실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왕국 편에 선 사람은 누구일까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진리 편에 선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과 같이 진리 편에 선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차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진리 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리 편에 선 사람일까요?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빌라도의 입장이 되어 예수님을 심문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먼저 질문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2. 나는 진리 편에 선 사람입니까? 진리를 등진 사람입니까?




3. 알림 및 공지


1. 셀 모임 시간을 지키기. 2. 친구들을 셀에 가입시키기.


3. 셀 모임에 참석할 때 말씀 읽고 오기. 4. 셀 친구들에게 메일 보내기 5. 견진 교리에 관심 갖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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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모임 자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서주간

    탈리다 쿰

        

             “친구들에게 관심을“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1. 그리스도왕 대축일과 성서주간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신앙인들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들어 모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에 참여하게 됨을 기념하고,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온 힘을 기울이며 기도하는 축일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한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왕으로 섬겼는지에 대해서 돌아보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새로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성서 읽기 운동과 함께 성서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서 주간을 맞아 모든 신자는 성서를 늘 가까이하고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매일 매일 성서를 읽은 습관을 들입시다.


    2. 오늘의 말씀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의 왕권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의 왕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리 편에 서지 않았기에 그분의 왕권을 인정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들은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갑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들은 예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마음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왕이신 예수님을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그분을 섬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반대로, 이웃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성서를 읽으면 하느님 나라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성서를 읽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성서를 하루라도 안 읽으면 영적인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성서를 대합시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 시민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18,33-37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죄, 곧 메시아를 사칭한 죄로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왕이라는 칭호는 비유다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가지의 메시아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언자들이 지적하듯이 유다 왕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및 윤리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로 인해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한 다윗의 새로운 출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다윗 왕조가 종말을 고했으며, 바빌론 유배 이후의 재건시기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화려했던, 가장 힘 있었던 다윗 왕조의 복건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했습니다.

    종교 박해와 정치적 압박 등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점점 고조되었고, 이 희망은 유다 왕국의 국가적, 정치적 복건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델은 다윗왕조였습니다. 메시아 개념은 서로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유다 문헌들이 메시아나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국가적인 측면과 정치적인측면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유다인의 왕이냐고. 하지만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지만 빌라도가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본시오 빌라도! 그는 유다의 총독으로서 그리고 로마제국의 고위급 관리로서 예수님의 사건을 담당했고 그리스도교 신앙고백문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명예롭게 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기사계급 출신으로서 티베리우스 12년에 유다의 총독으로 파견되었으며, 유다의 제5대 총독으로서 10년간 총치하였습니다(서기26-36)그는 본성적으로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잔인하고 또한 뇌물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며 도둑질과 폭행을 일삼고 재판 없이 사형을 시키고 극도의 잔인성을 끊임없이 발휘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라고 묻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고대한 메시아, 즉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인 힘으로 구원할 메시아냐?”라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메시아라는 단어에 덧붙인 개념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질문으로써 질문을 응수합니다. 빌라도가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유다인이 아니었기에 예수님을 고발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가 이런 심판을 진행시킬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유다인의 왕이라는 호칭만으로 단죄를 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냐고…”빌라도는 유다인들의 모함에 대해 변호할 기회를 예수님께 드립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수단으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힘으로 세상을 뒤엎는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희생재물이 되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의 재물이 되시는,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세상의 권력에 의해서는 결코 건설되지 않으며 그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왕국의 왕은 자신을 위해 무기를 들고 싸워 줄 부하들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 세상에서는 무기력한 것이 바로 이 왕국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마태5,38-48) 비폭력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정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도 용납지 않는 해방과 구원을 주는 사랑의 나라. 힘에 의해서는 건설될 수 없는 나라. 그렇다면 폭력과 지상의 힘과의 결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우리의 물리적인 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두려워했으며 말과 정신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들은 사상과 언어의 자유를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정신의 힘은 빈껍데기가 결코 아닙니다. 한 인간이 입에 발린 말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헌신과 희생으로 무장한다면 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힘은 세상의 힘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힘은 항상 자신의 정당성, 합법성, 형이상학적 기초와 이해 등이 문제로 남습니다. 또한 정치적 힘은 절대화 경향을 가지며, 국가의 힘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최고의 절대적 권위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참된 자유의 왕국이며, 인간이 하느님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통치야말로 유일하고 참되며 신뢰할 수 있는 자유의 기반입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해하지 못하는 빌라도는 예수님께 “아뭏든 당신이 왕이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빌라도의 이 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증인이며,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증언을 통해 인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진리에 의해서 살며 진리를 전해주기에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느님의 실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왕국 편에 선 사람은 누구일까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진리 편에 선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과 같이 진리 편에 선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차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진리 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리 편에 선 사람일까요?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빌라도의 입장이 되어 예수님을 심문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먼저 질문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2. 나는 진리 편에 선 사람입니까? 진리를 등진 사람입니까?


    3. 알림 및 공지

    1. 셀 모임 시간을 지키기. 2. 친구들을 셀에 가입시키기.

    3. 셀 모임에 참석할 때 말씀 읽고 오기. 4. 셀 친구들에게 메일 보내기 5. 견진 교리에 관심 갖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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