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다해부활3주일 모임자료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 21,1-19


그 뒤 예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동이라는 토마와 갈릴레아 가나 사람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 들었다.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들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 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 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 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1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다. 그물 속에는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14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


15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6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18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19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스승의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제자들 중에 시몬 베드로가




3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이렇게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고기잡는 기술을 다 잊어 먹은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고기들이 제자들을 우습게 알아서….좌우지간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4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5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날이 밝아올 무렵,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에서 예수님을 보았으나 누구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얘들아(아들들이여)”라는 말은 손아랫사람에게 친밀하게 이야기를 걸 때에 쓰는 상용어였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이나 어부에게 있어서 잡았느냐고 묻는 것은 하나의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잡은 것이 없을 때에는 대답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간단히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 들었다.


그 때의 그물은 아마도 배의 왼쪽에 걸어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면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을 얻게 됩니다.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후문: 그때 걸린 물고기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네. 우리가 저런 어부들에게 걸릴 물고기들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부활인사 드리려고 나왔다가 이렇게 잡혀부렸으니...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니까...믿거나 말거나>




7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들었다.  8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 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 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9  그들이 육지에 올라 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한 적이 있었던(루가5,1-11)것을 회상하였던 요한은 이것을 보고 곧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베드로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곧은 성품과 격정적 행동파인 베드로는 일을 할 때 입는 작업복 위에 겉옷을 두르고 호수에 뛰어듭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빨리 가려고 그렇게 물에  뛰어든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애서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생선과 빵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물 속에는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153”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것은 1에서 17까지를 더한 숫자입니다. 17은 또 10과 7을 더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10과 7은 모두 완전한 숫자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으로, 낙담하여 옛날의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다시 생기를 주시고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또한 기적적인 고기잡이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선교를 의미하며 터지지 않는 그물은 교회의 상징(마태13,47-50)이며, 잡은 고기는 사도적 선교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신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1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께 누구시냐고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경과 일종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선뜻 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방과 생선을 집어서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예수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5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만남. 그것은 안드레아가 베드로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보았소”라고 했고 그래서 함께 예수님께로 가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눈여겨 보시며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는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게파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첫 만남에서 게파(바위, 베드로)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바위)라는 이름은 점차 시몬의 이름으로 고정되었고 사도단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이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떠나 갈 때 예수님께서는 12사도들에게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도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요한6,68-69)라고 고백을 합니다. 빈 무덤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도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다다랐지만 베드로를 먼저 무덤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호명과 질문: 요한의 아들 시몬아(호명),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질문).


시몬 베드로이 대답: 예! 주님! 아니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명부여: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세 번의 질문은 아마도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답변마다 사명을 수여하십니다. 당신이 없는 동안에 양들의 목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목자로서 신자들을 잘 돌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렇게 목숨을 바쳤습니다.




18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안에서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미리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네로 통치시기인 서기 64년에 순교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에 처해졌는데 전승에 의하면 어떻게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매달려 죽을 수 있냐고 하면서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순교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도들을 죽음을 크게 애통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니 슬퍼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천상탄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19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제 죽음은 믿는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고 바라는 나에게 세상에서의 죽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죽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암시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그렇게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삶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따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따라야 할 차례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즉각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주실때의 모습으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기적의 기억으로…나는 어떻게 “당신은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지, 나는 어떻게 “당신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지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그렇게 즉각 받아들이는지도…




2.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3.신앙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내가 순교할 기회는 없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더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칠까요? 아니면 세상에 살면서 이루고 있던 것을 하나 둘 잘 정리하고 죽임을 받아들일까요?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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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다해부활3주일 모임자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 21,1-19

    그 뒤 예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동이라는 토마와 갈릴레아 가나 사람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 들었다.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들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 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 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 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1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다. 그물 속에는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14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

    15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6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18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19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스승의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제자들 중에 시몬 베드로가


    3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이렇게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고기잡는 기술을 다 잊어 먹은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고기들이 제자들을 우습게 알아서….좌우지간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4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5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날이 밝아올 무렵,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에서 예수님을 보았으나 누구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얘들아(아들들이여)”라는 말은 손아랫사람에게 친밀하게 이야기를 걸 때에 쓰는 상용어였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이나 어부에게 있어서 잡았느냐고 묻는 것은 하나의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잡은 것이 없을 때에는 대답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간단히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 들었다.

    그 때의 그물은 아마도 배의 왼쪽에 걸어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면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을 얻게 됩니다.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후문: 그때 걸린 물고기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네. 우리가 저런 어부들에게 걸릴 물고기들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부활인사 드리려고 나왔다가 이렇게 잡혀부렸으니...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니까...믿거나 말거나>


    7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들었다.  8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 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 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9  그들이 육지에 올라 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한 적이 있었던(루가5,1-11)것을 회상하였던 요한은 이것을 보고 곧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베드로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곧은 성품과 격정적 행동파인 베드로는 일을 할 때 입는 작업복 위에 겉옷을 두르고 호수에 뛰어듭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빨리 가려고 그렇게 물에  뛰어든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애서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생선과 빵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물 속에는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153”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것은 1에서 17까지를 더한 숫자입니다. 17은 또 10과 7을 더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10과 7은 모두 완전한 숫자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으로, 낙담하여 옛날의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다시 생기를 주시고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또한 기적적인 고기잡이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선교를 의미하며 터지지 않는 그물은 교회의 상징(마태13,47-50)이며, 잡은 고기는 사도적 선교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신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1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께 누구시냐고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경과 일종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선뜻 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방과 생선을 집어서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예수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5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만남. 그것은 안드레아가 베드로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보았소”라고 했고 그래서 함께 예수님께로 가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눈여겨 보시며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는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게파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첫 만남에서 게파(바위, 베드로)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바위)라는 이름은 점차 시몬의 이름으로 고정되었고 사도단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이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떠나 갈 때 예수님께서는 12사도들에게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도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요한6,68-69)라고 고백을 합니다. 빈 무덤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도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다다랐지만 베드로를 먼저 무덤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호명과 질문: 요한의 아들 시몬아(호명),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질문).

    시몬 베드로이 대답: 예! 주님! 아니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명부여: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세 번의 질문은 아마도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답변마다 사명을 수여하십니다. 당신이 없는 동안에 양들의 목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목자로서 신자들을 잘 돌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렇게 목숨을 바쳤습니다.


    18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안에서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미리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네로 통치시기인 서기 64년에 순교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에 처해졌는데 전승에 의하면 어떻게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매달려 죽을 수 있냐고 하면서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순교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도들을 죽음을 크게 애통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니 슬퍼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천상탄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19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제 죽음은 믿는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고 바라는 나에게 세상에서의 죽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죽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암시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그렇게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삶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따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따라야 할 차례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즉각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주실때의 모습으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기적의 기억으로…나는 어떻게 “당신은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지, 나는 어떻게 “당신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지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그렇게 즉각 받아들이는지도…


    2.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3.신앙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내가 순교할 기회는 없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더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칠까요? 아니면 세상에 살면서 이루고 있던 것을 하나 둘 잘 정리하고 죽임을 받아들일까요?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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