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5,1-10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 가까이 모여왔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 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다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찾아내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아냈습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혹은 어떤 부인이, 드락메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찾아내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를 찾아냈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 가까이 모여왔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좌우지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단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 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다니지 않겠습니까?  5  그러다가 찾아내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아냈습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7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회개한 죄인이 공덕이 있어서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혹은 어떤 부인이, 드락메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습니까?  9  그러다가 찾아내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를 찾아냈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목자와 동료를 잃어버린 양이고, 길을 떠난 양은 목자와 양의 무리가 싫어서 떠난 양입니다. 신앙 안에서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탕자의 귀향


죄인 하나의 회개를 원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께서는 전하시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죄인과 함께 있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잃었던 양 한 마리의 비유와 잃었던 은전의 비유와 그리고 오늘 복음의 탕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 이야기는 두 형제를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려는 의도를 지닌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선하시고, 두 아들을 사랑하시며,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 나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두  사람(회개한 죄인,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한 식탁에 앉아서 자신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작은 아들은 스스로 용서의 포옹 속으로 들어왔지만, 큰 아들은 뒤에 서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면서도 아직 자신의 분노를 수그리지 못하고 아울러 아버지의 어루만져주심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자(작은아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큰 아들)이 못마땅해 하고 있기에 그들에게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하시려고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항구한 의인들에 대해서도 기뻐하시지만(큰아들) 죄인의 회개를 더욱 기뻐하시는 아버지 사랑의 신비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배은망덕한 아들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없는 아들, 언젠가는 돌아 오리라는 희망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게 하였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아들, 용서하는 아버지.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아버지.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아버지. 제일 좋은 옷은 아들을 용서하고 아들에게 본래의 권리와 지위를 다시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일 좋은 옷”은 위대한 인물만이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넓은 값진 옷을 의미합니다. 가락지는 특별한 권위와 명예의 표시입니다. 신은 자유인의 표시입니다. 종들은 맨발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 둘을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인생 여정을 따라 그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은 아들이든 큰 아들이든 간에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어야 할 소명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귀향하는 자녀에게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또 그에게서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환영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손길은 영원한 축복이며,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은 영원한 평화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다가오는 형제들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아버지와 두 아들 중 자신이 해당되는 대상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 입니다. 그분께 용서를 청하면서 나는 다른 이들도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야만 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한번 멀어지면 더 멀어지는 듯 합니다. 혹시 내가 받아들여야만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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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5,1-10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 가까이 모여왔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 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다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찾아내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아냈습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혹은 어떤 부인이, 드락메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찾아내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를 찾아냈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 가까이 모여왔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좌우지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단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 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다니지 않겠습니까?  5  그러다가 찾아내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아냈습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7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회개한 죄인이 공덕이 있어서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혹은 어떤 부인이, 드락메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습니까?  9  그러다가 찾아내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를 찾아냈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목자와 동료를 잃어버린 양이고, 길을 떠난 양은 목자와 양의 무리가 싫어서 떠난 양입니다. 신앙 안에서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탕자의 귀향

    죄인 하나의 회개를 원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께서는 전하시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죄인과 함께 있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잃었던 양 한 마리의 비유와 잃었던 은전의 비유와 그리고 오늘 복음의 탕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 이야기는 두 형제를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려는 의도를 지닌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선하시고, 두 아들을 사랑하시며,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 나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두  사람(회개한 죄인,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한 식탁에 앉아서 자신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작은 아들은 스스로 용서의 포옹 속으로 들어왔지만, 큰 아들은 뒤에 서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면서도 아직 자신의 분노를 수그리지 못하고 아울러 아버지의 어루만져주심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자(작은아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큰 아들)이 못마땅해 하고 있기에 그들에게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하시려고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항구한 의인들에 대해서도 기뻐하시지만(큰아들) 죄인의 회개를 더욱 기뻐하시는 아버지 사랑의 신비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배은망덕한 아들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없는 아들, 언젠가는 돌아 오리라는 희망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게 하였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아들, 용서하는 아버지.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아버지.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아버지. 제일 좋은 옷은 아들을 용서하고 아들에게 본래의 권리와 지위를 다시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일 좋은 옷”은 위대한 인물만이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넓은 값진 옷을 의미합니다. 가락지는 특별한 권위와 명예의 표시입니다. 신은 자유인의 표시입니다. 종들은 맨발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 둘을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인생 여정을 따라 그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은 아들이든 큰 아들이든 간에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어야 할 소명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귀향하는 자녀에게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또 그에게서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환영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손길은 영원한 축복이며,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은 영원한 평화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다가오는 형제들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아버지와 두 아들 중 자신이 해당되는 대상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 입니다. 그분께 용서를 청하면서 나는 다른 이들도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야만 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한번 멀어지면 더 멀어지는 듯 합니다. 혹시 내가 받아들여야만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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