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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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 |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 |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4,12-23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 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전도 활동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믿지 않은 이들에게,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얼마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깊이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 말씀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죄상을 일깨워주었지만(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은 큰 죄다) 덕분에 감옥에 갇히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의 길을 닦은 세례자 요한은 이제 그가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주인공이 나설 차례 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잡혔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고에서도 쓰이는 말입니다. 이것은 붙잡힌 이의 무죄함을 드러내고, 붙잡힘(체포)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형화된 문구입니다. 예언자들의 운명은 예수님 안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직분을 준비하기 시작하신 곳이 갈릴래아였고,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활동도 갈릴래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려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곳은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방인의 갈릴래아로부터 솟아났습니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가파르나움도 나자렛과 같이 구약 성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인데, 역사가 요세프스 프라비우사가 한 번, 탈무드가 두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자렛에서 7킬로 쯤 떨어진 데에 있는 이 동네는 예수님 시절, 다마스커스에서 지중해의 앗코로 가서 거기서 바닷길을 통해 에집트로 건너 가는 길과 가까웠기 때문에 군사와 상업의 요충지가 된 곳입니다. 이 중요한 교통망은 십자군 시대까지 이른바 바다의 길<via maris>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가파르나움은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둔 헤로데 안티파스의 분국에 속해 있었으나, 국경이 가까웠기 때문에 헤로데의 학정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쉽게 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동네가 즈불룬 족령(族領)에 가까운 납달리 족령지에 속해 있다고 마태오가 기록하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8,23-9,1)의 성취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호수로 가는 길은 요르단강과 에스드레론 평야를 지나서 다마스커스에서 가르멜산에 이르고 있는데,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대상이 이 길로 다녔다고 합니다.요르단강 건너편은 곧 요르단강 동쪽 기슭인데 옛 페레아, 지금의 트란스요르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이 곳을 다니셨습니다.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방인의 갈릴래야는 이방인의 지방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를 이방인의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싸르마낫살 시대(기원전 8세기)에 우상숭배하는 많은 이민이 이 곳에 옮겨 와 살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야곱의 후예가 아닌 사람들을 모두 이방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갈릴래아는 작은 도시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인구가 조밀하였습니다. 백성은 유다인보다 거칠었고, 단순 소박하고 애국심과 종교심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가파르나움도 갈릴래아에 있었으나, 이 동네 사람들의 기질은 그 호수와 같이 쉽게 동요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에집트와 시리아 대상들이 오갔으며 그리스인과 그 밖의 이방인과의 교통이 유다적인 엄격한 종교 규율을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한 유다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이단자와 같이 보여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로 가까운 나라들과 쉽게 연락할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곳을 선교의 중심지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은 참 하느님을 모르고 우상숭배에 빠져 죽음의 그늘진 땅에 앉아 있는 이 나라 이방인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 백성들에게 메시아의 선교로써 큰 빛이 빛나리라고 예언자는 예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니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결국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분께서 다스리셨지만 이제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령을 몰라내고, 죄의 용서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는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표징을 감지한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는 바로 “회개”입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악명 높은 법 질서 파괴자나 세리들, 창녀들도 배제하지 않는, 그리고 가난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이 “하느님의 복음”은 미움과 시기와 사악함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지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다가왔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미래의 어느 때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도래하고 있으며,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거기에“ 있다고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아직 완전한 힘과 위엄으로 개입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다가왔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문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은 위협적이며 동시에 자극적이지만, 그 가까움은 그저 가까움일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과 민족들에게 폭력과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고대하며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 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속죄와 회개의 외침이 구원에 선행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내 생활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 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시몬은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첫 번째로 불리움을 받습니다. 사도단의 명단이 언급되는 여러 곳에서 항상 이 두 이름이 맨 앞에 나오지만 언제나 베드로가 첫 번째로 나옵니다. 이것은 시몬 베드로가 첫 번째로 불렸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저기 예수님! 연봉은 얼마나 주시는지요!” “숙식은 제공되는지요?”“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받게 될 것은 무엇이며…..”이러한 질문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르심과 응답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의 부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며 철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부르실 때 거기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부름 내용은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방랑하며 떠도는 스승은 그의 길을 감에 있어서 제자들에 앞서 걸어가고, 그들은 스승의 뒤를 따르며, 스승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이끌도록 맡겨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승을 따르는 자는 이제부터 스승을 자신의 삶과 야망을 정해 주는 존재로서,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며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주는 동시에 자신을 그의 과제에 참여케 하는 그러한 스승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스승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고, 내세우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이들은 생업을 완전히 버리고 예수님의 배로 옮아 탔습니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두 아들에게는 배와 그물을 던지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도 큰 괴로움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것 저것 계산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낚고 있습니다. 그물로써 고기를 잡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낚고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 낚인 사람입니다.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 예수님의 뜻에 따라야하겠습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지금까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예수님의 사람이 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행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공지사항
1. 지난주부터 은총표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가지시기 바랍니다
➮ 셀모임 참석1장, 미사참석1장, 복음쓰기1장.
2. 희망찬 새로운 이 해에 학생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3. 올 해는 학생미사에 빠지지 맙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연중 제 3주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4,12-23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 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전도 활동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믿지 않은 이들에게,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얼마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깊이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 말씀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죄상을 일깨워주었지만(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은 큰 죄다) 덕분에 감옥에 갇히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의 길을 닦은 세례자 요한은 이제 그가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주인공이 나설 차례 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잡혔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고에서도 쓰이는 말입니다. 이것은 붙잡힌 이의 무죄함을 드러내고, 붙잡힘(체포)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형화된 문구입니다. 예언자들의 운명은 예수님 안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직분을 준비하기 시작하신 곳이 갈릴래아였고,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활동도 갈릴래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려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곳은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방인의 갈릴래아로부터 솟아났습니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가파르나움도 나자렛과 같이 구약 성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인데, 역사가 요세프스 프라비우사가 한 번, 탈무드가 두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자렛에서 7킬로 쯤 떨어진 데에 있는 이 동네는 예수님 시절, 다마스커스에서 지중해의 앗코로 가서 거기서 바닷길을 통해 에집트로 건너 가는 길과 가까웠기 때문에 군사와 상업의 요충지가 된 곳입니다. 이 중요한 교통망은 십자군 시대까지 이른바 바다의 길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가파르나움은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둔 헤로데 안티파스의 분국에 속해 있었으나, 국경이 가까웠기 때문에 헤로데의 학정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쉽게 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동네가 즈불룬 족령(族領)에 가까운 납달리 족령지에 속해 있다고 마태오가 기록하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8,23-9,1)의 성취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호수로 가는 길은 요르단강과 에스드레론 평야를 지나서 다마스커스에서 가르멜산에 이르고 있는데,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대상이 이 길로 다녔다고 합니다.요르단강 건너편은 곧 요르단강 동쪽 기슭인데 옛 페레아, 지금의 트란스요르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이 곳을 다니셨습니다.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방인의 갈릴래야는 이방인의 지방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를 이방인의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싸르마낫살 시대(기원전 8세기)에 우상숭배하는 많은 이민이 이 곳에 옮겨 와 살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야곱의 후예가 아닌 사람들을 모두 이방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갈릴래아는 작은 도시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인구가 조밀하였습니다. 백성은 유다인보다 거칠었고, 단순 소박하고 애국심과 종교심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가파르나움도 갈릴래아에 있었으나, 이 동네 사람들의 기질은 그 호수와 같이 쉽게 동요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에집트와 시리아 대상들이 오갔으며 그리스인과 그 밖의 이방인과의 교통이 유다적인 엄격한 종교 규율을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한 유다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이단자와 같이 보여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로 가까운 나라들과 쉽게 연락할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곳을 선교의 중심지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은 참 하느님을 모르고 우상숭배에 빠져 죽음의 그늘진 땅에 앉아 있는 이 나라 이방인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 백성들에게 메시아의 선교로써 큰 빛이 빛나리라고 예언자는 예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니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결국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분께서 다스리셨지만 이제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령을 몰라내고, 죄의 용서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는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표징을 감지한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는 바로 “회개”입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악명 높은 법 질서 파괴자나 세리들, 창녀들도 배제하지 않는, 그리고 가난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이 “하느님의 복음”은 미움과 시기와 사악함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지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다가왔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미래의 어느 때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도래하고 있으며,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거기에“ 있다고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아직 완전한 힘과 위엄으로 개입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다가왔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문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은 위협적이며 동시에 자극적이지만, 그 가까움은 그저 가까움일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과 민족들에게 폭력과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고대하며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 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속죄와 회개의 외침이 구원에 선행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내 생활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 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시몬은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첫 번째로 불리움을 받습니다. 사도단의 명단이 언급되는 여러 곳에서 항상 이 두 이름이 맨 앞에 나오지만 언제나 베드로가 첫 번째로 나옵니다. 이것은 시몬 베드로가 첫 번째로 불렸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저기 예수님! 연봉은 얼마나 주시는지요!” “숙식은 제공되는지요?”“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받게 될 것은 무엇이며…..”이러한 질문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르심과 응답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의 부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며 철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부르실 때 거기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부름 내용은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방랑하며 떠도는 스승은 그의 길을 감에 있어서 제자들에 앞서 걸어가고, 그들은 스승의 뒤를 따르며, 스승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이끌도록 맡겨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승을 따르는 자는 이제부터 스승을 자신의 삶과 야망을 정해 주는 존재로서,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며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주는 동시에 자신을 그의 과제에 참여케 하는 그러한 스승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스승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고, 내세우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이들은 생업을 완전히 버리고 예수님의 배로 옮아 탔습니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두 아들에게는 배와 그물을 던지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도 큰 괴로움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것 저것 계산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낚고 있습니다. 그물로써 고기를 잡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낚고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 낚인 사람입니다.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 예수님의 뜻에 따라야하겠습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지금까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예수님의 사람이 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행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공지사항
1. 지난주부터 은총표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가지시기 바랍니다
➮ 셀모임 참석1장, 미사참석1장, 복음쓰기1장.
2. 희망찬 새로운 이 해에 학생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3. 올 해는 학생미사에 빠지지 맙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