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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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 |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1. 말씀읽기: 마태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께서는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십니다. 아픈 사람들, 마귀들린 사람들…예수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와!…지금은 시간 없는데…”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띠로와 시돈 지방은 옛 페니키아로 현재의 레바논의 항구 도시들입니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가나안 부인은 그 지방 토박이 부인이란 뜻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7,26) 그 부인은 헬라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신이었다고 전해 줍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악령 들린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분 앞에 엎드린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유다인과 이방인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종종 그러시는 것처럼 그분은 이해를 드러내 주는 은유를 창출해 내십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잘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이방인 여인을 외면하시자 제자들은 돌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 하여 예수님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 때문에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주인과 종,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여기서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양들처럼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자 파견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유다인들로부터라는 원칙을 예수님께서 따르고 계신 것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삶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이 여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높여 주님으로 고백했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드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이방께 그리스도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한꺼번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이 입으로만 그렇게 고백하는지, 온 마음으로 고백하는지 들어나겠지요. 그런데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혹시 입으로만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 또는 아브라함의 자녀로 자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빵은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강아지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실상 이방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또는 돼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강아지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보내졌으며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우선권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가라(마태10,6).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자녀라 여기면서 때때로 이방인들을 멸시하여 “개”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방인 여인을 그렇게 비하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멸시 속에서 쫓겨 다니는 들개가 아니라, 사람 옆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개(강아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을 사람과 개로 표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우선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 이방인 여인은 구원을 유다인들에게 베푸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작은 조각이라도 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보이는 여인은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 여인이 그 믿음을 끝까지 갖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어림 없었을 것입니다.
“싫으면 관둬유.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유? 하느님의 아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만 보고 있데유? 난 그런 하느님 안 믿어유!”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이방인 여인은 그의 믿음 때문에 딸 아이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확고하고 인내롭게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매달리는 이 여인. 하느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 이 여인. 이방인 여인을 바라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믿음과 겸손과 신뢰를 가지고 끈기 있게 그분을 향하는 것입니다. 안 들어주실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들어주시면 엄청 감사하고, 안 들어주시면 들어 주실 때까지 청하는 자세. 그것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만일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나 또한 그런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부모님 덕분에 살아난 적은 없습니까?
2. 계속되는 거절 체험 속에서도 그분께 항구하게 매달리면서 청원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내가 청원 기도를 드렸을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여 주셨습니까?
4.공지사항
1. 이제 개학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개학준비에 최선을 다 합시다.
2.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평일미사에 한번도 참례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평일미사에 참례해 봅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연중 제 20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1. 말씀읽기: 마태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께서는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십니다. 아픈 사람들, 마귀들린 사람들…예수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와!…지금은 시간 없는데…”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띠로와 시돈 지방은 옛 페니키아로 현재의 레바논의 항구 도시들입니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가나안 부인은 그 지방 토박이 부인이란 뜻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7,26) 그 부인은 헬라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신이었다고 전해 줍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악령 들린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분 앞에 엎드린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유다인과 이방인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종종 그러시는 것처럼 그분은 이해를 드러내 주는 은유를 창출해 내십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잘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이방인 여인을 외면하시자 제자들은 돌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 하여 예수님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 때문에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주인과 종,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여기서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양들처럼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자 파견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유다인들로부터라는 원칙을 예수님께서 따르고 계신 것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삶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이 여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높여 주님으로 고백했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드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이방께 그리스도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한꺼번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이 입으로만 그렇게 고백하는지, 온 마음으로 고백하는지 들어나겠지요. 그런데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혹시 입으로만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 또는 아브라함의 자녀로 자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빵은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강아지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실상 이방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또는 돼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강아지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보내졌으며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우선권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가라(마태10,6).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자녀라 여기면서 때때로 이방인들을 멸시하여 “개”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방인 여인을 그렇게 비하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멸시 속에서 쫓겨 다니는 들개가 아니라, 사람 옆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개(강아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을 사람과 개로 표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우선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 이방인 여인은 구원을 유다인들에게 베푸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작은 조각이라도 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보이는 여인은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 여인이 그 믿음을 끝까지 갖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어림 없었을 것입니다.
“싫으면 관둬유.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유? 하느님의 아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만 보고 있데유? 난 그런 하느님 안 믿어유!”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이방인 여인은 그의 믿음 때문에 딸 아이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확고하고 인내롭게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매달리는 이 여인. 하느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 이 여인. 이방인 여인을 바라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믿음과 겸손과 신뢰를 가지고 끈기 있게 그분을 향하는 것입니다. 안 들어주실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들어주시면 엄청 감사하고, 안 들어주시면 들어 주실 때까지 청하는 자세. 그것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만일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나 또한 그런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부모님 덕분에 살아난 적은 없습니까?
2. 계속되는 거절 체험 속에서도 그분께 항구하게 매달리면서 청원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내가 청원 기도를 드렸을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여 주셨습니까?
4.공지사항
1. 이제 개학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개학준비에 최선을 다 합시다.
2.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평일미사에 한번도 참례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평일미사에 참례해 봅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