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 21주일 셀 모임 자료

 

연중 제 2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1. 말씀읽기: 마태 16,13-20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베드로 사도! 훌륭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신앙고백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뜻 보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다시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내 온 몸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셀 모임에 참석하기도 어려워 하는데, 나는 과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가?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나는 예수님을 알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4.공지사항


1. 이제 개학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개학준비에 최선을 다 합시다.


2.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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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2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1. 말씀읽기: 마태 16,13-20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베드로 사도! 훌륭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신앙고백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뜻 보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다시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내 온 몸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셀 모임에 참석하기도 어려워 하는데, 나는 과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가?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나는 예수님을 알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4.공지사항

    1. 이제 개학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개학준비에 최선을 다 합시다.

    2.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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