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22주일 셀 모임 자료,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연중 제 22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1. 말씀읽기: 마태 16,21-27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신앙고백을 하고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수위권을 맡긴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제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이 되었다는 생각. 이제 때가 된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들은 베드로는 펄쩍 뛰고 있습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공연을 가기 위해서는 티켓이 있어야 합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영복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까지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참다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한 길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인생이 무의미한 것 같다는 이유 때문에 심약하고 무감각해진 감정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결단과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던 것과 같이 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기(필립비2,6-8)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결단은 자신을 버리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서로를 보충해 주며 한 가지 동일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면, 결국 그것이 실제의 죽음에 관계되는 것이라 할지라도(순교, 박해 등) 자기 자신의 이익을 끊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의 숭고한 규범입니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얻을 것이고 잃은 사람은 잃었다고 해야 옳은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시며 다른 차원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보존하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목숨을 잃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박해자들은 세상에서 그들의 목숨을 얻었겠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면(영원한 생명) 그것을 무엇으로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종교는 건강종교 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살을 빼기 위해 별의 별 것을 다하고, 건강을 위해 안하는 것 빼고는 다 합니다. 굉장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썩어 없어질 그 육신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많은 것을 투자하는데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왜 그리도 인색한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어떤 학생들은 성당에 오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공부만을 하는 학생들.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판 때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런데 그때 “넌 안돼!”라는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 오늘부터 조금씩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연옥은 가야 좀 가능성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부모님께서 외출하시면서 방을 정리해 놓으라고 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심히 놀기만 하다가 부모님께서 오셨을 때, 지저분한 상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드리게 된다면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신앙생활 좀더 계획을 세워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복음에서 와 닿는 부분은 어느 말씀입니까?






2.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만일 내일 나에게 죽음이 닥친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아쉽겠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합시다.


2. 셀이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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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 22주일 셀 모임 자료,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22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1. 말씀읽기: 마태 16,21-27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신앙고백을 하고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수위권을 맡긴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제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이 되었다는 생각. 이제 때가 된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들은 베드로는 펄쩍 뛰고 있습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공연을 가기 위해서는 티켓이 있어야 합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영복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까지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참다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한 길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인생이 무의미한 것 같다는 이유 때문에 심약하고 무감각해진 감정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결단과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던 것과 같이 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기(필립비2,6-8)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결단은 자신을 버리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서로를 보충해 주며 한 가지 동일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면, 결국 그것이 실제의 죽음에 관계되는 것이라 할지라도(순교, 박해 등) 자기 자신의 이익을 끊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의 숭고한 규범입니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얻을 것이고 잃은 사람은 잃었다고 해야 옳은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시며 다른 차원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보존하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목숨을 잃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박해자들은 세상에서 그들의 목숨을 얻었겠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면(영원한 생명) 그것을 무엇으로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종교는 건강종교 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살을 빼기 위해 별의 별 것을 다하고, 건강을 위해 안하는 것 빼고는 다 합니다. 굉장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썩어 없어질 그 육신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많은 것을 투자하는데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왜 그리도 인색한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어떤 학생들은 성당에 오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공부만을 하는 학생들.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판 때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런데 그때 “넌 안돼!”라는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 오늘부터 조금씩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연옥은 가야 좀 가능성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부모님께서 외출하시면서 방을 정리해 놓으라고 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심히 놀기만 하다가 부모님께서 오셨을 때, 지저분한 상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드리게 된다면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신앙생활 좀더 계획을 세워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복음에서 와 닿는 부분은 어느 말씀입니까?



    2.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만일 내일 나에게 죽음이 닥친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아쉽겠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합시다.

    2. 셀이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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