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14주일 셀모임자료: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연중 제 14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 마르코6,1-6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마태 13,54-58 ; 루카 4,16-30)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님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만 정말로 어두웠습니다. 기뻐해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대방을 높여주면 내가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율법학자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던 사람들. 그래서 구원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고향으로 가시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 고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까요? 그래서 구원에로 초대받을까요?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갈까요?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서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해설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①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② 어디서 저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술이 다른 나라에서는 다 성공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만큼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예술”로서 받아들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사기치나 보자!”라고 기술을 파악하려고 한답니다.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뻐하고 실천하면 될 것이거늘, 그들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려고 합니다.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까지 감명을 받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받은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깎아 내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기에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향 사람들은 예언자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고, 친척과 집안 사람들도 지켜보았으나, 그들 눈에 보여지는 것과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에 진면목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보여 지지 않는 것도 보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공적으로 드러내서 활동하시기를 권고”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고, 그렇게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그리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주셨다고 전해주고 있는데,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따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침해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하는 모든 이들의 청을 예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 또한 그것을 명심하고 예수님께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습니까? 그분께 마음을 활짝 열던지, 걸림돌에 걸려서 닫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나자렛 사람들은 걸림돌에 걸려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걸림돌 때문에 넘어진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닫힌 마음은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자렛 사람들(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2. 내가 나자렛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자렛 사람들처럼 그렇게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까?4.






4. 공지사항


1. 남자 축구부를 모집합니다. 이 축구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상이며, 한달에 한번 정도 다른 본당과 시합을 하며, 건강과 친목을 도모할 계획입니다. 첫 모임은 7월 9일 오후 2시 사제관입니다.


2. 셀 모임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례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원들에게 서로 연락하면서, 꼭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3. 시험 때면 당연히 성당에 안 나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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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14주일 셀모임자료: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14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 마르코6,1-6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마태 13,54-58 ; 루카 4,16-30)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님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만 정말로 어두웠습니다. 기뻐해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대방을 높여주면 내가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율법학자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던 사람들. 그래서 구원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고향으로 가시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 고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까요? 그래서 구원에로 초대받을까요?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갈까요?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서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해설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①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② 어디서 저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술이 다른 나라에서는 다 성공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만큼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예술”로서 받아들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사기치나 보자!”라고 기술을 파악하려고 한답니다.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뻐하고 실천하면 될 것이거늘, 그들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려고 합니다.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까지 감명을 받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받은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깎아 내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기에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향 사람들은 예언자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고, 친척과 집안 사람들도 지켜보았으나, 그들 눈에 보여지는 것과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에 진면목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보여 지지 않는 것도 보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공적으로 드러내서 활동하시기를 권고”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고, 그렇게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그리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주셨다고 전해주고 있는데,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따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침해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하는 모든 이들의 청을 예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 또한 그것을 명심하고 예수님께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습니까? 그분께 마음을 활짝 열던지, 걸림돌에 걸려서 닫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나자렛 사람들은 걸림돌에 걸려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걸림돌 때문에 넘어진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닫힌 마음은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자렛 사람들(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2. 내가 나자렛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자렛 사람들처럼 그렇게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까?4.



    4. 공지사항

    1. 남자 축구부를 모집합니다. 이 축구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상이며, 한달에 한번 정도 다른 본당과 시합을 하며, 건강과 친목을 도모할 계획입니다. 첫 모임은 7월 9일 오후 2시 사제관입니다.

    2. 셀 모임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례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원들에게 서로 연락하면서, 꼭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3. 시험 때면 당연히 성당에 안 나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연중 제 14주일 

    말씀과 놀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어린이“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토요일에 성경 읽고 오기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 마르코6,1-6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어린이 여러분! 안녕!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은 좋아했는데, 예수님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을 기뻐해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대방을 높여주면 내가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율법학자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던 사람들. 그래서 구원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고향으로 가시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 고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까요? 그래서 구원에로 초대받을까요?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갈까요?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서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문제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을 때,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①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②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

    ③ 친구들과 떠들면서 놀았다.


    문제 2: 다음 중에서 모세오경(모세의 율법, 율법서)에 속하지 않는 것은?

    ① 창세기, ②탈출기, ③레위기, ④민수기, ⑤신명기 ⑥마태오 복음


    문제 3: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나자렛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① 지혜와 놀라운 능력에 감동을 했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다.

    ② 하느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어디서 저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③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뻐하고 실천하며, 예수님께 믿음을 드렸다.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까지 감명을 받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받은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깎아 내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기에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문제 4: 내 친구 중에 태권도를 잘 해서 세계 어린이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친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내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러울까요?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을까요?

    ① 자랑스럽다. ② 아무렇지도 않다.


    문제 5: 당연히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를 칭찬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그의 약점을 공개하여 그를 깎아 내리는 것이 옳을까요?

    ① 그를 칭찬하는 것이 옳다. 내가 그를 칭찬하면 나 또한 그의 친구로서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다.

    ② 그의 약점을 공개하여 깎아 내리면, 내가 그보다 잘난 사람으로 올라간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그리고 늘 들려오는 예수님의 기적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① 내가 다 알고 있는데, 그가 뭐 신통한 능력을 행하겠어.

    ② 어디서 주워들은 것 얘기하겠지.

    ③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에헴.

    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문제 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죠?

    ① 아무도 치유해 주지 않으셨다.

    ② 당신께 치유를 청하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Never…,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침해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하는 모든 이들의 청을 예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 또한 그것을 명심하고 예수님께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문제 7: 내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다른 마을에 가서 가르칠 마음이 생겼을까요?

    ① 안해~ 하면서 한동안 열 받아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그래서 다른 마을에도 가서 가르친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까? 아니면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혹시 나에게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까?


    ▣ 다시 기억해 보기

    ①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셔서 안식일에 하신 것은?

    ②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왜 믿지 못했습니까?
    ③ 고향사람들의 불신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자렛 사람들(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2. 내가 나자렛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자렛 사람들처럼 그렇게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4. 공지사항

    1.매주 목요일은 부모님과 함께 평일 미사에 참례하기

    2. 미사에 올 때 주일 복음 말씀 읽고 오기(복음을 써 오시는 친구들에게는 은총표를 드립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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