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4주일 셀모임 자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연중 제 24주일 










말씀과 놀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어린이“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토요일에 성경 읽고 오기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1. 말씀읽기: 마르 8,27-35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 가 볼까요? 자~ 그 현장으로 GO GO~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문제 1: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①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② 특별한 분이셨기에 엘리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했기에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③ 예언자라고도 하고, 옛 예언자 중의 한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④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들은 내용들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의 이런 저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직접 단호하게 질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문제 2: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을 했을까요?


①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② 스승님은 짱~이십니다.


③ 형님!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명백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메시아에 대하여 품은 생각이 아직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앙은 단호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문제 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메시아 고백에서 잘못된 기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지 자리다툼을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베드로 사도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던 것입니다.


② 그냥 심심해서.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된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 맑게 정화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하여튼 베드로는 군중 속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게서 더 많을 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수난 당하고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3일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전환점이 되어 뒤따르게 되는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으로서 자주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3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문제 4.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수난을 안 된다고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②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기에


③ 사랑하는 스승님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에.


④ 그냥 그렇게 해야 될 분위기 같아서^^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괴로운 사명에서 멀리 하게 하려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 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문제 5.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① 자신을 버리는 것. 즉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나의 욕심이나 이기심, 고집등을 버리라는 것.


②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해야 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지 않는 것.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면 동생에 대한 형의 지극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형은 사랑하는 동생이 군대에 징집된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함께 군대까지 가게 됩니다. 동생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동생과 함께 있으면서 동생을 보호하고,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서 “태극무궁훈장”을 타려고 합니다. 총알이 날라 와도, 포탄이 떨어져도 훈장을 타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그 마음. 사랑하기에 동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해 주려했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 주려했던 형. 결국 형의 죽음으로 동생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형은 죽었지만 동생의 마음에서 영원히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걸고 있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희망이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4. 공지사항


1. 학교생활을 기쁘게 합시다.


2.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토요일 미사에 참례할 때는 복음을 읽고, 또 써 옵시다.


3. 17일에 본당에 많은 사람들이 오십니다. 성당에 와서 그분들께 공손히 인사해 드리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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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나해 연중 제 24주일 셀모임 자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1. user#0 님의 말:

    연중 제 24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1. 말씀읽기: 마르 8,27-35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당신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오해할까봐 기적을 베풀고도 침묵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려야 되시는 분이심을. 영화롭게 세상의 권좌에 앉으실 분이 아니심을.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들은 내용들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의 이런 저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직접 단호하게 질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명백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메시아에 대하여 품은 생각이 아직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앙은 단호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메시아 고백에서 잘못된 기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지 자리다툼을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베드로 사도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된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 맑게 정화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하여튼 베드로는 군중 속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게서 더 많을 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수난 당하고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3일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전환점이 되어 뒤따르게 되는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으로서 자주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3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스승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괴로운 사명에서 멀리 하게 하려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 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두 가지 조건은 자아 부정과 십자가의 수락입니다. 자아 부정은 무조건 자아를 포기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무조건 참고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내 자신의 욕심이나 이기심, 아집 등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님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아를 온전히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 자구적 의미에서 볼 대 당대의 사람에게만 해당될 수 있었습니다. 즉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못 박고 그 위로 들어올려져서 형장의 조롱거리가 될 무거운 들보를 어깨에 메고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걷는 공포의 길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광경은 당대인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 은유는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의 마지막 걸음처럼 삶을 감수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목숨의 보존과 잃음에 대한 말씀에서“목숨”이라는 단어에 눈을 돌려 봅시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는 ‘영혼“이라고 하지만 구약성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삶에 대한 의지, 삶에 대한 표현, 인간으로서의 전체적인 삶이라는 뜻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 존재 전부를 의미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기 목숨을 잃고 절망적으로 삶의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보다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것을 하나씩 극복해 나간다면 결국 자기 목숨을 구하고 삶의 진실한 목표를 성취할 것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면 동생에 대한 형의 지극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형은 사랑하는 동생이 군대에 징집된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함께 군대까지 가게 됩니다. 동생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동생과 함께 있으면서 동생을 보호하고,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서 “태극무궁훈장”을 타려고 합니다. 총알이 날라 와도, 포탄이 떨어져도 훈장을 타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그 마음. 사랑하기에 동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해 주려했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 주려했던 형. 결국 형의 죽음으로 동생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형은 죽었지만 동생의 마음에서 영원히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걸고 있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희망이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4. 공지사항

    1. 17일에 논산지구 학생축제(아뉴스제)가 있습니다.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토요일 셀 모임에 조금 일찍 참례합시다.

    3. 17일에 있을 의료지원에 봉사하면서 적극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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